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최고의 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여줬고 어른들에게 내 그림이 무서우냐고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내게 대답했다. "왜 모자가 무섭니?"
내 그림은 모자를 나타내는 게 아니었다.
그건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나타냈다.
나는 그래서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아뱀의 내부를 그렸다.
그들은 항상 설명이 필요했다.
내 그림 2호는 이러했다.
어른들은 나에게 입을 벌리거나 닫은 보아뱀 그림을 옆에 그리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나에게 지리학, 역사, 계산이나 문법에 좀 더 관심을 가지라고 했다.
나는 그래서 6살에 멋진 화가의 길을 포기했다.
-생떽쥐베리 '어린 왕자'에서
사랑이는 한동안 그림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벽에 낙서는 했고 아무 종이에다 끼적대기는 했지만 의미도 알 수 없는 호작질 수준이었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사랑이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형화된 어른들의 시선과 상식선에서 그림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나는 사랑이가 그린 눈, 코, 입, 귀가 다 달린 첫 인물화를 보았을 때 잘 그렸다며 감탄했다. 그 그림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 상식선 안의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은 코 위에 있었고 코 아래엔 입이 있었다. 그 순서를 뒤바꿔 그렸다면 나는 사랑이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을까?
어느 날 사랑이가 색연필을 들고 오랫동안 종이에 끼적대고 있었다. 제 엄마가 옆에 같이 앉아 있어 주어서 그런지 다른 때 보다 오래 집중하고 있는 거 같았다. 제 엄마가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이 난 사랑이가 내게도 자랑하러 그림을 들고 왔다. 아이가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그림에 나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 놀란 건 사랑이의 그림이 스케치북 한 바닥을 꽉 다 채웠다는 점이었다. 50개월이면 팔에 힘이 충분히 들어갈 나이이긴 하지만 화면을 다 채울 만큼 인내심까지 다 발달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두 번째 놀란 건 그림의 대담함이었다. 꽉 채운 그림 위에 자신만만하게 그린 수많은 골뱅이들, 그 위에 붙인 온갖 스티커들.
"이게 뭐니?"
그림을 보고 이렇게 묻는 게 맞는 걸까?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 그림을 보고 묻던 상상력이라곤 없는 어른들과 같은 질문은 아닐까? 다행히 사랑이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거북이예요."
(색연필, 47개월)
거북의 등딱지인가?
얘가 거북을 어디서 봤지? 석 달쯤 전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전달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어린이집에 거북이가 있었는데 아이가 관심을 보이고 유심히 관찰하더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담아둔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건가? 그림은 사물의 모습을 닮게 그리려 하기보다 느낌과 이미지에 더 초점을 맞춘 거 같았다.
"우와~ 멋지다. 참 잘 그렸어."
두 손 엄지까지 치켜보여주며 호들갑스레 칭찬을 해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는가. 근데 이 칭찬은 진심이었다. 내 눈에는 명작이었다.
"또 그려봐."
"알았어요."
관심을 보여주자 신이 난 사랑이는 다시 색연필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얼마 걸리지 않아 다 그렸다며 또 다른 그림을 들고 왔다. 이미 설명도 들은 뒤라 이번에는 나도 거북이인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47개월)
생떽쥐베리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항상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지리학, 논리, 역사, 문법 따위에 더 관심 가지라고는 하지 않았다.
생떽쥐베리 주위의 어른들 보단 내가 더 현명해서가 아니었다. 한글도 다 깨치지 못한 만 네 살 아이에게 그러기엔 너무 일렀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멋지다! 최고야!"
제 엄마와 나의 칭찬에 으쓱대며 사랑이는 풀을 찾았다. 풀을 주자 그림 뒤에 듬뿍듬뿍 넘치도록 풀칠을 하더니 벽에 턱 붙였다.
아빠, 할아버지, 모두에게 보여줄 거라고 했다.
근데.....
저 그림들을 떼고 난 뒤 우리 집 벽은 무사할까?
"거북이 그린 거지?"
나는 사랑이의 그림을 이해하는 어른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사랑이의 무한한 예술세계를 아는 척하지 말았어야 했을지 모르겠다.
"아니에요, 공룡이에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