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결심 했다. 타이즈 위에 트레이닝 반바지를 덧입고 여자들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갔다. 다들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뻘쭘함은 잠시였다.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간단한 동작인데 다리가 후들거렸고 허리가 쑤셔왔다. 다리를 펴면 무릎이 굽었고, 무릎을 펴면 허리가 꺾였다. 수영, 헬스, 복싱, 클라이밍, 등산 최근엔 서핑까지 배우며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매트 위에서 몸을 꺾고 있었는데 땀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지금껏 배운 운동 중 ‘요가’는 가장 힘든 운동이었다.
요가를 배우기로 한 이유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세계일주, 10억 벌기,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인데, 나의 버킷리스트는 약소하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바로 ‘다리 찢기’다. 그것도 옆으로, 앞으로 찢는 것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면 빠지지 않고 하는 개인기 중 하나다. 저게 무슨 개인기냐며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아이돌이 예뻐서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뻣뻣함은 내 삶의 디폴트 값이다. 학창 시절 체력검증을 하면 다른 종목은 상위 점수를 받았다. 유연성은 창피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다리를 펴고 발끝을 잡는 자세를 할 때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고 관절이 부러질 듯했다.
운동할 때도 뻣뻣함과 유연성 제로는 항상 따라다녔다. 수영 턴 동작 중 ‘플립 턴(flip turn)’을 배울 때였다. 마지막 팔을 당긴 뒤 허리를 둥글게 말아서 한 바퀴 돈다. 그 후 몸을 펴며 벽을 차고 나오는 동작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허리가 말리지 않았다. 분명 무릎까지 접는다고 접었는데 어림없었다.
파워와 스피드가 가장 중요할 거라 생각했던 복싱도 유연함이 필수였다. 관장님은 “유연하면 한 대 더 때리고 두 대 피할 수 있다”며 운동 후 스트레칭을 강조했다. 뻣뻣한 나는 한 대 더 때리려다 두 대 맞았다. 근육 가득한 관장님이 내 몸을 꾹꾹 누르며 몸을 찢어보려 했지만 너무 아파 도망쳤다. 스트레칭 수업이 있을 땐 일부러 늦게 가거나 다른 운동을 하자고 했다.
조금만 더 굽히거나 뻗으면 홀드를 잡을 수 있는데 닿지 않았다. 왜 이렇게 뻣뻣한 걸까. 클라이밍을 배울 때는 악력은 좋았지만 유연성이 없어 힘들었다. 턱걸이로 근력을 키워봤자 삐걱거리는 몸뚱이라 가볍게 올라갈 수 없었다. 서핑도 마찬가지였다. Take off 동작을 하는데 다리가 원하는 만큼 벌어지지 않았다. 중심을 잃은 나는 매번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요가를 배운기 시작한 지 고작 4개월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휴관을 안 했다면 아마도 7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벌어진 각도보다 벌려야 할 각도가 더 많이 남았다.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찢어나가면 언젠간 여자 아이돌 뺨치는 유연성이 생길 거라 믿는다. 글을 쓰는 지금도 양 옆으로 다리를 한 번 쭉 폈다.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호흡 들어마시고, 내쉬면서 천천히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