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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살 일기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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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Oct 12. 2024

빙구 웃음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 때문인 걸까?


아기가 9개월 차쯤 되었을 때 생긴 것 같다. 아기는 원래 하루에도 여러 번 얼굴이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변한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건 팔불출 같지만 어차피 일기장 같은 글이니 그냥 하겠다. 이 녀석은 잘생긴 얼굴과 귀여운 얼굴이 왔다 갔다 한다.


보통 분유를 먹었을 때나 바로 자고 일어났을 때는 주로 볼이 통통해지면서 귀여운 얼굴이 된다. 하지만 약간 배고픈 상태, 그때 배출까지 해내면 그 순간 볼이 홀쭉해지면서 잘생긴 얼굴이 된다. 가끔은 자고 일어났을 때도 어떤 이유인지 잘생긴 상태가 돼서 놀라기도 한다.


중요한 건 게 아니다. 잘생긴 얼굴이든 귀여운 얼굴이든 평소에 이 녀석은 상당히 시크하게 무표정을 지키고 있다. 좀처럼 잘 웃지 않고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웃음을 한 번 보기 위해 어른들은 여러 가지 재롱을 부리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한번 씨익 웃어주면 그것만큼 짜릿한 순간이 없다. 시크한 표정에서 입술이 살짝 나오면서 미소를 띠는 얼굴은 참 유혹적이다. 아니, 유혹적이었다.




갑자기 아기가 잘 웃기 시작하였다. 웃음도 시크하고 멋진 웃음이 아니라 온 얼굴을 쓰며 이계인 표정 같은 빙구웃음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르겠다. 와이프는 내 웃음을 따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부인했지만, 오랜만에 거울을 보니 맞다. 이런, 내가 그렇게 만든 건가? 빙구 웃음은 빙구 웃음대로 너무나도 귀엽지만 그 시크함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이 웃음을 보고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처음 이 말을 보고 너무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뜻도 제대로 몰랐지만, 멋있었다. 사실 지금도 라캉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조차 없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4 단어, 게다가 욕망이라는 단어는 두 번이나 반복했음에도, 한 철학자의 사상을 축약하여 모두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글 많이 본다. “타인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고 자신의 진짜 욕망을 찾아라.”


명품, 차, 뭐 이런 거에 가치를 두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맞는 말 같긴 한데, 사실 런 욕망이 없다면 확실히 아기에게는 곤란할 것 같다. 아기는 남을 따라 하면서 성장하고, 남이 바라는 행동을 하면서 크게 배우는 것 같기 때문이다. 라캉의 말은 인간의 본성을 관통하는 느낌이고, 또 그런 본성이 없었다면 생존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A.I에 대한 북토크를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었던 'A.I가 인간을 넘을 수가 있을까'에 대한 토론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A.I에 전문가라는 분에게 "지금의 A.I가 지금의 알고리즘대로 어마어마하게 발전한다면 인간과 비슷해질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엄청난 발전을 함에도 인간의 지능과는 결이 다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한 한 가지 가설로 A.I는 시각 정보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기가 받아들이는 시각 정보의 양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서 글자 정보로는 그 갭을 메꿔지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A.I가 시각 정보까지 다 받아들이면 인간과 비슷해질까?"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그럼에도 결이 다른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한 가지 가설일 뿐이지 그게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말 이 녀석은 하루종일 주변을 관찰하고 있다. 어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잠깐 보고 놀다가 버리지만, 새로운 장난감은 한참을 보고, 만지고, 물고, 던진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본 부모의 행동을 끊임없이 따라 하고, 점점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어 한다. 어마어마한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따라 하고, 욕망을 욕망함으로써 이렇게 빠르게 날마다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니체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창조적 정신을 궁극적인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 했지만, 과연 아기가 그런지 의문이 든다. 아기는 관찰하다 보면 대부분의 창조적 행동은 관찰과 모방에 의해 나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웃음을 따라 하는 아기는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전략은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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