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개인의 끝일까요, 아니면 자연으로의 귀환일까요?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다.” 독일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하이데거가 남긴 말이다. 그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죽음에 다가간다는 의미보다는 인간은 ‘죽음’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이며 죽음을 인지한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안다는 것의 방증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출처 : 한소연, "나는 죽어가고있다", 한대신문, 2016.04.02, https://www.hy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8254
하이데거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죽음을 ‘비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이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태도를 하이데거는 ‘타인의 죽음’으로 설명하며, 사람들이 죽음을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자신의 문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인간의 진정한 실존적 자각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죽음을 자신의 문제로 온전히 자각할 때,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고유성’을 깨닫게 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구성할 기회를 얻는다. 하이데거는 이를 ‘선구적 결단’이라고 부르며,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도피가 아니라 죽음을 직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재구성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선구적 결단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삶을 보다 근원적인 방식에서 자유롭고 진정성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출처 : 권수현. (2025).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이해 –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본 죽음의 의미와 죽음 교육 –. 동서철학연구, 115, 231-254.
하이데거는 나의 죽음을 가능성의 근거로 본다. 어떤 가능성인가? 하이데거는 '존재 가능'이라고 부른다. 죽음은 무가 되는 것인데, 왜 죽음을 존재 가능의 근거로 보는가? 내가 참으로 나로서 존재하려면 내가 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부여된 나의 정체성을 벗어나 내용 없는 무아가 될 때 참나가 된다. 죽음이란 참나를 찾을 가능성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실존론적 의미를 지닌다. 하이데거는 가장 개인주의적인 사유를 죽음의 의미와 결합시켰다. 내가 정말로 내가 될 가능성 곧 가장 고유한 나의 가능성은 나의 죽음에서 온다.
출처 : 양명수. (2016). 인간, 죽음을 향한 존재: 하이데거의 죽음 이해. 신학사상, 175, 241-279.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나무, 화초, 잔디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자연친화적인 장례방식입니다.
출처 : 서울시립승화원, "[자연장] 자연장에 대해 모두 알고 싶습니다", 서울시설공단https://www.sisul.or.kr/open_content/childrenpark/bbs/bbsMsgDetail.do;jsessionid=4ucg2ftZZEaOfaSgeYRChVgkWaavqPkgDajyc1ADpSf9KO9wt7SZJXpP1PlehUUG.etisw1_servlet_user?msg_seq=409&bcd=faq
녹색매장은 일반 매장이나 화장과 달리 방부제나 화학 처리를 하지 않은 시신을 생분해성 관에 넣어 매장하는 방식이다. 관이 썩지 않는 일반 매장과 다르게 녹색매장은 시신과 관까지 전부 분해돼 마지막엔 흙으로 돌아간다.
퇴비장은 시신을 나뭇조각, 짚, 약초 등 각종 식물과 특수 용기에 넣고 한 달간 분해하는 방식이다. 미생물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시신을 한 달 안에 흙으로 만든다.
캡슐수목장은 거대한 생분해성 캡슐 안에 시신을 매장하고 그 위에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시간이 흘러 흙으로 분해된 시신은 나무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화장한 유해를 나무 주변에 뿌리는 우리나라 수목장과 다르다.
출처 : 이수연, "죽으면 다시 흙으로...'파묘'할 일 없는 친환경 장례", 뉴스펭귄, 2024.03.11, https://www.newspenguin.com/news/curationView.html?idxno=16265
천장은 시신을 독수의 먹이로 준다고 해서 조장(鳥葬)이라고도 한다.
출처 : 최오균, "독수리의 먹이로 육신 내놓는 사람들", 오마이뉴스, 2011.05.19,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67520
죽음을 우리는 종종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흙으로, 공기로, 물로
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내 몸은 해체되어 다시 토양이 되고,
그 토양은 다른 생명을 키웁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개인의 종말이 아니라,
형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 "죽음"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Sein-zum-Tode)”라고 정의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직면할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생활 속 실천
한 번쯤, 장례 방식에 대해 떠올려 보세요.
나무, 화초, 잔디 밑에 묻히는 자연장,
흙으로 돌아가는 퇴비화 장례,
새와 함께 하늘을 나는 조장 등.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내 죽음을 자연으로 환원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