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한 번째 영화, 머더 미스터리를 보고
영화 성공률이 가장 낮은 장르는 코미디다. 다른 장르는 남들이 재밌다는 영화를 보면 크게 실패할 확률이 낮은데, 코미디는 그게 아니다. 코드가 안 맞으면 아무리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재미가 없다. 올해 초대박을 쳤던 극한직업, 주성치 영화의 대표작인 쿵푸 허슬, 짐 캐리의 초기작 등 상당히 많이 추천 받는 코미디 영화이지만 특별히 재미있게 본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코미디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가벼운 영화를 보고 싶은데, 며칠 전이 딱 그랬다. 얼마 전부터 넷플릭스에서 끊임없이 대문짝만 하게 걸어놔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머더 미스터리가 자꾸 끌렸다. 3일 만에 3000만 명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록을 세웠다니, 코미디는 통계가 먹히지 않는 장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는 셈 치고 봤다.
영화는 코미디와 추리를 반반 섞어놨다. 처음으로 떠난 부부의 유럽 여행에서 한 남자의 초대로 초호화 배에 타게 되고, 그 배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희생자가 생기게 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죽어서야 범인이 밝혀진다. 살인자의 나름대로의 사연도 나오면서. 이렇게만 들으면 어디서 많이 본 포맷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정말 똑같은 포맷이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김전일은 우연히 어떤 모임에 초대를 받고,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살인 사건은 항상 밀실에서 발생하고, 범인은 항상 그 안에 있다. 가해자 및 피해자와 사연이 없는 사람은 김전일과 여친 미유키 뿐. 보면서 내내 김전일이 생각나서, 마치 김전일의 실사화를 보는 것 같았다. 추리보다는 코믹의 비중이 좀 더 높은 버전의 김전일이었다.
코미디는 미국식 개그 일변도인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영 좋아하지 않는데, 대부분이 말로 하는 개그라서 중간중간 웃긴 포인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도 극한직업처럼 타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웃긴 부분들이 있었던 것은 웃기려는 시도가 너무 많았기 때문 :) 우리에겐 이 영화의 웃긴 포인트가 딴 곳에 있었다. 요즘 유럽병이 걸린 상태라서 “조만간 유럽 가자”는 말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있는데, 극 중 남편이 신혼 때 그런 말을 하고선 15년 동안 미루고 있는 장면에서 아내와 나는 둘 다 터졌다. “우리 미래가 저기 있네” 하면서…
이 영화의 8할은 배우가 차지하고 있어서,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아담 샌들러와 제니퍼 애니스톤. 익숙한 얼굴들이지만 따져보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셈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담 샌들러의 영화는 2007년작 ‘레인 오버 미’였고, 제니퍼 애니스톤의 영화는 2011년작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였으니 약 10년 만에 보는 셈이다. 오랜만에 봤지만, 둘 다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배우들이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좋았다. 반복되는 뻔한 연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봐서 식상함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다. 프렌즈의 레이첼이 50살이 됐다는 것에 좀 놀라긴 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인 만큼,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추천작은 아니다. 그래도 배우에 대한 향수나 멋진 유럽 풍경, 가벼운 개그와 추리, 100분이 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 등으로 편하게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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