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려야 되는 이유

쪽팔림은 일시적이고 그 뒤엔 성장이 있을지니

by 기역


원래 존재 자체가 쪽팔린 거야. 아니야?
숨 달고 사는 거조차가 쪽팔린 거야.
밥 먹고 사는 것도 쪽팔린 거고.
쪽팔린다는 소리 듣는 것도 쪽팔린 거야.
쪽팔린 게 뭐 어때서? 그게 뭐 죽을 짓이야?
형은 쪽팔리면 못 살지? 못 견디지?
난 쪽팔려도 안 죽어. 그러니까 내가 위너야. 알아?
난 사람들 밑에 깔려서 내가 쓴 글 씹어대는 거 들으면서
그냥 죽어라 쪽팔리게 살 거니까 냅두라고!

-드라마 '또 오해영' 중-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자신의 꿈을 반대하는 형 도경에게 동생 훈이 했던 말이다.

도경은 동생이 쓴 시나리오를 보고 쪽팔린다고 막말을 한다.

동생을 생각해서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자기 밑에서 기술을 배워 1인분을 해내는 사람으로서 살기를 바라며 한 말이지만 '쪽팔린다'는 말은 훈을 상처 입힌다.

너는 쪽팔리면 못 견디지만, 나는 쪽팔려도 안 죽는다고 날카롭게 응수하던 훈의 말이 내 마음에 팍 꽂혔다.

극의 메인 주인공의 대사가 아니기도 하고, 많이 회자되는 대사는 아니다.

하지만 훈에게 감정적으로 이입이 돼서 슬펐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되었다.


누가 쪽팔림을 더 견딜 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쪽팔림을 감수한 사람들이다.

쪽팔림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의 활동범위를 결정하고 생각보다 삶의 내공을 보여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상엔 쪽팔릴 일이 참 많다.

길 가다가 사람 많은 곳에서 넘어져도 쪽 팔리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혼이 나도 쪽 팔리고,

호감을 표시하고 데이트하자고 했다 까여도 쪽 팔리고,

여러 사람들이 침묵하는데 나 혼자 반대되는 의견 냈다가 분위기가 싸해져도 쪽 팔리고,

진지하게 임한 일에 사람들한테 비웃음을 당해도 쪽 팔린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쪽팔릴 짓을 안 해도 알아서 쪽 팔린다고 쪼그라든다.

훈의 말대로 얼굴을 내놓고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쪽팔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grim_giyeok


사람들이 보고 욕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할까? 욕먹으면 쪽팔릴 텐데.

차라리 내가 나라는 것을 숨기고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로서 외면받느니, 다른 사람이 되서라도 수용받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날 안 좋게 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좋게 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쪽팔릴 걱정을 덜 할 수 있었다.


쪽 팔리지 않는 방법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중간은 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면 쪽팔림을 감수해야 한다.

넓은 세상은 성장을 의미하고 성장하려면 쪽팔려야 한다.


'아, 그때 그건 참 짜치는 행동이었지. 쪽팔리는 짓이었지.'

드러누워 잡생각을 소환하다 보면 솔직히 지금도 나를 쪽팔리게 하는 일들이 수도 없다.

내가 했던 행동들 중에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부끄럽고 잘못된 행동들도 있고 지레 겁먹고 도망친 적도 많다.

언제라도 내가 쓴 글을 뒤집고 싶어 질지 모르면서도 나는 글을 쓴다.

타인의 조소는 늘 두렵다.

그래서 쪽팔림이 별 거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쪽팔림을 극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일곱 번째 마음가짐

쪽팔림을 감수하자.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서.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그린이: 기역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6화분노가 행복을 괴롭힐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