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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Nov 17. 2019

아빠 집에 선물해주고 싶은 것

<아빠가 사는 집 10> 아빠, 산타클로스 편에 선물 좀 보낼게  



6살 딸이 그림을 그렸다. "엄마, 할아버지는 이런 집에 살고 계실 거야" 하며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할아버지는 지금 굉장히 좋은 성에 살고 계셔. 할아버지 혼자 사는 성이야. 성에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음식 로봇이 있고, 심심하지 않게 텔레비전도 있어. 그리고 소원풍선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소원을 빌 때마다 다 이루어주는 거야. 그리고 혹시 친구분들이 놀러 올 수도 있으니까 이 냉장고에 샌드위치를 넣어주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그 그림을 보며 생각이 마음이 짠했다. 딸아이가 너무 기특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언제 이런 그림까지 그렸구나... 그 그림의 의미가 '나'를 위로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고마웠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혼자 살면 필요한 게 많을 텐데? 딸아이가 그려 준 소원풍선과 음식 로봇이 있긴 하지만 내가 직접 챙겨다 주는 물품은 또 다른 의미일 거다. 그래서 시작했다. 혹시 글로 써서 기도를 하면 전해질 수 있을까 싶어 나도 '아빠 집에 선물해 줄' 몇 가지 리스트들을 꼼꼼하게 챙겨본다.



1. 흰색 메리야스와 반바지 


울 아빠의 트레이드마크다. 평소에도 살짝 늘어진 메리야스에 반바지를 입고 티브이를 시청하셨다. 티브이는 일단 있으니 무조건 편하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이 필요할 터. 고무줄 짱짱한 메리야스 한 100벌에, (나중에 몇 개가 늘어져도 계속 갈아입을 수 있게) 반바지는 체크무늬, 단색, 꽃무늬의 여러 패턴으로 또 100벌 준비한다. 허리는 멋 내기 용으로 단추가 있는 것도 좋지만, 편하게 고무줄로 된 것도 마련하는 게 좋겠지. 메리야스와 반바지를 수납할 공간이 필요하니 마법 수납장도 그려본다. 이 수납장은 수납을 해도 결코 부피가 커지지 않는 미니 사이즈다. 이렇게 수납공간은 대폭 줄이고, 수납장에 '추천 기능'도 담아 아빠 메리야스와 반바지를 직접 챙기게 한다. "오늘 이런 거 입으면 어떠세요?"하고 짝을 맞춰 주는 일종의 코디네이터다.



2. 크림빵과 단 커피 


아빠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다지만, (엄마의 말씀) 내가 볼 땐 순 거짓말이다. 아빠는 달구리를 참 좋아했다. 내가 빵순이가 된 이유도 달달 구리를 좋아하는 아빠의 입맛을 꼭 닮아서가 아닐까? 암튼 아빠는 땅콩과 호드 같은 것을 좋아했으니 견과류 듬뿍 담긴 견과류 크림빵, 흰색 생크림이 뭉터기로 채워진 크림빵 2종을 준비해본다. 추억을 소환하고 싶다면 달콤한 슈크림빵 3종까지는 절대적으로 오케이다. 단 커피는 모카라테나 헤이즐넛 라테 쪽으로 선별하고, 가끔 너무 달아질 것을 생각해 아메리카노도 옵션으로 준비해 본다. 아? 아빠의 건강을 위해 커피는 무조건 디카페인이다. 요즘 유행하는 시나몬 가루도 살짝 뿌려서 커피에 은은한 향도 줘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먹어도 먹어도 절대 살찌지 않는 건강 음식이다. 



3. 재밌는 첩보영화 DVD


007 시리즈는 일찍이 모두 섭렵해버린 울 아빠. 그 뒤로 볼만한 첩보영화가 없다고 늘 안타까워하셨다. 요즘 넷플릭스에 없는 것 빼고 모든 콘텐츠가 다 있지만, 아무래도 로그인하고 거기서 또 뭔가를 찾는 게 번거로울 테니 아예 몇 개를 선택해 아예 DVD로 구워줘야겠다. 살짝 코미디가 섞인 놈부터 엄청 잘생긴 미남이 나오는 첩보영화, 그리고 굉장히 머리를 써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복잡한 플롯의 첩보영화까지. 요즘은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클래스가 인기라던데, 아예 아빠가 영화 클래스 같은 것 모집해 회장 좀 했음 한다.(공무원 출신이라 장에 대한 욕심이 있으실 거다)  수다가 고픈 아빠에겐 이건 취미도 찾고 시간도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아! 내가 살짝 눈 감아 줄 수 있는 선에서 예쁜 여자 회원도 모집해도 좋고. 



