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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모턴, "초객체(hyperobjects)"

내 방 안의 공기는 며칠 전 어디에 있었을까요?

by 룡하

티머시 모턴(56)은 이른바 ‘객체지향 존재론’(OOO, Object-oriented ontology)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전개해온 철학자·생태이론가다. 그는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자, 곧 사물들의 비환원적이고 개별적인 본질에 주목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토대로 삼아 새로운 ‘생태정치’를 추구하는데, ‘초객체’(hyperobjects)는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초객체란 국지적인 범위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그걸 존재자라고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물을 말한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 블랙홀, 스티로폼, 항생제, 자본주의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기 위한 시도다.


출처 : 최원형, "[책&생각] 작아져라, 서로 이어지고 의존할 수 있게", 한겨레, 2024.07.05,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47805.html


모턴은 다분히 일상적인 존재인 지구 온난화를 일종의 ‘거대사물(hyperobject)’로 본다. 그는 거대사물을 “인간에 비해 광대한 시간과 공간에 펼쳐져 있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거대사물에서 ‘거대(hyper-)’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서 압도적이라는 의미고, ‘사물(object)’은 무한에 가까운 사물(객체)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객체 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지식 체계로 담아내기에는 너무 크고 인간과의 관계로만 쓰임새를 정하기에는 너무 다채로운 것이 바로 거대사물이다. 따라서 거대사물을 깔끔하게 이해하거나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거대사물은 마치 외계인처럼 ‘낯설고 낯선 존재(strange stranger)’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대사물이 외계인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거나 먼 미래에야 온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거대사물이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인간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구 온난화를 먼 곳의 일, 훗날의 일로 여기는 것도 착각이다. 그 낯설고 낯선 존재는 바로 지금 우리의 일상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거대사물을 이해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기에 이것을 ‘느껴야’ 한다. 거대사물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은 감각과 감성으로 작동하는 미학적 영역(aesthetic dimension)에서 경험해야 한다. 모턴은 거대사물의 특징을 끈적거림(viscosity), 비지역성(nonlocality), 시간적 파동(temporal undulation), 페이징(phasing), 상호사물성(interobjectivity) 등으로 정리한다.


출처 : 이동신,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지구 온난화는 자연의 문제인가?", 문화일보, 2019.12.10, https://www.munhwa.com/article/11162282


이야기는 초객체로 시작한다. 초객체는 시간과 공간에 걸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물이다. 블랙홀은 하나의 초객체이고, 지구 온난화도 하나의 초객체이며, 생물권도 하나의 초객체이다. 우리는 초객체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저 초객체적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종으로서의 우리가 시공간에 걸쳐 대량으로 분산된 사물인 한, 우리가 바로 초객체이다. 저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와 자본주의처럼 우리가 지구를 파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대부분의 초객체는 인간에 기원을 둔다. 특정한 종류의 인간이 세계를 초객체적 시대로 인도했는데, 이 게임에서는 그런 종류의 인간을 초주체(hypersubject)라고 부른다. “초주체는 전형적으로는 백인이고, 남성이고, 북부의 사람이고, 영양상태가 좋고, 모든 의미에서 근대적”이다. 초주체의 시간은 끝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폐허에서 미래를 조직하여 지구로 돌아가는 길”은 저주체성(hyposubjectivity)을 배양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라고 저자들은 본다. 부분적으로 “저주체는 초객체가 그 자신에 관해 느끼는 방식”이다. 저주체의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저주체는 인류세의 토착종이며, 이제야 막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2) 저주체를 둘러싼 초객체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저주체 또한 다면적이고 다원적이며, 아직-아님이고, 여기도 저기도 아니며, 부분의 합보다 작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저주체는 초월적(관계들을 뛰어넘어 상승하기)이라기보다는 저월적(관계들을 향해 이동하기)이다. 저주체는 권력은 물론 절대적 지식과 언어를 추구하거나 가장하지 않는다. 대신 저주체는 놀고, 보살피고, 적응하고, 아프고, 웃는다.


(3) 저주체는 필연적으로 페미니즘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적이며, 다인종적이고, 퀴어적이며, 생태적이고, 트랜스휴먼이자 인트라휴먼이다. 저주체는 남성백색이성애석유근대성의 규칙과 그 규칙이 요약하고 강화하는, 정점에 선 종의 행동을 재인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주체는 멸종 판타지의 축복-공포를 저지하기도 하는데, 저주체의 이전들·지금들·이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4) 저주체는 스콰터이자 브리콜뢰르이다. 저주체는 틈과 비어있음에 거주한다. 저주체는 사물을 뒤집어 놓고 파편과 잔해로 작업한다. 저주체는 탄소 격자 생활과의 연결을 끊고, 비축된 에너지를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해킹하고 재분배한다.


(5) 저주체는 기술근대 레이더가 감지할 수 없는 곳에서 혁명을 일으킨다. 저주체는 자신이 현존하지 않거나 현존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끈기 있게 무시한다. 저주체는 여기에 진술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저주체를 요약하려는 노력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출처 : 이현건, "초객체 시대의 동반자는 초(hyper)주체성이 아닌 저(hypo)주체성", 대학지성 In&Out, 2024.07.13,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47



내 방 안에 고여 있는

이 공기조차 정체된 것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바다 위에 있었을 수도 있고,

사막의 바람으로 불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공기는 끊임없이 흐르고 이동하며,

내 방과 세계를 이어 줍니다.

닫힌 공간조차 사실은

열려 있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티모시 모턴, "초객체(hyperobjects)"


철학자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은

지구 온난화, 블랙홀, 스티로폼, 항생제, 자본주의 같은 것들을

'초객체'(hyperobjects)라고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너무 크고 복잡해서 정의할 수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바람이 드는 순간을 느껴 보세요.

지금 들어오는 공기는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다 온 손님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은 경험이 나의 삶을

세계와 연결된 공간으로 바꿔 줄 것입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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