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 캄보디아에서 온 편지

인생 첫 파마, 캄보디아 집창촌

by 딸삼빠

※ 일러두기 : 이 편지는 1998년에 첫 번째 직장에서 권고사직 당한 후, 1999년 1년간 단기선교로 캄보디아 프놈펜기술학교에서 컴퓨터 교사로 지내던 시절에 썼던 기도편지입니다. 70년 개띠 아재 직딩기 4편과 (https://brunch.co.kr/@givemyself/69)과 5편(https://brunch.co.kr/@givemyself/96) 사이에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당시 캄보디아는 정전이 잦았고 전화선을 통한 모뎀으로 느린 인터넷 연결만이 겨우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글은 이메일로 썼습니다. 24편의 편지와 베트남 육로 여행기 9편, 총 33편의 편지글로 이뤄져 있습니다. 1999년 세기말, 30세 청년 박경규가 26년 후 2025년 56세 장년 박경규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텍스트만 넣은 편지였지만, 브런치에는 최대한 열심히 사진을 찾아서 넣어 보려 합니다. 사진은 스캔해서 넣어서 화질이 좀 나쁠 수 있고, '단기 선교사'로 쓴 글이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표현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쓰던 글투, 말투가 좀 오그라들지만, 오타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수정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등장하는 실명들도 그냥 두었습니다.(불편하시다고 알려주시면 바로 그분은 익명처리 하겠습니다.)


기도편지(9)

1999.3.12.금


안녕하세요? 박경규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드리는 편지인 것 같습니다. 너무 자주 편지를 드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좀 드문드문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기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푸하하..


어제, 그러니까 1999년 3월 11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인간 박경규가 파마를 했거든요!!! 제가 아는 사람 별로 없는 캄보디아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용감한 시도를 해 보겠습니까? 미친 척하고 한번 볶아 봤습니다. 미용반 소피라와 호이라는 두 학생이 덤벼들어서 말아 줬는데, 머리카락 뽑히는 줄 알았습니다. 가끔 거울을 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익! 얘 누구야?’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아마도 저의 파마머리는 훗날에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뭐 사람들 평은 “부드러워 보인다(언제는 날카롭게 보였다는 얘긴가?)”, “딴 사람 같다(괜찮다는 얘긴 절대 안 하네?)” 뭐, 그렇습니다.

사건 현장 사진이 그대로 노출되는, 라스메이 깜뿌치으

얼마 전부터 프놈펜 기술학교에서는 신문을 정기구독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크메르어로 인쇄된 “라스메이 깜뿌치으”와, 영자신문인 “캄보디아 데일리”, 주간(격주던가?)으로 나오는 “프놈펜 포스트”, 이렇게 3 종류입니다. 특히 라스메이 깜뿌치으는 학생들이 이 나라의 사정과 시사적인 문제들을 알도록 돕기 위해 구독한 신문입니다. 그런데, 이 신문에는 거의 매일 1면에 피로 얼룩진 끔찍한 컬러 사진들이 실립니다. 며칠 전에는 폭탄이 터져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오늘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한 남자의 사진, 어제는 오토바이를 노리고 새벽 4시경에 어떤 여자를 목을 베어 죽인 사건의 피해자가 피를 흘리고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볼 때, 특히 목을 베어 죽이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아주 끔찍합니다. 아주 신문을 보기가 괴롭습니다. 저는 이런 신문을 봐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정도인데, 오히려 학생들은 그저 덤덤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참, 이 신문에는 한국의 신문들처럼 “띠로 보는 오늘의 운세”가 실려 있습니다. *.^

