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레시피 ep.030

기묘한 육수

by 김묘한
할머니가 해주던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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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식을 만들 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너무 어려서 칭찬인 지 몰랐고, 지금은 그 말이 따뜻하기 그지없다. 왜 무슨 음식을 해도 할머니 맛이 날까. 특히 국물 요리가 그러한데, 아마도 그 이유는 육수이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낸다.


엄마는 수십 년간 우리 가족의 아침 식사를 매일같이 준비하셨다. 아빠는 갓 지은 쌀밥에 국이나 찌개가 필요했고, 오빠는 고기반찬이 필요했다. 난 그다지 반찬 투정을 해 본 기억이 없는데, 생각해 보면 저 메뉴에 생선 구이든 조림이 꼭 더해졌고, 다양한 밑반찬과 김치 여러 종이 꼭 올라왔으니, 투정을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매일같이 뚝배기에 찌개를 끓여 냈는데, 그 어두운 컬러의 뚝배기 속 맑은 물에 동동 떠다니던 예쁜 멸치를 선명히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아침부터 멸치 육수 냄새를 맡는 건 아주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잔상에 남은 그 비릿한 향과 칼과 도마가 춤 추던 그 소리와, 뽀얀 국물이 똑똑 떨어지던 갓 지은 솥밥의 고소한 내음과 고기든 생선이 구워지던 그 소리와 아침마다 잘 익은 김치를 정갈하게 썰어내던, 햇살에 바짝 말린 나무 도마를 잊을 수 없다.


매일같이 육수를 내던 엄마의 부지런함을 닮지 못한 나는 한솥 크게 끓여내 여러 음식을 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어느새, 나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육수가 탄생했다. 김치찌개나 찜의 생명은 김치 같지만, 이 육수만 있다면 시판 김치로도 그 맛이 난다. 육수가 전부인 잔치국수나 어떤 종류의 국, 찌개, 찜, 조림, 볶음, 탕... 내 모든 한식의 기본에 이 육수가 있다.


제대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퀄리티의 건해산물을 취급하는 상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가능하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 전국 팔도의 사장님께 재료를 공수 받아 이용했다. 여수와 완도, 통영 등 남해에서는 디포리와 멸치를, 태안이나 강화 등 서해에서는 새우를, 강원도에서는 황태를 철마다 구입해 냉동 보관하여 쓰는데, 희한하게 마트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을 낸다.


한 번 끓일 때마다 보약을 달이는 마음으로, 흩어진 마음을 다스리는 기분으로 육수를 낸다. 정성의 결정체. 누군가의 소울 푸드가 되어버린 나의 여러 한식 요리의 기본이 되는 기묘한 육수 레시피로 당신의 요리도 누군가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길.


<기묘한 육수>


재료: 디포리, 국물용 멸치, 황태포, 대파 뿌리, 양파, 무, 말린 표고버섯 밑동, 다시마

+ 건새우, 건홍합, 꽃게, 건고추, 통마늘 등


준비:

- 황태는 늘 통으로 된 황태포를 구입하여 손질해서 쓴다. 살은 분리하여 황탯국에 쓰고, 그 외의 머리, 껍질, 뼈, 꼬리 등은 육수에 쓴다.

- 내장을 정리한 멸치와 디포리는 마른 팬에 덖어 준비한다.

- 표고버섯은 제철(3~9월)에 구입하여 생으로 충분히 즐기고, 몸통과 밑동을 분리하여 충분히 말린 후 냉동 보관한다.

- 대파를 한 단 구입하면 뿌리의 흙을 잘 정리하여 쓰고, 남는 것은 물기를 제거하여 냉동한다.


1.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고 충분히 끓인다.


- 재료와 물의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30분은 끓인다.

- 기묘한 육수는 디포리 뼈가 녹을 정도로 2~3시간 중약불에서 끓여 낸다.

- 멸치의 향이 싫다면 멸치를 빼거나 적게 하고 디포리를 충분히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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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밥에도 기묘한 육수로 밥을 짓는다. 그 깊이, 먹어봐야만 아는 치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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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든든하고 위안이 되는 한 끼의 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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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찜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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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밥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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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식 뭇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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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탕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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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찜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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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멸치는 마른팬에 덖어 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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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탁하지 않고 이렇게 맑은 육수를 얻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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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잔치국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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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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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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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탕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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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에도-


마법의 육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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