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 축의 역사 (정리)

by 광규김

카렌 암스트롱의 명저 <축의 역사>를 이곳에 정리합니다.


축의 시대: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여정


축의 시대(Axial Age)는 인류가 신화적 의식에서 윤리적·철학적 자각으로 도약한 천 년 이상에 걸친 장대한 변혁의 시기였다.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명명한 이 시대는 기원전 800년에서 2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나타났지만, 그 뿌리는 기원전 16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영향은 기원전 220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본 편에서는 축의 시대의 전개 과정을 9개의 시기로 나누어, 각 단계에서 인류가 어떻게 폭력과 혼란에 대응하며 새로운 영성과 윤리를 창조해 나갔는지를 추적한다.


1장: 축의 시대 문명 벨트 (기원전 1600~900년)

아리아인의 이주와 전사 문화의 탄생

축의 시대의 서막은 러시아 초원에서 살던 아리아인들의 대이동으로 열렸다. 초기 아리아인들은 자연의 힘을 숭배하며 비교적 평화로운 목축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나 전차와 말의 군사적 활용이라는 기술 혁신은 이들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기동성과 파괴력을 갖춘 전차 부대는 전례 없는 군사적 우위를 제공했고, 이는 곧 폭력적인 전사 문화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 새로운 전사 계급은 약탈과 정복을 통해 부와 명예를 축적했으며, 용맹함과 전투 기술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평화로운 농경민들은 이들의 침략 앞에 무력했고, 폭력은 사회 질서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폭력의 확산은 역설적으로 축의 시대의 윤리적 각성을 촉발하는 배경이 되었다.


조로아스터: 윤리적 선택의 탄생

이란 지역에 나타난 조로아스터(기원전 1500~1000년경 추정)는 이러한 폭력적 전사 문화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를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윤리적 프레임으로 해석했다. 아후라 마즈다(지혜의 주)와 앙그라 마이뉴(파괴의 영)의 투쟁 속에서, 인간은 중립적 관찰자가 아니라 능동적 선택의 주체였다.

조로아스터의 혁명적 통찰은 종교를 제의적 행위에서 윤리적 선택의 문제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신을 달래는 희생 제사보다 중요한 것은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이었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최초의 종교 사상 중 하나로, 이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인도: 리그베다와 희생 제의의 정교화

인도 아대륙으로 이주한 아리아인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리그베다로 집대성된 정교한 희생 제의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 제의에서 중심 개념은 '리타(ṛta)', 곧 우주의 질서였다. 사제들은 복잡한 의례를 통해 이 우주적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다 시대의 종교는 고도로 의례주의적이었다. 제사의 정확성, 만트라의 올바른 발음, 제물의 적절한 배치가 우주의 운행을 좌우한다고 여겨졌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들은 이 비의적 지식을 독점함으로써 막강한 사회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제의에 대한 강조는 이후 우파니샤드 시대에 근본적으로 도전받게 된다.


중국: 상나라의 조상 숭배

중국의 상나라(기원전 1600~1046년경)는 조상 숭배와 샤머니즘적 제의를 국가 통치의 중심에 놓았다. 왕은 조상 신령과 소통하는 샤먼이자 제사장으로서, 점복을 통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다. 갑골문에 새겨진 점사 기록은 이러한 제의적 통치의 생생한 증거다.

상나라의 종교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규모 인간 희생이었다. 왕의 장례식에서는 수백 명의 노예와 포로가 순장되었으며, 이는 죽은 왕이 저승에서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잔혹한 제의는 주나라의 천명 사상에 의해 비판받고, 점차 인도주의적 방향으로 개혁되었다.


우주 질서의 유지: 공통된 관심

이 시기 세 문명권의 공통점은 제의를 통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인도의 리타, 중국의 천도(天道), 조로아스터교의 아샤(asha)는 모두 인간의 의례적 행위가 우주적 조화를 보존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 중심 종교는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려도 폭력과 고통은 증가했고, 이는 종교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2장: 불안과 공포의 시대 (기원전 900~800년)

