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때문에 워라밸 포기
불현듯 뒤통수가 따가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
어김없이 보안 시스템 풀가동 중
아이고 인간아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얘는 도대체 어디서 손바닥에
발바닥을 얹는 고급 기술을 연마했을까?
양관식을 뛰어넘을 지극한 순애보와
흉내조차 내기 힘든 공감력 탑재는 기본
귀, 코, 꼬리, 앞발, 뒷발, 궁둥이 할 것 없이
잘근잘근 물어뜯고 싶을 정도의
깜찍함은 또 어쩔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우주를 마주한 것 같은 경이로움마저 느껴져서
정말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대체 전생에 얼마나 착한 일을 했길래
이런 얘가 우리 집에 온 거지?
우주 같은 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민망할 정도로 하찮은 반복 작업이다
그릇에 밥과 물을 채우고
정해진 시간에 밖에 나가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시키는 것
그에 비해 내 우주는
아침 점심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시로 나를 들여다보는
매우 심도 깊고, 고달픈 작업을 해내고 있다
매일 감정 널뛰기 중인 주인 키우느라
니가 참 고생이 많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무궁화예요
어떤 선생님은 제가 6살이라고 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10살이라고 하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살던 보호소에는 이상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밤마다 울어서 잠도 못 자게 하고,
제 간식도 다 뺏어 먹었어요
친한 친구들은 다 이사 가고,
저는 철장 안에 가만히 엎드려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리 언니를 보게 됐어요
언니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저를
좁고, 캄캄한 상자에 넣었어요
상자 밖으로 덜컹덜컹- 끽끽- 빵빵-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오줌도 싸고, 토까지 해버렸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환한 빛이 번쩍하더니
다시 언니가 보였어요
그때부터 저는 언니를 감시하고 있어요
잠잘 때 빼고는 언니만 쳐다봐요
우리 언니는 보면 볼수록 이상해요
종일 컴퓨터만 해서 친구도 없고,
혼자 막 웃다가 갑자기 또 막 울어요
맨날 이상한 춤만 추고, 빵은 또 얼마나 많이 먹는지...
자꾸 제 뱃살 꼬집으면서 놀리고,
어떨 때는 제 발바닥에 코를 대고 있다니까요?
처음엔 3개월만 같이 살기로 했는데
벌써 2년이 지났어요
저 이상한 언니랑 계속 같이 살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무궁화를 돌본다는 생각은 내 오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작고, 연약한 존재가
나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어쩌면 우주 같은 너에게
내가 구조된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