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미친 시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30화

by 무유

30화 가끔은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예고 -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에세이는 다음화




상사병으로 진단이 내린

설날 연휴가 오기 전,


혼자 조용히 끝내고 싶었다.

좋아한 것도 혼자 조용히였으니까,


해방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한동안 침울이라는 배를 탔다.

침울이라는 배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불꽃의 열병이었다.

심장이 아프다면 이런 느낌일까?

쿡쿡 찌르며 피가 철철 흐르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현실이었다.

스스로는 끝이 났는데

내 안에서는 더욱 깊어갔다.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하얗지도 않고

근데, 볼 때마다 반하게 되는 걸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만 보이게 하는 대체불가의 사람.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을

다시는

못 만날 사람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런데 어떡하겠어,

단념해야지,



차라리 게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진정되는 일이랄까,


잊지 못하는 소소한 일이 있었다.



유명한 영화인 노트북,

연인이 생기면

꼭 같이보고 싶은 영화였다.

하지만 지금 본다고 해서

그렇게 큰 일도 아니고

미룬다고 해서

내가 10년 뒤에도

모태솔로일 수도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보고 싶을 때 보자! 하고

방에 불을 다 끄고

노트북을 켜서

영화 노트북을 봤다.


모든 장면이 재밌고

잊지 못할 영화였지만

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영화 초반에 남자주인공인 라이언 고슬링이

여자주인공인 레이철 맥아담스와

길에서 얘기를 하다가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한복판에

누워 있는 장면이 있는데

레이첼은 위험하다고 하고

라이언 고슬링은 누워보라고 한다.


둘이 누워 밤하늘을 보는데

그 장면이 베스트였다.

따라 해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그런데

더러운 아스팔트에 누워있는다?

음, 영화에만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지

실제로 현실에서는 꺼려졌다.


경상도에서는

겨울에 눈이 잘 오지 않는다.

눈이 내리더라도

금방 녹거나 쌓이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에 소복이 눈이 내렸다.

자격증 준비로 학교에서

친구와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새벽이 되자 한 명, 두 명 집에 가고

친구와 둘이 남았다.

언제까지 할래? 하는 말도 없이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친구가 밖에 눈이 내려 이 한마디에

커튼을 젖히고 밖을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눈이 소복이,

눈사람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눈이 쌓여있었다.

나가자라는 친구의 말에 패딩을

입고 건물을 나왔다.

하얀 눈을 던지고 놀다가

건물 옆에는 오르막인데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서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었다를 반복해서

단단한 얼음이 생겼고

그 위에 눈이 또 쌓였다.


친구가 번뜩 눈썰매 타볼래? 라면서

굴러다니는 종이박스를

들고 와서 눈썰매를 탔다.


“무유야 해봐 재밌어!”


그 모습이 즐거워 보이면서 하고 싶은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에라이 모르겠다고

종이 박스 위에 올라탔다.

굴렀는데도 웃음이 막 새어 나왔다.

추운 것도 잊고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내려오다가 구르고

새벽이라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몇 번 눈썰매를 타고나니

종이박스는 너덜너덜

젖어있고 찢어졌다.


잠깐의 숨을 고르고 있는데

친구가 그 바닥에 털썩 누웠다.

영화 렛미인처럼

양쪽 팔과 다리를 흔드는데

눈이 찌푸러졌다.


“뭐 하는 거야, 일어나 바닥 더러워”


친구처럼 하고 싶었지만

우물쭈물 반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무유야, 누워봐 하늘에 별이 보여”


“진짜?”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친구 옆에 누웠다.


바닥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엉덩이는 눈썰매로 젖어있었고

냉기가 등에 돌자

나쁘지 않은 냉기였다.


시골 같은 별은 없었으나

몇몇의 별은 반짝였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았다.

물론 나는 살아있지만.


그동안 페르소나로 갇혀있던

진짜의 나가 해방을

만끽하는 순간 같았다.


첫사랑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누그러지긴 했다.


그러고 보니

아스팔트에 못 누울 내가 아니었다.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카타르시스로 짜릿했다.


아스팔트에 누울 수 있는 사람이었네?

왜 못 누울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큰 일을 범한다고 여겼을까?

페르소나는 언제부터였을까?


그때는 떠오르는 생각에

답을 하지 못했다.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 가는 일도 아니라면

가끔 미친 사람이 되어도 괜찮았다.


이 일로 첫사랑에게

고백까지 밀어붙이게 만든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응답하라 1997을 보면서

와닿게 만든 발단이 아니었을까.




예고했던 대로—

다음 화는, 그 고백의 이야기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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