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상사병인가요?

28화

by 무유

28화 이게 상사병인가요?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사라질 줄 알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서서히 사라지는 휘발성 감정,


누군가를 보면서

숨이 턱 막히면서

아려오는 마음이 들 줄은 몰랐다.


저런 사람이 또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첫사랑은 체력이 좋았는데

지쳐있거나 피곤해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sns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오는 말을 듣거나 보면은

새벽까지 놀거나

야행 산을 타고도

지친 내색 한번 없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짜증 내지도 않고

웃는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은

내 인생에 다시는 못 만날 사람이었다.


그러니

볼 때마다 반하게 되는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잘 없는 무표정이 보였는데

그럴 때면

첫사랑의 나무가 되고 싶었다.


심장이 필요하면

내 심장까지 도려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비가

팔랑거리는

날갯짓을 할수록

여파는 더 세졌다.


한 날 맑은 해가 떠 있는 날씨에

시커먼 먹구름을 잔뜩 몰며

번쩍거리는 천둥과

지나가는 대로

나무를 통째로 올려

회오리치며

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드문 날이라며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첫사랑에게 악수를 건네고

온 이후로

몸이 이상해졌다.


이유 없이 숨이 가빠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밥을 먹어도,

눈을 감아도 떠올랐다.

카페나 식당, 강의실 등등

문이 열릴 때마다

환하게 웃는 첫사랑이

들어오는 환상을 봤다.


도망치듯 고개를 돌려도

시선이 따라갔다.


머리로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부정했지만,

심장은 나보다

더 먼저 알아채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미친 사람처럼

반팔을 입고 다녔다.

심장이 쿡쿡 찌르며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았다.


얼굴은 발그레 붉어있었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집 앞에 있는 산에 올랐다.

새해에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고

야행 산을 탔다.


누가 보면 새해의 해를 보는 듯 보였지만


몸이 피곤해야 생각이 멈춰질 거 같았다.


한동안 그를 못 보았다.


못 보게 되니 더 미쳐갔다.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았다.


좋아하던 밥도 먹기가 싫고

심장은 아려오고 괜스레 눈물이 났다.

설날이 다가오자 더 심각해졌다.

물만 마셔도 위에서 받쳐주지 않았다.



고3 때 위가 한번 발작하듯이 아파왔다.

스트레스성 위염이었는데

주관적으로는 코로나보다도 아팠다.


코로나도 아프지만

약 먹고 푹 자고 며칠만 아프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들었는데

위염은 예측할 수 없는 고통에

좋아하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미치고

팔짝 뛰는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 위염이 다시 도졌나 싶었다.


그래도 설날인데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야 하는데

의욕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고

물만 마셔도 아프니

집 근처에 문 열어 있는

내과에 가게 되었다.


살집 있고 안경을 쓰고

고집스럽게 생긴

중년 의사 선생님이

예리하게 보았다.


어디가 아픈지 배를 쿡쿡 누르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위염인가요? “


“흠.. 위염은 아닌 거 같고

맹장도 아닌 거 같고

몸에서 열이 나지?”


“네, 몸에서 열이 나고

힘도 없고 눈물이 계속 나요”


“얼굴도 붉은 것이 마음이 아픈가 보네,

그게 상사병이라고 하는 거야

링거나 맞고 가

간호사! 링거 좀”


의료용 침대에 누워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그 순간에도 천장에는 첫사랑이 떠다녔다.


‘내가 상사병이라니…

첫사랑이 너무 보고 싶어 ‘


한동안 못 본 얼굴을 보면

씻은 듯이 나아질 거 같았다.


간호사 언니가 들어와


“푹 쉬다 가요 팔 좀 주세요”


팔을 내밀었는데

혈관이 주삿바늘을 피한다고

푹푹 두 번을 찌르고

안 되겠다며 손등으로 해야겠다면서

손등도 푹푹 두 번 찌르고

안되다면서 발등으로 링거를 맞았다.


‘처음부터 발등으로 하지… 흑흑‘


당황한 간호사 언니는

울고 있는 나에게 휴지로 눈물을

닦아주면서 많이 아프냐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살다 살다 상사병에 걸려

설날연휴에 반팔을 입고

발등에 링거를 맞는

내 인생이 레전드였다.


그 순간에도 병실의 문이 열릴 때마다

첫사랑이 들어오는 환상이 보였다.



-다음 편에 계속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