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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용할 양식 Nov 01. 2020

10. 가장 환하고 따뜻한 품

짝꿍 할머니가 배추를 식칼로 베고 지나가면 저는 그 뒤를 따라 배추 세 개씩 망에 담습니다. 이것이 할머니와 제가 짝꿍으로서 해내는 한 호흡인데요. 배추를 주워 망에 담기만 하면 되는 단순 노동이지만, 배추가 워낙 무거우니 농장 알바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힘듭니다(배추, 무, 수박, 양배추 등 무거운 야채를 기르는 농장에서 연락 올 때면 겁부터 납니다). 올해 우리집 배추가 머리통만 해요. 무는 장딴지만 하고요. 이런 얘기는 키우는 농부 입장에서야 자랑스러운 얘기일 테지만, 일일 노동자로서 들을 땐 끔찍한 하루를 예견하게 만들죠. 무게도 크기도 머리통만 한 배추들이 밭을 꽉 채운 꼴이란 전혀 반갑지 않다고요. 실로 배추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망에 쑤셔 넣기를 1시간만 해도 온천으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런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을 쥔 자는 말이 없습니다. 할머니는 단칼에 배추를 쓰러트리며 그저 전진. 제가 배추와 씨름하느라 주춤거리는 사이, 할머니는 어느새 세 걸음, 다섯 걸음 멀어져 갑니다. 할머니는 어디서 오셨어요(짝꿍 할머니와는 처음 만난 사이입니다). 아침 드시고 오셨어요. 잠시 숨을 돌리려면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말을 걸어 할머니의 집중력을 흩트리고, 칼을 쥔 손이 느려지게 하는 수밖에요. “나는 저-짝 운무리에서 왔는디. …” 곧잘 대답은 해주시는데, 할머니의 손이 멈추질 않아요. 이런, 통하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기복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저는 그의 쉬지 않는 등을 보며 망연자실합니다. 오늘은 꼼짝 없이 고수를 만났어요.      




어딜 가나 저는 할머니들과 한 팀입니다. 힘과 기계를 써야 할 일은 한쪽에서 남성들이 웅성웅성 마무리 짓고, 저는 할머니들 옆자리로 배치되어 나란히 양파 모종을 심거나 시금치를 캐고, 잡초를 뽑아요. 저는 항상 이 팀에서 쪼렙(하수)을 담당합니다. 무슨 일을 맡든 할머니들은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고 재빨라서 늘 저보다 한수 위니까요. 나란히 같은 곳에서 출발해도 어느새 할머니 모두 나를 제치고 저 앞에 가 있습니다. 꼴찌가 되면 기필코 그들을 앞지르고 싶어지는데, 할머니 속도와 실력을 따라잡으려다 가랑이가 찢어지기 일쑤죠.  

“할머니들 왜 이렇게 빨라요?”

뒤에서 비틀거리는 저를 향해 쑥스러운 미소를 보내고 다시 일에 집중하는 카리스마는 할머니 존재를 더 대단히 보게 만듭니다. 이렇게나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할머니들에게 겨우 일당 5만원이라니. 기계나 힘을 쓰는 일엔 일당이 8만원인 걸 비교하면, 힘쓰는 몸이 아닌 것엔 너무 박한 가치를 매기는 세상 아닌가 억울합니다. 사람이 빠져나간 시골의 빈자리를 바지런한 일손으로 채워주는 건 할머니들인데요.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를 할머니들과 매번 처음 만나 온종일 팀으로 함께였다가 헤어집니다.  점심으로 백반을 함께 먹고, 간식으로 초코파이도 나누어 먹고는 농장주의 트럭을 얻어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죠. 통성명은 안 하는 게 대부분이니 시간이 지나면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시 마주친다 한들 그때 우리 함께 양파를 심었다고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다만 어떤 할머니가 초코파이 하나를 내게 더 챙겨주셨지, 너도 그늘로 들어와 쉬어라 손짓하셨지.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봐도 허리는 펴지지 않고 앞으로 고부라진 채였지. 정도만 기억에 남겠죠.     



농사 갈무리가 끝난 한갓진 겨울에 토종씨앗(대대로 한 곳에서 재배된 종자)을 찾고 기록하는 친구를 따라나선 적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들러 “혹시 물려받은 씨앗 갖고 계신가요?” 물으면 기껏해야 하루에 한 집 정도 토종씨앗이 있다는 대답을 해왔죠. 지난한 노력을 거치는 것에 비해 수확은 적은 기행이었지만 다행히 저는 보고야 만 거예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요. 

“할머니, 혹시 물려받은 씨앗도 있어요?”

“아니, 나 그런 거 없는디.…(망설이다가 귓속말로) 사실은, 있어. 몰래 따라와 봐. 내가 보여줄게. 그래도 나한텐 귀한 건디, 남들이 알면 달라고 할까봐.…”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걸 평생 심어왔다고, 이런 게 토종씨앗이냐고 되물으며 할머니는 씨앗을 꺼냈습니다. 처음엔 이유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죠. 귀엽다고만 생각했어요. 씨앗이 있는데 없다고 숨긴 것이나 아궁이 곁에 화분을 놓아둔 것도요. 아궁이 가까이 가서야 알아차렸죠. 한겨울엔 아궁이 곁이 가장 훈훈하니까 화분을 놓아둔 건 아끼는 마음인 거예요. 깊은 독에 꼼꼼히 묻어둔 씨앗, 아궁이 곁에 자리한 화분, 햇빛 닿는 곳에 놓아둔 꽃나무. 가장 환하고 따뜻한 품마다 할머니는 아끼는 것을 두었습니다. 그 아끼는 마음을 구경하다 저까지 양지바른 곳에 놓인 기분이 들었지 뭐예요. 씨앗을 어떻게 심어왔는지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저는 그의 손에 더 오래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이 손으로 매년 뿌리고 거두었겠구나. 따뜻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화분을 옮겼겠구나. 헤어지기 전, 씨앗 한 움큼을 몰래 제 손에 쥐어줄 때 닿았던 주름들은 한참 뒤에도 기억날 거라는 건 그때 이미 알았고요.      


이런 마음으로 농사지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꼭 천 평, 만 평 땅을 기계로 누비지 못해도, 건강한 장정만큼이나 힘을 휘두르지 못해도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농사짓는 것도 농부의 한 모습이 될 수 있겠다고요. 토종씨앗을 오래 간직한 사람 열에 아홉은 할머니였습니다. 그 잰 손을 움직이며 씨앗을 챙기고, 꽃과 야채를 가까이 들여다보았겠죠, 농사 한편에서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부끄럽대요. 

“에이, 농사는 우리 바깥 양반이 다 짓지. 내가 뭘 하나. 나는 농사는 안 지었어.”

할머니는 자꾸만 아프고 사라지는데 안 그래도 지워지는 얼굴들을 할머니가 나서서 스스로 지우면 어떡해요. 이렇게 많은 씨앗이 할머니 손을 거쳤잖아요. 할머니가 씨앗을 쥐어줄 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이젠 이름도 얼굴도 정말 기억나지 않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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