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쫓던 가오는 허상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영화 '베테랑(2015)' 중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서도철은 수상할 정도로 비협조적이라 뇌물을 받은 듯한 의심이 드는 동료 경찰에게 말한다. 이 대사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한국영화 명대사 중 하나로 남아있다.
돈과 관련해서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돈이 가오보다 중요한 사람, 둘째는 돈보다 가오가 중요한 사람이다.
서도철 형사는 후자인 사람이다. 나에게도 돈보다는 가오가 중요하다.
일본어로 가오는 '얼굴'이지만 일상에서 쓸 때는 폼이나 체면을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오'는 어떻게 보여야 한다고 내가 설정한 이미지다.
나에게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이미지가 있었고, 솔직히 지금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번번이 내 예상과 다르게 나를 봐주는 일이 많았고 그건 날 종종 속상하게 했다.
본질도 본질이지만, 나에겐 껍데기가 중요했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좀 있어 보일지를 고민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되 과대포장하려고 했다.
지적이고 시크한 도시 여성 이미지가 소위 말하는 내 '추구미'였던 것 같다.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 것까진 안되더라도, 만만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게서 자유를 빼앗았다.
항상 나를 만만하게 보지는 않을까, 찐따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
생각해 보면 늘 그게 불행의 근원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나와 공부를 못하는 나, 잘나고 싶은 나와 잘나지 않은 나.
직장을 그만두고부터 여윳돈이 없어지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줄었다.
여름휴가,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가기, 각종 공연문화 즐기기 등.
내가 좋아하던 것들 중에 돈이 많이 드는 것들을 놓게 되었다.
핫플(핫 플레이스)과도 멀어졌고 이런 경험을 했다며 자랑하거나 과시할 게 없어졌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역시 많이 사라졌다.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면 브런치에서조차 솔직한 이야기를 못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날 만만히 본다고 해도 상관 없어졌다.
내가 다른 사람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
인생이 좀 가벼워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젠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I am 찐따. so what?
어느 유명 여행 유튜버에게서 그 모습을 보았다.
저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집착하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구나.
지금 내게는 내 감정에 솔직한 게 있어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고
쪽 팔려도 내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내 표현 다 하고 살면 그만인 거 아닌가.
이제 나는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양 빠지는 게 겁나는가? 내가 쫓던 가오는 허상이었다. 허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