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언니 Aug 30. 2024

스마트폰, 아이 앞에서 어떻게 쓰고 있나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요즘 양육자들에게 미디어, 특히 휴대전화는 큰 고민거리입니다. 저는 방송사에서 일하고, 다른 양육자는 IT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이따금 물어옵니다. 미디어 노출은 어떻게 하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줄 생각이냐고요. 미디어와 인공지능을 일선에서 지켜보는 저희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늦게 최소한으로 디지털 세계를 경험시키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비폭력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입니다. '스마트폰 가지고 싸우는 게 지긋지긋하다'면서 이 문제도 비폭력대화로 다룰 수 있는지 말이죠.

물론 다룰 수 있습니다. 규칙을 지켰는지 몇 분 했는지 등의 감시 그리고 이어지는 벌잔치가 아닌, 욕구 차원에서 말이죠. 다만 이번 글은 이미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줬고, 그래서 한창 갈등 중인 경우의 해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보다 몇 년 앞서, 아직 휴대전화를 소유하지 않은 아이와 평소에 어떻게 대화하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대략 만 8세 미만의 자녀)


휴대전화에 대해 고민하는 양육자에게 저는 우선 묻습니다.


아이가 어떻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길 원하세요?


그러면 대략 비슷한 답이 돌아옵니다.

- 쓰겠다는 시간만 쓰면 좋겠다.

- 왜 쓰겠다는 건지, 뭘 보겠다는 건지 알려주면 좋겠다.

- 저녁 먹을 때나, 오래간만에 같이 시간 보낼 때는 안 보면 좋겠다.


구구절절 저희도 동의합니다. 아이가 무해한 것을 잘 골라서, 필요한 만큼만, 잘 조절해서 쓰길 원합니다. 같이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요. 그 과정을 대화로 잘 표현해 주는 것도 중요하죠. 휴대전화가 아이와 우리 사이를 단절해버리진 않았으면 해요.

 

저희는 시간제한 같은 규칙보다는 하나의 원칙과 하나의 질문을 제안합니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이 구절은 공자의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긍정문으로 바꾸어 보자면 '내가 원하는 것 그대로 남에게 행한다.'가 되겠네요.

이 글의 주제인 휴대전화에 적용해 봅니다. 아이가 내 앞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길 원하는 모습 그대로 내가 아이 앞에서 사용하는 겁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볼까요?


아이들이 역류방지쿠션에 누워있던 시절의 대화입니다.

나 (휴대전화를 보며) : 엄마는 지금 엄마 아빠 먹을 점심을 주문하는 중야.
남편 : 탕수육도 시킬까 말까 고민 중이다. 너희가 커서 같이 메뉴를 상의하는 날이 오겠지?
나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 다 했다. 짜장에 짬뽕시켰어.


물론 어른들끼리만 대화 나누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굳이 아이에게 뭘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맘대로 쓸 수도 있죠. 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이 '가족과 있을 때도 그냥 맘껏 쓰면 되는구나'라고 배우길 원치 않았어요. 아이에게 말을 거는 자체가 존재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고요.


저희는 실제로 정말 필요할 때만 쓰고(우유가 떨어졌다!), 사용할 때는 무엇을 언제까지 쓸지(쿠팡으로 주문할게) 아이에게 간단히 이야기하고, 정말 그것만 하고 내려놓으려고 애씁니다. 육아에 대한 정보를 찾거나, 저희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는 일들은 모두 아이들을 재우거나 물리적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하려고 노력했어요. 회사업무나 정말 중요한 연락이 있으면 그것도 설명하고, 처리한 후에 내려놓았습니다.


휴대전화로 모든 걸 하는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하냐고요? 그렇다면 반대로, 어른도 하기 힘든 휴대전화 조절을 아이가 해내길 원하는 기대부터 내려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환경을 조성한다던가 하는 노력도 수반해야 하고요. 양육자, 나의 일은 중요하고 아이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재고해 보세요.


이게 정말 네가 원해서 하는 거야?


이 질문은 아이에게 보다는 양육자끼리 하는 질문입니다.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하거나, (다른 양육자의 희생이나 배려를 통해) 어렵게 얻은 휴식시간에 휴대전화에 빠져있을 경우에 주로 합니다. 이 질문은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뭔가를 정말 보고 싶고, 꼭 할 일이 있어서 하는 경우엔 저 질문에 크게 저항이 없는데요. 그렇지 않은 경우 뜨끔하죠. 괜히 민망해서 버럭 하기도 합니다. 그 감정을 직면하고 비로소 선택합니다. 계속할지, 멈출지.



아이가 이제 제법 커서 자신의 기분과 의견을 말로 표현합니다. 엄마 나보다 휴대전화가 중요한가요? 뭘 하는지, 언제까지 할 건지 말해주세요. 요청합니다. 아이의 말에서 저는 깨닫습니다. 휴대전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갈등 아래엔 자기 연결, 가족 사이의 배려와 존중, 자율성, 재미, 선택 같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음을요.


아직 아이가 어리다면 오늘부터라도 아이가 사용해 주길 바라는 모습 그대로, 양육자가 아이 앞에서 사용해 보세요. 아이가 크다면 몇 편을 보냐, 평일과 주말에 몇 시간을 보냐, 상과 벌은 뭐냐 같은 수단과 방법에 맴도는 이야기를 잠시 멈춰보세요. 그리고 정말 원하는 것을 표현해 보세요. 휴대전화가 아이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지 않도록요.

이전 12화 '미안해'라는 말, 누굴 위해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