영자 일간지, 캄보디아 데일리

몇 주전 저녁에는 저희 차를 타고 뚤꼭지역으로 가 봤습니다. 그곳에는 저번에 말씀드렸던 1km가 넘는 집창촌이 있는 곳입니다. 은연중에 한국의 집창촌을 상상했었는데, 그 초라함이 오히려 실망스러울 정도입니다. 한국처럼 환한 조명아래에 야한 짧은 치마를 입고 허연 허벅지를 내놓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프차나 어울릴 비포장의 울퉁불퉁한 길 사이로 고등학생 정도의 여자 아이들이 판잣집같이 허름한 집 앞에 몇 명씩 서있고 혹은 앉아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중학생정도 되어 보입니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한집 걸러 한집 정도로 붉은색 등이 켜져 있습니다. 저는 이 불빛을 볼 때면, 정육점의 붉은 등이 생각납니다. 왜 집창촌에는 이런 붉은 등을 달았을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육신덩어리, 고깃덩어리의 취급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이 아이들, 매춘여성 중에 50%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저 살기 위해 이곳에 있는 아이들, 곧 병들어 죽어갈 아이들. 에이즈가 무서운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들 서있습니다. 한 오토바이에 3명이 같이 타고 한 집에서 웃으면서 나오는 고등학생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무지함에 몸서리가 쳐지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영자신문, 프놈펜 포스트. 사진은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

부자들은 이런 곳으로 안 옵니다. 일본다리를 건너서 조명이 환한 고급술집들에 아마 갈 겁니다. 이곳에서도 빈부의 차이는 심합니다. 캄보디아에도 외국영화에서 보던 예쁜 자갈이 깔리고, 조명이 들어오고 분수가 뿜어 나오는 아름다운 정원과 멋진 빌라들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 상사직원들은 사업상 이런 빌라들이 있는 곳에 거주하는데, 한 집에 갔더니 집이 앞에서 설명한 그런 집이고, 내부는 별장 같은 느낌입니다. 또한, 물론 중고차들이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한국에서보다 몇 배 자주 벤츠같은 고급승용차들을 볼 수 있습니다.


프놈펜에서의 주요 운송수단은 아마도 모터사이클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아침이면 도로변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아침 6시가 넘으면 요란한 모터들과 자동차 소리로 잠을 깹니다. 그 소음과 매연과 먼지는 대단합니다. 길을 가득 메우고 모터들과 자동차들, 자전거가 엉켜서 다닙니다. 대부분의 4거리에는 신호등이 없는데, 가끔 있는 좀 큰 사거리가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신호체계는 매우 재미있는데, 녹색불과 빨간불만 의미가 있습니다. 녹색불일 때는, 직진, 좌회전, 우회전이 다 가능합니다. 물론 반대쪽도 녹색불이니까 오는 차도 직진, 좌회전, 우회전이 다 가능하지요. 그러면 차가 엉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충 눈치를 보며 슬슬 머리를 들이미는 사람이 먼저 가는 거지요. 이곳에서는 중앙성 침범, U턴, 심지어, 차량흐름과 반대로 운전해도 별로 문제가 안됩니다. 눈치껏 대충 가면 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차들이 빨리 달리지 못합니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옆에 마구 끼어들기도 하고, 자전거도 자유롭게 끼어들고, 중앙선을 넘어서 갑자기 차가 오기도 하고, 정신이 없거든요.


좋은 점은 대형사고가 잘 안 난다는 것이죠. 차량의 경우는 그냥 추돌사고 정도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 하고 차량하고 부딪히면 오토바이가 끝장이 납니다. 오토바이가 매우 위험합니다. 김도완 전도사가 차를 몰다 보면 하루에 한 번은 사고를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차량이 안전하지요. 적어도 죽을 일은 별로 없을 테고, 강도들도 차량에는 잘 접근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는데, 차량에 총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저희 학교에서 구입한 소나타는 중고이기는 해도, 이곳에 많은 중고차들에 비해서 디자인이 멋진 편인 데다가 NGO 번호판을 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편입니다. 그런데, 원주인(원주민 아님 *.^)이 처음부터 캄보디아에서만 이 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차가 길이 안 들어 있답니다. 저는 운전할 줄 모르니까 잘 몰랐는데, 차를 처음 사면 고속도로를 140,150km 정도로 몇 번 달리면서 밟아 주어야 가속력도 좋아지고 차가 길이 든다던데요? 안 그러면, 기름을 많이 먹고 속력도 안나는 차가 된답니다. 그런데, 저희 중고 소나타가 딱 그 상황입니다. 그래서, 차도 좀 길을 들일 겸, 어디를 좀 다녀왔지요. 어딘고 하니.. 그 얘기는 다음 편지에 하겠습니다.(괜히 뜸 들이고 있음.) 편지가 너무 길면 짜증 나잖아요? 푸하하..

*.^

샬롬~


1999.3.12.금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박경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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