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엘라 휠러 윌콕스 '고독' 중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가 15년간 갇힌 방에 걸려있던 기괴한 인물화 밑에 쓰여있던 문구이다.
해가 지날수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다.
웃으면 복이 오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사 찡그린 얼굴을 한 사람에겐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에겐 지켜야 할 규칙이 많다.
하지만 규칙이 많아지는 것엔 부작용이 있다. 분노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주의 깊은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숨 쉬듯 남에게 폐를 끼치고 분노를 유발한다.
맘에 안 드는 상황, 맘에 안 드는 사람... 화를 유발하는 일은 쉼 없이 찾아온다.
분노가 많아지면 행복이 줄어든다.
나를 사랑하겠다는 결심은 행복해지겠다는 다짐이다.
행복해지겠다는 다짐엔 불행요소들을 소거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분노할 일들을 줄여 나가려고 한다.
분노할 일을 줄이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막는 게 아니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고 애초에 통제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왜 저러지? 왜 타인의 입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거지?
왜? 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내 생각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지는지 생각해 봤다.
타인의 행동에 숨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나빠진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사람의 행동에는 나를 엿 먹이려는 의도가 없다'
이 주문은 내게 아직까지 꽤 효과가 있다.
저 사람은 사려 깊지 않을 뿐이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면
분노할 일들 중 많은 일들이 견딜만한 일이 된다.
타인의 행동에 나에 대한 적대감과 무시하려는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지금까지 내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이었다.
굳이 힘들어하지 않아도 됐던 순간도 나는 이런 생각 때문에 고통받았다.
'피해의식.'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타인의 행동은 내 입장에서 어떻게 봐도 내 관점을 벗어나기 힘들다.
역지사지하는 것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 그 사람 맘은 결국 그 사람만 아는 거다.
그러니 내쪽에서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게 건강에 좋다.
지금 이 사람의 행동에는 나를 엿 먹이려 할 의도가 없다. 타인의 행동을 해석하려 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