기존 질서의 붕괴

기원전 900년경부터 기존의 사회 질서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기의 보급으로 전쟁은 더욱 치명적이 되었고, 제국들의 팽창은 수많은 소국들을 위협했다. 전통적인 제의와 신화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인류는 깊은 실존적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엘리야와 종교적 결단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자 엘리야(기원전 9세기)가 나타나 바알 숭배에 맞서 야훼 신앙을 수호했다. 아합 왕의 왕비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강요했고, 많은 야훼 예언자들이 순교했다. 엘리야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의 대결을 통해 야훼만이 참된 신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엘리야의 의의는 종교적 배타성과 결단력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는 야훼와 바알 사이에서 타협이 불가능하며, 신앙은 명확한 선택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예언자적 급진주의는 이스라엘 종교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으며, 이후 아모스와 호세아 같은 예언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인도: 제의의 내면화 시작

인도의 현자들은 외적 희생 제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동물을 죽이고 복잡한 의례를 행해도 삶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았다. 일부 사제들은 제의의 진정한 힘이 외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수행에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는 제의의 내면화라는 결정적 전환의 서막이었다. 제단 위의 불은 인간 내면의 영적 열정으로, 제물은 자아의 희생으로, 만트라는 명상적 집중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우파니샤드 시대에 완전히 꽃피게 된다.


그리스: 암흑 시대의 혼란

그리스는 미케네 문명의 붕괴 이후 암흑 시대(기원전 1100~800년)를 경험했다. 문자가 사라지고, 무역이 중단되고, 인구가 감소했다. 화려했던 궁전 문명은 작은 마을 공동체로 퇴행했다. 이 혼란 속에서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사회 구조를 모색해야 했다.

그러나 이 암흑 시대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했다. 중앙집권적 왕권이 사라지면서 더 평등주의적인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이 시기의 영웅적 가치관을 보존하는 동시에, 전쟁의 비극성을 성찰하는 문학적 공간을 제공했다.


불안이 낳은 탐구

이 시기의 불안과 공포는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기존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 우주의 실재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다음 시기의 획기적인 통찰들을 준비했다.


3장: 자아의 발견 (기원전 800~700년)

내면으로의 전환

기원전 8세기는 인류가 외부 세계의 신들과 우주적 질서에서 시선을 돌려 인간 내면의 도덕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종교의 핵심이 제의에서 윤리로, 집단적 의례에서 개인적 책임으로 이동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아'의 발견이었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사회 정의

아모스(기원전 760년경)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문서 예언자로, 사회적 정의를 신학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부유한 지배층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그의 선언은 종교를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전환시켰다.

아모스는 더 나아가 야훼가 원하는 것은 제사와 제물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라고 선언했다. 이는 제의 종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성전에서 아무리 많은 희생을 드려도, 과부와 고아를 억압하고 가난한 자의 권리를 빼앗는다면 그것은 야훼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호세아(기원전 750년경)는 아모스의 정의 신학을 보완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과 헌신의 언약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 경험을 통해, 야훼가 배신한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는 신임을 깨달았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라는 그의 메시지는 종교의 핵심이 의례가 아니라 관계임을 천명했다.


중국: 천명 사상과 도덕적 통치

주나라(기원전 1046~256년)는 상나라를 무너뜨리며 통치의 정당성을 설명할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다. 그들이 제시한 것이 '천명(天命)' 사상이었다. 천명론은 통치권이 혈연적 세습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은 도덕적 위임이라고 주장했다. 덕이 있는 자는 천명을 받고, 덕을 잃은 자는 천명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 사상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왕권이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조건부라는 주장은, 혁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폭군은 천명을 잃었으므로 교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나라는 요, 순, 우 같은 전설적 성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상을 제시했다. 이들은 왕위를 자기 자식이 아니라 가장 덕망 있는 자에게 물려주었다고 전해진다(선양 제도). 이러한 이상화된 과거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이 되었다.


인도: 내면의 힘

인도의 사제들은 희생 제의의 효력이 외적 형식보다 제사장의 내면적 집중과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브라만(Brahman)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이는 처음에는 제의적 주문의 힘을 의미했지만 점차 우주를 관통하는 근본 실재를 가리키게 되었다.

제의의 성공은 사제가 자신의 내면에서 이 우주적 힘과 연결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이는 제의의 초점을 외적 행위에서 내적 준비와 수행으로 이동시켰다. 고행(tapas), 명상, 금욕적 훈련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이러한 경향은 우파니샤드에서 완전히 꽃피게 된다.


자아 발견의 의의

이 시기에 세 문명권이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아였다. 외부의 신들이나 우주적 힘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도덕적 능력과 책임이 종교와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이는 인간을 단순한 제의의 수행자나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윤리적 행위자로 재정의한 것이었다.


4장: 앎을 향한 기나긴 여행 (기원전 700~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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