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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06. 2024

나의 도마

열셋

주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도마가 잘 말랐는지 확인합니다.

축축하지 않고 뽀송뽀송 잘 마른 도마를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다음 냉장고에서 음식 재료로 사용할 아이들을 꺼냅니다.

껍질을 벗기고 커다란 볼에 넣어 씻어주기도 채반에 올려 물기를 말려주며 밑 손질이 끝납니다.

    

이제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

마른 도마에 정리해야 하는 재료와 젖은 도마를 위에 올려도 상관없는 재료가 있습니다.

보통은 젖은 도마를 마른행주나 티타월로 닦아 쓸 수 있는 재료가 있지만, 가끔 마른 도마에서 재료를 손질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예를 들어 허브 같은 재료는 물기가 때문에 칼이나 도마에 들러붙어 떼어내고 긁어내다 짓무르면 씁쓸한 맛이 나서 음식 맛에 도움이 안 되는 것.

생선과 육류도 물기가 많은 곳에서 손질하면 비린 맛이 나고 도마에 기름기가 베어 들어 위생에 좋지 않은 것.


이렇게 이야기하는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하다 보면 순서 없이 요리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땐 메인 도마와 서브 도마를 동시에 쓰는 모지리가 되기도 합니다.

    

도마를 조리대에 올려놓기 전 얇은 행주 하나를 물에 적셔 촉촉할 정도로 짜주고 조리대에 깔아줍니다.

가끔 이 녀석이 칼질 도중 간지러워서인지 아니면 마냥 누워있어 지겨운지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다 열심히 칼을 움직여 썰고 있는 와중에 도마가 춤을 추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젖은 행주 위에 도마를 올려 도마가 움직이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지요.   

  

얼마 전 한 녀석은 두 상자나 되는 갈치와 조기 손질을 도와주다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많은 생선을 받아들였으니 비린내가 빠지지 않았겠죠. 도마 냄새 제거와 소독 살균에 좋다는 세제도 인터넷에서 주문해 닦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 사면되지 뭐 하러 고생하냐고 동생은 그만하라고 했었죠.

하지만 다시 커다란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붓고 과탄산소다와 소금, 식초를 넣어 닦아주며 목욕을 시켜주고,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궈주고, 물기를 말끔히 닦아 따뜻한 햇볕에 말려주었지만, 회생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고 바깥에 내동댕이치는 것은 양심에 찔려 조각조각 내어 화목난로에 태워 보내 주었지요.


참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해 주었던 아이였는데 아쉬웠습니다.     

그 아이를 대신해 들어온 도마가 지금 열 일을 해주고 있지요,

색이 바래고 칼에 베인 상처에 거뭇거뭇 갑오징어 먹물이 들고 푸르스름한 허브 향이 섞인 색을 머금고 있지요.

이 녀석을 깨끗이 닦아주고 말려주어 모양새가 흐트러지지 않게 돌봐주고 있습니다.  

   

간혹 플라스틱 도마를 써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동생이 내기도 하지만, 저는 나무 도마의 감촉이 너무 좋습니다.


플라스틱 도마를 써봤으나 냄새가 잘 빠지지 않고 뜨거운 물이 닿으면 쉽게 휘어지는 변형이 생깁니다. 오래 쓰면 도마 색과 같은 가루 같은 이물질이 음식 재료에 미세하게 썩어 있는 것은 본 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벼운 플라스틱 도마를 쓰고 싶다면 자주 교체를 해줘야 합니다. 가격이 저렴해 자주 바꿔줘도 되지만 쓰고 난 플라스틱 도마를 쓰레기 처리하는데도 고민이 됩니다.     


유리 도마는 안 써봤겠습니까.

뜨거운 물에 씻을 수가 있어 속이 시원하고 세제로 박박 닦아도 되니 위생적이라 생각이 들고 더군다나 강화유리라니 열심히 썼었습니다.

처음 유리 도마를 써봤을 때가 23~24년은 된 것 같네요. 아들 이유식을 만들 때 이용했으니까요.

유리 도마는 아이 요리 만들 때 빼고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칼이 유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싫었고, 가끔 삐끗해 칼이 넘어지기도 해서 조심히 움직여야 했거든요.  

   

개인적인 의견으로 판단해 미안하지만, 실리콘 도마는 자연스럽게 먼지가 잘 붙을 것 같아 패스했고요, 비스프리 도마는 다른 곳에서 써봤는데 정이 안 가더군요.

“SORRY”     


가장 칼자국이 덜 난다는 링크페어 나무 압축 도마가 있지요.

얇은 데다 가벼운데 내구성이 뛰어나지요. 세제를 이용할 수 있고 뜨거운 온도에 잘 견뎌 식기세척기에 돌려도 됩니다.

그런데 소리가 강화유리 도마와 비슷합니다. 칼을 들고 썰었을 때 부드러운 느낌도 적고요.    

 

그 밖에 스테인리스 도마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는 나무 도마가 제게 맞나 봅니다.

이런 저에게 목공 하시는 지인분이 나무 도마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도 알록달록하니 어여쁜 녀석으로요.

그냥 보아도 손이 아주 같을법한 무늬를 가지고 있지요.

나무를 조각조각 내어 인체에 해하지 않는 천연 접착제를 사용해 오랜 기간 만드셨다고 합니다. 예쁜 도마에 밀랍으로 코팅을 여러 번 해서 색이나 모양이 흐트러지지도 않습니다.  

   

요 예쁜 도마는 아이들과 진행되는 요리 수업 시간에 들고 갑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녀석이거든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과정으로 도마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칼 쓰는 법을 알려준 후 다듬고 써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마른 도마에 깨끗이 씻어 말린 허브를 곱게 가루처럼 쓰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허브 한 줌씩 나눠주고 썰어보게 하지요.

붉은 양파를 반으로 가르고 얇게 써는 법을 알려줍니다. 요것도 아이들이 반 개씩 가져가 조심스럽게 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얇게 썬 양파를 프라이팬에 넣어 설탕을 더해 카라멜라이징을 합니다.

길쭉하게 썬 달콤하고 새콤하게 절인 오이를 다지는 방법을 알려주고요. 나머지는 아이들이 썰어 준비하도록 옆에서 도와줍니다.

오이와 곱게 다진 파슬리, 죽이 되도록 아이들이 다져준 생마늘, 올리브오일에 은근히 익혀낸 마늘을 으깨 마요네즈와 섞어요. 여기에 레몬껍질을 갈아 넣어주고 레몬즙도 넣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릭마요를 만들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 도마 위에 요리를 세팅해 보여주기도 하지요.

바게트를 펴고 버터를 발라 로메인과 루꼴라, 치즈, 구운 수제 햄, 붉은 양파 캐러멜라이징, 갈릭마요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식용 꽃을 올려 장식을 합니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이 서로 도마 위에 자신이 만든 요리를 가져와 올려놓고 사진을 찍기도 한답니다.

    

도마는 재료를 다듬고 썰때 가장 많이 쓰지만 음식을 플레이팅 할 때도 많이 씁니다.

색도 모양도 다양한 도마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고 포근한 느낌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주방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준비하는 도구를 이제야 칭찬해 줍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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