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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Dec 01. 2024

02. 같이 머리를 민 공방 선생님

어?? 저도 그래서 머리를 밀었는데!?!?

공방에 방문하고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 저도 그래서 머리를 밀었는데!?!?


공방을 운영하시는 사부님도 저와 같은 이유로 삭발을 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게다가 저보다 빠른 10대 후반부터 머리를 미셨다고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사부님은 어차피 취업이 안될 것이라 생각해서 처음부터 모자 공방의 길을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전 개인적인 가족사와 경제적인 목표가 있어 어떻게든 틈새를 뚫고 들어가야만 했지만요. 아무튼 선천적인 동시에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밖에 없었던 머리 스타일이 삶의 궤적에 엄청난 영향을 줬던 사실로 충분히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방을 다니면서 베레모, 버킷햇, 헌팅캡, 캐스켓, 비니 등 여러 종류의 모자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공방에서 배운 모자들을 연습하기 위해 집구석에 공방을 만들었어요. 미싱기를 중고로 구매해서 방 한편에 가져다 놓고 연습을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방을 하다 보면 집에서는 처리하기 힘든 엄청난 먼지와 쓰레기가 발생하는데요. 하지만 따로 나가서 공방을 차리기에는 들어오는 수입도 없는데 월세를 감수하고 밖으로 나갈 순 없었습니다.

집구석에 만들어진 공방. 그리고 습작들.




그런데 핸드 크래프트 제품을 만든다는 건 고되지만 생각보다 즐거운 일입니다.


집중해서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자르고 재봉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없이 꺼내 보는 스마트폰 화면을 몇 시간 동안이나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손 안의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비자발적 디지털 디톡스 같지만, 집중하는 그 순간이 고요하고 촘촘해서, 밀도가 높은 시간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크래프트 지에 흑연이 사각거리는 소리, 가위가 천을 자르는 소리, 바늘이 원단을 통과하는 소리. 옆 방 너머에선 오디오로 틀어놓은 키스 자렛, 한스 짐머, 웅산, 조 히사이시, 빌리 아일리시, 존 콜트래인과 같은 좋아하는 음악이 들립니다. 아 그리고 위대하신 아이유 님.


그렇게 작업하다 보면 문득 '그냥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간 방문하시는 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죠?





잊지 못할 과제는 동대문 종합시장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입구는 정말이지 고렙들이나 드나들 수 있는 던전의 입구와 같았습니다. 안에서 무심한 눈길을 던지시는 사장님들이 저를 당장이라도 때려잡으실 수 있는 고렙의 몹들과 같이 느껴져서 밖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중딩때 이태원 삐끼님에게 힙합바지를 강매당한 적이 있네요. 그때의 트라우마인가....

공포의 동대문 종합시장. 사진 초점도 흔들렸다.


그러다 큰 마음을 먹고 숨을 훅 쉬고 들어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생각해도 웃긴 건 무슨 바다를 헤매는 해녀처럼 일정시간이 지나면 나와서 숨을 고르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정말 부담스러웠었나 봅니다. 그래서 두세 번 방문하기까진 사장님들께 말도 못 붙이고 번번이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야만 했어요.


몇 차례 더 방문한 후에야 조금씩 원단과 부자재들을 조금씩 사들고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며 자주 찾는 업체까지 생겼고 사장님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하지만요.


혹시 저와 같은 분이 계시다면 전혀 주눅 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들어가서 아무 말이나 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기억 못 하실 거예요. ^^




모자 만들기를 배우며 신기했던 건, 우리가 가장 흔히 쓰는 캡류의 모자들이 가장 만들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챙에 단단한 플라스틱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기본 미싱기계 만으로는 완성도 있는 모자를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판매를 시작할 첫 번째 제품은 대중적이며 난이도가 크게 어렵지 않은 버킷햇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뭘 만들지 소통하고, 모자를 분해하며 연구 중


어느 날 동대문에서 샘플로 모자를 잔뜩 사 왔는데 같은 버킷햇이라도 각자 다른 특징들이 보이더군요. 원단이 다르고, 챙의 길이가 다르고, 스웨트밴드의 재질이 다르고 등등.. 그냥 사서 쓸 때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온 모자들을 분해도 해보고 재질도 공부하면서 나름의 최적 조합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실험 대상이 된 친구들, SNS에서 나눔 한 모자들


그렇게 만든 여러 버전들로 친구들에게 선물도 해보고, SNS에서 나눔도 해서 후기를 들어 보았죠. 시간이 지나니 점점 제품화의 가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이때가 한 2024년 6월이네요. 육아휴직을 한 뒤로 8개월이 지났고, 모자를 배우기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이때 즈음엔 마음이 좀 급해졌던 거 같습니다. 육아휴직기간은 6개월이었고, 육아휴직을 하던 시점에 사직서도 같이 제출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때는 소속이 없었던 거죠. 6개월만 육아휴직을 한 이유는, 그 정도 기간이면 뭐 하나라도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공격적이고 패기 있는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성공을 경험하는 것도 최소한 1년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급해진 저는,

급기야 SNS에 60일 뒤에 브랜드를 만들겠다며 브랜드 만들기 챌린지를 선언해 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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