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고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때
다시 이사 온 집은
아파트 10층인 남서향이었는데
남서향의 매력은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
해지기 전까지
따뜻한 노을빛이
창문으로 들어오곤 했다.
예전집은 1층 주택이거나
아무리 높아야
3층이었지,
10층은 고층이었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면은 아찔했다.
겁이 없어진 고1은
한번 뛰어내려도 괜찮겠다였다.
극심한 우울증이라
뇌의 상태는
숨 막히는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그러니
일상생활이 되지 않았고
실패자, 패배자,
사회에 버려진 쓰레기,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주제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오자
따뜻한 노을빛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방문을 닫았다.
틈새로 비치는 빛도
보기가 싫었다.
자유로운 베란다로 향하는
거실에 나와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리모컨을 들었다.
탁하고
켜진 tv에서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은
30분 뒤면 끝나가는
영화채널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에 빠질
유아기 때나 보고
열광하고
어릴 때나
‘그 캐릭터 이불 사줘’,
’ 운동화 사줘’,
칫솔 등등
꿈에 그리는 굿즈를 가지면
행복한 인생이라 여겼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켜진 tv에서
그 애니메이션
릴로와 스티치를 볼 줄은 몰랐다.
정신없는 액션씬에
눈이 빠르게 따라가고
아무런 생각 없이
몰입을 하다가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사고뭉치 같은 스티치라는
외계인 캐릭터가
자신을 탄생시킨 박사에게
나를 왜 만들었냐는 질문에
응어리진 마음이 건들렸다.
스티치를 보며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는데
유토피아 같은
그림의 숨이 쉬어졌다.
애니메이션은 끝이 났고
너무 울었던 탓에
기가 빠지고 머리가 깨져와
거실에 누워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강력하게 살고 싶었다.
그다음 날에도
집에 와서 티비를 켜면은
또 다 끝나가는 스티치를 보며
꺼이꺼이 숨을 내쉬며 울었고
또 살고 싶어졌다.
스티치가 직접 와서
마음을 어려만져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딱딱해진 응어리가
부들부들하게,
치유의 시작이되었다.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숨이 트였다.
머리 깨짐에 거실에 누워
숨을 천천히 내쉬며
이 감정그림자 우울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그 장면에서 왜 눈물이 터지고
숨이 트였는지,
알아야 했다.
그러려면 정확한 원인은
아닐 수 있지만
…
이 감정의
첫 시작은
아빠가 집을 나가고부터였다.
상쾌한 유토피아같은
숨을 쉬고 싶어서
나가버린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내 머릿속은
한 방향으로 향했다.
스티치 애니메이션으로
숨이 쉬어졌던 것처럼
이야기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면
굉장한 일이라 여겼다.
내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에
숨이 트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고 싶어진 것처럼,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었으면 좋겠다.
지금 와서 다시 본
스티치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때 봤던 장면이 없었는데
분명, 그 장면에서 울음이 터졌는데
신기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