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7-1 코스
올레 7-1코스를 걷고 있습니다. 갈매생태 공원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을 끼고 흐르는 연외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마냥 걷습니다.
10월인데도 날씨가 한여름처럼 덥네요. 땀이 비처럼 흐릅니다.
논두렁 길을 걷고 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들개 한 마리가 저를 따라옵니다. 괜스레 겁이 납니다. 왜 날 따라오는 걸까. 몇 번 뒤를 보다가 손을 치켜들며 따라오지 말라고 나름 위협을 해봅니다. 들개는 잠시 멈춰 섰다가 제가 다시 돌아 걷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따라붙습니다. 먹을 걸 달라는 건지, 놀아달라는 건지, 나를 향해 경계심이 생겨 공격이라도 하려는 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난감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순간 뒤에서 달려들어 내 다리를 물까 싶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걷습니다. 동물들 앞에서 등을 보이며 걷는 게 아니라는데 이렇게 걷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들개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닌 것 같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이라 그게 더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네요.
들개는 멀찍이 간격을 두고 따라오기만 할 뿐이었지만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리적 압박을 줍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요. 한참 후 두 갈래로 나뉘는 길목에서 저와 다른 방향으로 개는 지나갑니다. 이때다 싶어 잰걸음으로 멀찍이 개에게서 떨어져 이동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개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저와 가는 길이 비슷했던 걸까요. 인간의 입장에서 개의 진의를 알 수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가 어딘가에서 다시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어 연신 주위를 살피며 걷습니다.
아무튼 가끔 길을 걸을 때 이렇게 들개들과 마주치면 참 난감합니다.
올해 1월에 왔던 고근산으로 다시 왔습니다. 올레 7-1코스 안에 포함되어 있네요. 저 멀리 한라산이 보입니다. 저 멀고도 웅장한 곳을 갔다 왔다는 게 새삼 믿기지가 않네요.
고근산 정상을 한 바퀴 돌며 내려갑니다.
1월에 이곳에 왔을 땐 통제가 되어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았네요. 여전히 데크에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잠시 서서 감상에 젖어 있다가 발길을 돌립니다.
얼마 전 긴 연휴의 추석이 끝났죠. 이맘때만 되면 명절 때문에 일어나는 아내와 남편, 시댁과의 갈등을 뉴스 기사로 많이 접하게 됩니다.
저는 남자이고 장손인데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에 오랫동안 거부감을 느껴왔습니다. 제가 여성주의 입장 편에 서서 대립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가부장제가 단순히 비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겪어왔던 가부장제가 힘없는 다수의 약자를 억압하는 소수 강자를 위한 전체주의적 위계질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융통성 없는 경직된 질서 체제에 사로잡혀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하는 게 된다는 사실에 숨 막혀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요. 제 개인의 의식 자체를 어떤 체계에 고정시키거나 어느 누구나 따르고 있는 통합된 질서 안에 획일적으로 순응시키게 하고 싶지 않은 바람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요.
더군다나 가부장제가 제 개인의 삶에 크나큰 물질적, 정서적 혜택을 준 것도 아니고 장남이라는 지위 상의 책임과 의무만 고통스럽게 안겨줬을 뿐이기도 하죠.
만약에 가부장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저에 대한 어머니의 왜곡된 기대치가 아버지의 적극적인 가사 참여로 중재되거나 가부장제의 대표적 상징인 장손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쏟아지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정 위치에 있는 무리에게 유용하거나 그 질서에서 오는 혜택이 만족을 준다면 가부장제도 그런 사람들에겐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길이 될 수 있겠죠.
어떤 체계화된 질서에 사로잡힌다는 건 결국 그 질서에 걸맞은 관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고 그 관점을 통해 외계 사물과 타자들을 종속시켜 대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양자 간 갈등관계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사실입니다.
가부장제 외에도 다른 여러 길도 마찬가지겠죠. 어떤 이데올로기나 물샐틈없는 정형화된 규칙과 교조적인 규범,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몰아적으로 어떠한 신념에 종속되는 일은 늘 타자를 향한 반목의 불씨를 예비해 놓는 것과 다름없는 것 같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그런 길을 걸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길을 잃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길 위에서 어디가 됐던 계속 걸어가는 거죠. 아무도 없는, 길인지도 알 수 없는 그 길을 그저 걷는 거죠. 그러다가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해 내버려진 느낌, 내 정체성이 사라지는 기분을 가감 없이 대면하는 거죠.
사실 그렇게 마주치는 모습의 나가 지금까지 놓쳐 왔거나 애써 외면해 왔던 진짜 ‘나’ 일지도 모르겠네요.
부끄럽고 보잘것없는 나의 실재를 마주칠 수 있는 배경과 바탕이 혼자만의 길에서 조성되었기 때문일까요.
앞으로도 이렇게 걸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