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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Oct 23. 2021

가을이 저무는 계절에

단편 소설

겨울이 오는 어귀에서 글을 쓴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바뀌는 계절에 잠시 길을 잃고서 헤매어 보기로 했다. 우리의 헤어짐이 있고 나서 서로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이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떠났다. 그녀의 떠남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락이 닿지 않던 며칠간의 시간 동안 홀로 어떤 결심을 하고서 그녀는 내게 나타났다. 나 역시 그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로서의 관계에 있지 않고 살아갈 채비를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잠시 멍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간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글이 써지지 않는 까닭은 더 이상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지난 몇 개월간 그녀를 곁에 두고서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니, 우리는 몇 달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라는 말이 좋아서 잠깐만 더 곁에 남아있었다.


도무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 문을 닫은 채로..." 그래. 진한 감정이 차가운 기계의 스피커에서부터 스며져 내게 왔다. 점점 더 파도처럼 나를 흔들며 그것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중심을 잃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이 이토록 허무한 줄 알았다면 내가 다시 사랑을 했을까? 커피의 맛이 점점 더 쓰게 느껴졌다. 지금은 무엇을 마신들 이 쓴맛을 감추지 못할 것만 같았다. 


선율에 몸을 싣고서 여행을 떠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뿐인 머나먼 바다로 나는 떠나고 싶었다. 누구도 없는 곳으로, 그녀조차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러나 그녀는 알겠지 내가 어디서 표류하고 왜 떠내려가고 있는지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는 나를 찾을 수 있겠지. '다름 아닌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그녀일 테니까' 오랫동안 한 사람만을 생각해왔다면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사라진 그녀를 당장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든지 다시금 찾가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가는 가을 조차 붙잡을 수 없다. 


"너의 병이 나 때문에 심해지지 않길 바라. 난 지금 너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야."


마지막까지 그녀는 내게 조심스러웠다. 나를 아끼고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는 우리가 정말 좋은 친구로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모질게 내쳤다.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내 가슴을 요동치지 않으면서도 줄곧 기다려온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거짓으로 화를 내며 그녀를 온전히 내 곁에서 떠나보내려 했다. 우리는 서로의 환각 속에서 살아서는 안된다.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노래를 가장 좋아하니?"


우리가 언제나 함께 듣던 노래가 있다. 듣고 있노라면 나는 눈을 감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도 노래의 리듬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깊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마음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우리는 서로를 힘껏 껴안았다. 그랬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가올 겨울이 유독 춥게만 느껴졌다. 벌써 이렇게 날씨가 추워진 것이다. 


이어폰을 가져왔다. 잠시 세상의 소음과 멀어질 시간이다. 다시 그 노래를 듣는다.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릿결을 만져달라는 가사에 빠진다. 그렇게 빠져들면 다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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