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겨울이 오는 어귀에서 글을 쓴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바뀌는 계절에 잠시 길을 잃고서 헤매어 보기로 했다. 우리의 헤어짐이 있고 나서 서로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이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떠났다. 그녀의 떠남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락이 닿지 않던 며칠간의 시간 동안 홀로 어떤 결심을 하고서 그녀는 내게 나타났다. 나 역시 그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로서의 관계에 있지 않고 살아갈 채비를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잠시 멍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간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글이 써지지 않는 까닭은 더 이상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지난 몇 개월간 그녀를 곁에 두고서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니, 우리는 몇 달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라는 말이 좋아서 잠깐만 더 곁에 남아있었다.
도무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 문을 닫은 채로..." 그래. 진한 감정이 차가운 기계의 스피커에서부터 스며져 내게 왔다. 점점 더 파도처럼 나를 흔들며 그것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중심을 잃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이 이토록 허무한 줄 알았다면 내가 다시 사랑을 했을까? 커피의 맛이 점점 더 쓰게 느껴졌다. 지금은 무엇을 마신들 이 쓴맛을 감추지 못할 것만 같았다.
선율에 몸을 싣고서 여행을 떠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뿐인 머나먼 바다로 나는 떠나고 싶었다. 누구도 없는 곳으로, 그녀조차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러나 그녀는 알겠지 내가 어디서 표류하고 왜 떠내려가고 있는지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는 나를 찾을 수 있겠지. '다름 아닌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그녀일 테니까' 오랫동안 한 사람만을 생각해왔다면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사라진 그녀를 당장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든지 다시금 찾가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가는 가을 조차 붙잡을 수 없다.
"너의 병이 나 때문에 심해지지 않길 바라. 난 지금 너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야."
마지막까지 그녀는 내게 조심스러웠다. 나를 아끼고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는 우리가 정말 좋은 친구로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모질게 내쳤다.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내 가슴을 요동치지 않으면서도 줄곧 기다려온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거짓으로 화를 내며 그녀를 온전히 내 곁에서 떠나보내려 했다. 우리는 서로의 환각 속에서 살아서는 안된다.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노래를 가장 좋아하니?"
우리가 언제나 함께 듣던 노래가 있다. 듣고 있노라면 나는 눈을 감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도 노래의 리듬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깊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마음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우리는 서로를 힘껏 껴안았다. 그랬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가올 겨울이 유독 춥게만 느껴졌다. 벌써 이렇게 날씨가 추워진 것이다.
이어폰을 가져왔다. 잠시 세상의 소음과 멀어질 시간이다. 다시 그 노래를 듣는다.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릿결을 만져달라는 가사에 빠진다. 그렇게 빠져들면 다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