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Feb 13. 2024

가위 말고 칼

열넷

칼.

‘주방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도구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내 주방엔 조리 도구가 몇 개?’라는 연재에 올린 ‘도마’ 다음으로 칼 이야기를 써야겠다며 천장을 쳐다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칼이 몇 개나 되지?”라며 중얼거릴 때, 동생이 다가와 “언니 칼 말고 뜰채 얘기해 줘”라며 각종 뜰채를 들고 서 있었다.

뜰채도 종류마다 쓰는 용도가 다양하니 좋은 생각이긴 했지만 ‘도마’를 썼으니 ‘칼’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한참을 앉아서 이야기했다.


조리 도구가 대체 뭐라고.


“언니, 요즘 사람들은 밀키트 사서 끓이기만 해서 '칼' 쓸 일이 별로 없다니까.”

어쩌면 동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단단한 플라스틱 포장지에 각종 가지런히 썰리고 다듬어져 일차 조리를 마친 채소, 버섯, 육류, 조류, 어류, 해물과 육수, 토핑, 소스 등이 가지런히 실링 된 위생 비닐에 담겨 '가위'로 싹둑 잘라 순서대로 넣어 끓이거나 볶으면 끝나는 간편식이 시중에 많이 판매되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칼'보다 잘 드는 가위를 많이 쓰는 분들을 위해 가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우린 언제부터 '칼'보다 '가위'를 많이 쓴 거야?     

언젠가부터 한 입 거리 고기가 아닌 두툼한 고기를 불판에 굽기 시작하더니 '가위'가 등장했다. 아니 '가위'를 손님 식탁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두툼한 고기가 불판 위에 올라갔던 것 같다.


지금은 고깃집은 물론이고 해물탕, 갈비탕, 낙곱새, 뼈다귀탕, 샤부샤부, 분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수많은 식당에서 동그랗고 기다란 은색 통에 '가위'가 빼곡히 꽂혀 서비스 준비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인가 가정집에는 '칼'보다 많은 '가위'가 주방 서랍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이 두툼하고 커다란 작은 도마에 육즙을 머금은 고기를 올려 고급진 '나이프'로 가지런히 썰어 다시 불판에 올려주고 팁을 받던 럭셔리한 문화는 '가위'에게 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님들이 고기를 정성 들여 굽고, 적당히 구운 고기를 깔끔한 도마 위에 올려 고급진 '칼'로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지런하고 매끈하게 썰어, 다시 불판에 올려준 고기를 먹다 보면 대접받는 느낌. 이 방식이 손님 앞에서 '가위'를 들고 싹둑싹둑 썰어주는 것보다 기억에 남는 편안한 식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칼을 꺼내 사진을 찍어 보려 툴박스와 칼 가방을 열었다.

몇 개 되지 않을 것 같던 녀석들이 꽤 많이 들어있다. 작업실에 있는 놈들까지 더하면...


사진 안엔 우리나라 대표 단조 장인 주용부 님의 칼도 있고 아주머니들이 칼이라면 요거 지라는 쌍둥이 칼, 요리 엔터테이너 백종원 대표님이 써서 유명해 칼 정도는 있지만 고가의 칼은 사지 않는 편이다.

칼을 들고나가는 날이 많아 적당하고 손에 맞는 칼을 찾는 편이다. 칼날을 갈고 또 갈아 나의 왼손에 딱 들어맞는 칼이 가장 좋은 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예쁜 칼을 애지중지 닦아주고 기름 쳐주는 성격이 못돼서... 가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집에서 칼을 쓰는 날보다 밖에서 칼을 쓰는 날이 많았던 나, 항상 칼과 조리 툴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다녔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며 일할 때,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pup 그러니까 호프집에 갔었다. 이날 이후 3일 연속해 휴일이었던 난 그 가방을 들고 호프집을 찾았다.

얼굴도 잘 아는 가드였건만 “지나, 툴박스 들고 못 들어가.” 하며 팔로 입구를 막고 날 제지 했다.


“왜?”

“위험해.”
호프집 안에서 공구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가리키며 “재는 왜 들어가?” 하자 “칼은 안 들었잖아.”라더니 웃었다.


나를 기다리던 동료들이 “내가 가져다 놓고 올까?”라는 말에 가드에게 분명 저 녀석의 툴박스엔 칼보다 무시무시한 것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들고 있는 가방도 분명 일할 때 쓰는 툴박스라고 얘기하며 “너무하잖아!”라며 소리를 치자. 호프집 안에서 내가 아는 셰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우리가 자주 가는 이 호프집은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사이 롹스라는 관광지에 있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이 주변 서비스 업종에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피로를 풀고 스카웃과 일자리 헌팅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였다.


롹스에서 4년 넘게 팀장과 부주방장으로 일하던 나는 아는 친구들이 많았었다.     

“생각해 봐. 내가 이 칼을 쓰려면 버클을 열어야지, 지퍼를 한 바퀴 돌려야지, 다시 칼을 꺼내서 칼집을 빼내야지. 내가 먼저 당하겠네.”라고 말하니 친구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가드가 안전하게 맡아 보관한 후 집에 갈 때 찾아가기로 협상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믿어봐. 정말 잘 모시고 있다 줄게"라며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동료들과 회의 아닌 회의를 하고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칼은 들고 다닐 정도로 요리하는 사람에겐 중요한 도구이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야 하는 주방 도구이다.


요리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며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칼이나 나이프로 시작되는 책을 찾았다. 일식 칼을 다듬는 방법이 담긴 책은 있었으나 다양한 칼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이 없었다.     

대중매체를 보면 수많은 요리 채널과 먹방, 레시피, 요리 유튜브, 요리잡지 등 요리라는 주제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그것 중 조리 도구에 대한 책은... 칼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은 없다.


요리를 하려면 정말 중요한 것이 조리 도구인데...

밀키트도 조리 도구가 있어야 끓이고 볶아 먹을 수가 있는데. 라며 아쉬워하면 뭣하나.

없으면 할 수 없지. 

책과 인터넷을 뒤져 칼을 쓰는 법에 관한 학습자료를 만들고, 지금은 어린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 칼을 가는 순서, 칼을 쥐는 요령, 요리와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칼질 방법 등을 가르치며 수업하고 있다.     


이후 조리도구에 관한 책들이 몇 권, 그것도 한국인 저자는 몇 명이나 될까? 칼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을 2018년에 한 권 찾았다.



잘 드는 칼을 써야 도마에 흠집이 나지 않는다.

잘 들 않는 칼을 쓰면 힘을 주어 썰게 되고 그러면 몸과 음식 재료 그리고 도마가 힘들어진다.

또한 음식 맛이 사라진다.

왜?

이미 잘 들지 않는 칼로 다듬고 썰다 보면 너무 힘을 주어 힘이 다 빠져 버렸기 때문이지.

     

칼을 갈아 써본 어린 중학생 요리사들도 알고 있다.

칼이 매끄러운 날이면 재료가 많이 쌓여 있어도 ‘이까짓 거’하며 얼굴을 붉히지 않고 썰어낸다.    

 

난 얇은 행주를 도마 밑에 깔고 칼을 들고 가볍게 썰어나가고 있다.

이것이 요리하는 맛이지.


이전 14화 나의 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