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안하고, 아이도 억울하지 않은 대안을 함께 찾아요.
그럴 땐 '미안해 ‘라고 하는 거야.
어서 미안하다고 해.
육아하다 보면 아이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강요하는 저를 만납니다. 아이가 다른 아이와 신체적 충돌이 생겼을 때는 반사적으로 이 말이 튀어나가지요. 아이가 순순히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면 강도가 높아집니다. 그러면 아이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말합니다.
몇 차례 거듭하며 의문이 들었어요. ‘미안하다고 말해'라는 저의 말을 돌아봤습니다.
1. '남들 앞'에서 더 격해진다.
아이들이 쌍둥이다 보니 기관에 보내기 전, 집에서도 종종 '미안하다고 말해' 상황이 벌어졌어요. 하지만 강도가 달랐습니다. 집에서는 가볍게 타이르고 아이들도 수용하는 모양새였어요. 하지만 외출하거나 기관에서 상황이 생기면 제 강요의 정도가 더 심했고, 아이들의 반발감도 더 컸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외부의 시선이었습니다. 남들이 볼 때, 저도 더 세게 말하고 아이들도 세게 거부했어요. 마치 아이들이 '미안해'라고 사과하게 만들지 않으면 제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는 것 같아 염려했던 거죠. 솔직히 말하면 '무책임한 양육자'로 보일까 봐 걱정됐어요.
아이들은 남들이 지켜보니 더 부담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상황이 힘든데 사과하라고 양육자가 몰아세우니 위태롭게 느껴졌겠죠.
2.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어렵사리 끌어내도, 진심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지?'라며 엄청나게 '억울'해 하더라고요.
일단 저부터 진정한 후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대략 두 가지 이야기를 하더군요.
- 일부러 그 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즉, 나쁜 의도가 없었다.
- 잘못했다는 걸 알지만 '미안하다‘ 말하라고 시키니까 화가 나서 더 말하기 싫어졌다.
갈등상황은 아이에게 존중과 진심 그리고 연결 같은 중요한 가치를 가르칠 기회입니다. 하지만 '미안해'라는 말에 집착하는 순간, 이런 가르침은 온 데 간데 없어집니다. 그저 '미안해'라는 말을 하냐 마냐, 강요와 굴복의 밀고 당기기가 돼버리죠.
잘못해 놓고 미안하단 말을 하지 말라거나, 내 아이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건 아닙니다. 비폭력대화에 머물며 저는 두 가지 실천거리를 찾았어요.
1. 아이에게 사과를 들려주세요.
양육자도 아이에게 이따금 실수를 합니다. 그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나요? 혹시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어른이잖아‘라며 넘어가진 않나요. 아이에게 사과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할 땐 없나요?
아이가 진심으로 사과를 받아보고, 그래서 사과가 주는 치유와 연결을 경험하게 해 주세요. 사과가 굴복하는 것이나 지는 게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앞으로는 다르게 하겠다는 결심임을 알려주세요. 아이들이 했으면 하는 말을 들려주세요.
미안해. 아프진 않았어? 앞으로 옆을 더 잘 살펴볼게.
괜찮니? 엄마가 지금 지쳐서 조절하기가 어려웠어.
놀랐지? 차분한 말로 해야 했는데 미안해.
2. 아이를 존중합니다.
중요한 건 '미안해'라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려면 상대가 나의 행동이나 말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상대의 신체, 공간, 소유, 의견, 기분을 존중할 때 가능합니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로 인해 불편했다는 걸 알아야 미안한 감정으로 이어지니까요.
어떻게 인지능력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우선 본인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수용되고, 온전히 나답게 인정되는 경험은 내면에 단단한 힘을 실어주죠.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표현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습니다. 존중받아 본 아이는 남도 깊이 존중합니다.
아이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상태에선 굳이 '미안해'라는 워딩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로 표현해도 좋겠습니다.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 놀랐지?
(글로 쓰니 변명처럼 보이는데, 아이가 솔직하게 표현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보세요. 의도가 없어도 상대가 불편해한다면 '미안해'라고 말해야 네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알려주니 차츰 바꾸더라고요.)
내가 실수했어. 다음엔 다르게 해 볼게.
때론 눈빛이나 신체언어 같이 비언어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어요. 뭐가 됐든 상대에게 '쟤가 비록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내 불편함을 인정하고 걱정하는구나’를 전하면 충분하지요.
아이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시키기 전에 우리 맘을 들여다봅시다. 혹시 아이가 그 말을 해야 내가 양육자로서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나요? 남들에게 그 상황을 적당히 잘 대처했다고 보여주기 위한 건 아닌가요? 내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서, 아이가 여러 사람 앞에서 진심이 아닌 말을 하게, 강요하고 있진 않나요?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을 존중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이 배움의 기회를 양육자, 내가 견디기 힘들어서 '미안해'라는 말로 얼른 끊고 넘어가지 마세요.
다만 평소 아이에게 시의적절하게 사과하고, 아이를 존중해 주세요. 사과가 필요한 순간엔 옆에서 지지하고 기다려주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아이 스스로 해낼 겁니다. 자신 만의 언어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