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초지현 Dec 17. 2022

눈을 떠 제발

입수는 어려워

철퍼덕!

"쿠~ 아프겠다~" 뒤에서 걱정해 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배와 허벅지가 머리와 함께  수면에 닿았다.(입수는 머리, 가슴, 배 순서로 들어가야 니다)

수면과의 마찰로 벌겋게 달아오르는 허벅지를 쓰다듬을 새도 없이 급히 자유형으로 자리를 비킨다.

다음 사람의 아름다운 입수를 위해.



매주 금요일되면 수영강습 가는 시간을 미루게 된다.

가지 말까 고민하다가  하루만 쉬어도 피로가 똘똘 뭉쳐 어깨에 걸쳐지는 까닭에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뗀다.

승급되어 올라간 강습반에서는 기본영법의 자세를 세밀하게 교정하면서 입수 및 턴을 가르쳐주는데, 금요일이 바로 입수하는 날이다.


딱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 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입수하기 위해 수면을 바라보면 어지러워진다.

전생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었는지..

그녀도 머리에서 깊다 못해 시커먼 바다를 내려다보았을 때 이런 이었을까.

출발선에서 발가락을 꽉 오므리고 선 후  자세를 낮추면서부터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무서워요?"

나만 느끼는 떨림인 줄 알았는데  두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입수 자세를 잡아주는 강사가 의아해한다. 

"자~ 이제 뛰어보세요"라는 말에 수면으로 머리를 향하면서 수경을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질끈 감는다.

꼭 눈에 물이 들어올 것처럼.

눈을 뜨자 다짐해도 번번이 눈을 감고 들어간다.

그리고 늘 철퍼덕!  온몸으로 입수를 한다.




어릴 때 무섭거나 힘겨우면 눈을  감는 버릇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고함을 지르며 싸울 때면 귀 막고 눈을 꼭 감고서 나만의 방을 찾아 들어간다.

현실에서는 내 방이 없었지만 눈을 감으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방의 모양이나 위치는 때그때 달랐지만  있어야 하는 건 따뜻한 햇살이었다. 공기 중 부유하는 먼지가 다 보일 정도로 비치는, 빛 입자가 명한 그런 햇살. 그래서 그 방은 대체로 통유리창이거나 숲 속 근처가 된다.

조용해질 때까지 상상 속 나만의 방에 들어가 온몸으로 햇살을 느끼며 마음의 온도를 올린다.



고3 때는 입시의 무게로 눈을 꼭 감고 있다 보면 잠들기 일쑤였다.  따뜻한 햇살로 노곤해진 터라.

그런데 다른 가족들 눈에는 잠만 퍼질러 자는 고3처럼 보였을 것이다.

터울 있는 막냇동생은 누나가 고3 때 잠만 자는데 부산대학교를 가는 거 보니  대학은 아무나 가는 곳이구나 했다 한다.

미안해요, 나의 모교. 그런 오해를 사게 해서. 그래도 그때는 부산에서 제일가는 학교였건만.



눈만 감으면 당장 눈앞의 힘겨움이 보이지 않으니

성인이 되어서도  유년기에 머문 아이처럼 나만의 공간을 찾아들어간다. 여전히 그때처럼 햇살 가득한 그곳으로.

마음먹은 대 따라주지 않는 몸과, 나이에 맞지 않는 미성숙한 사고에, 내 의도와 달리 벌어지는 간극을 어찌할 바 몰라 또 눈을 질끈 감는다.





물속에서 가만히 번지는 빛을 면 유년기 때 나만의 방에서 보았던 그 햇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제 눈을 떠봐, 햇살처럼 물살이 너의 몸을 감싸줄 거야.

빛이 굴절되 물속으로 찬찬히 들어오듯이  너의 마음도 그렇게  부드럽게 굴절시켜 직접 닿는 물살에 네 마음을 어보.


이제는 두려움에 눈 질끈 감는 나의 유년기를 벗어나 삶의 물살에 온전히 실려 가보자. 넘실넘실


그. 리. 고.

으른답게  

다음 주에는 꼭 남들처럼 눈뜨고 입수 수 있도록.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이전 08화 다른 방향에서의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