4. 럭셔리한 골프장과 골프용품


골프는 아빠의 주특기는 아니었다. 은퇴 후에도 돈 아깝다고 만날 동네 연습장만 갔다. 그런 아빠에게 럭셔리한 골프장과 골프용품을 세트로 전해 주고 싶다. 이건 정말 특별한 용품이다. 집에서 앉아있다가 버튼 하나만 띡 누르면 호화로운 골프장이 펼쳐지고 골프복도 착 입혀지는 거다. 골프용품은 무조건 과시용으로 팍팍 사드린다. 아빠가 평소에도 해외로 골프 치러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셨는데, 이왕 이렇게 마련하는 것 무조건 그 '과시의 최고봉'이 되도록 도와주는 거다. 친구들이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사는 거야?"라고 침을 막 흘리며 부러워할 정도로 무조건 럭셔리하고 또 럭셔리해야 한다. 골프에 관련한 백미도 살짝 넣어둔다. 바로 승부조작이다. 아빠가 치는 공은 무조건 3번에 한번 꼴로 홀인원이 될 수 있게 마법 공도 몰래 넣어둔다. 그리고 "홀인원" 이 외쳐지는 순간 불꽃이 터지며 해외 특급 가수의 공연도 펼쳐진다. 



5. 황금 핸드폰


꿈에서 아빠와 통화하는 핸드폰은 너무 작았다. 아예 큰 화면의 황금 핸드폰을 준비한다. 이 핸드폰은 나, 언니, 엄마의 근황, 그리고 아빠가 그렇게 사랑한 손주들 소식도 실시간으로 전해줄 수 있는 핸드폰이다. 이 황금 핸드폰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바로 좋은 소식은 더 좋게, 안 좋은 소식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는 '새로고침' 기능이 있다는 거다.  때문에 아빠는 우리 집의 소식을 다 알고 있는 동시에, 늘 평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황금 핸드폰에 내가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는 '둘째 딸 방문 기능'을 넣어준다. 그럼 내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아빠를 내 꿈으로 소환할 수 있는 거다. 흥? 아빠! 아빠만 꿈에 오는 날을 선택할 것 같았지? 요런 기능을 만들어 전할 줄은 전혀 몰랐을 거다. 메롱~~~



기타 분기별로 나오는 명품 의상 및 액세서리, (우리만 사주느라 좋은 옷 많이 못 입었으니까)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전용 비행기 등도 전해 주고 싶다. 극락과 천국은 이곳보다 훨씬 더 블록버스터급으로 재밌겠지만, 그 블록버스터급으로 재밌는 곳을  전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더 즐거울 것 같아서.  


그리고 선물 전달은 이왕이면 산타 할아버지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선물은 서프라이즈가 묘미니까, 아예 깜짝 선물처럼 루돌프와 함께 전해주는 거다. 곧 있음 크리스마스인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심심할 테니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몇 번을 분할해서 선물을 준다."또 왔어? 아이고 선물 또 왔어?" 하며 울 아빠가 자꾸자꾸 기대할 수 있게 말이다. 산타할아버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 아빠에게만은 쿠팡이나 마켓 컬리를 능가하는 빠른 배송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빚은 내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선물 배송을 몇 번 도와주는 것으로 꼭 갚을 테니까. 



아빠의 함지박 한 웃음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좋을 때 하는 리액션인, 에헴 기침을 하며 팔짱을 끼는 모습도 상상이 되고, 얼굴에 있던 주름까지 활짝 펴지는 신기원을 보고 싶다. 선물은 역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묘미라는 사실을 이런 기회를 통해 깨달아 간다. 아빠에게 선물을 보낸다는 사실만으로 상상을 펼치고 있는 이 시간이 즐겁다. 부디 이 상상이 저 하늘나라에선 현실이 될 수 있기를! 킥킥킥 웃던 나는 갑자기 진지하게 기도한다.  "아부라카다브라, 아부라카다브라. 모든 것이 이루어져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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