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애 첫 신차
내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아빠의 고물 오토바이를 처분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다이어리에 무려 5년째 적혀 있었지만, 결과는 매년 같았다.
'보류'
빨간색 중고 오토바이는 우리 집 다섯 번째 식구 같았다.
4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해 온 아빠에게 오토바이는 그야말로 ‘업무 필수템’. 아주 어렸을 땐 한 손에 세탁물을 들고,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몰던 아빠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져 보였다. 머리가 어느 정도 커서는 자동차보다 바퀴가 절반밖에 없는 오토바이가 무진장 창피했고,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뭐랄까... 그냥 짠하다.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는 눈 감고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요란했다. 덜덜, 덜컹, 끼익ㅡ 방향을 바꿀 때마다 골목 전체가 들썩였고, 차체는 아무리 닦아도 닦은 티가 나지 않았다. 아빠의 오토바이는 정비소에서도 손사래를 쳤고, 한참 호기심 많은 질풍노도의 고딩들도 탐내지 않는 고물 그 자체였다.
“아빠, 제발 이 고물 좀 버려."
“이걸 왜 버려~ 아직 잘 나가~”
은퇴했어야 마땅한 오토바이를 아빠는 친구처럼 아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기필코 새 오토바이를 사드리자. 이건 나에게 꽤나 큰 지출이자, 짠순이 인생 최초의 비장한 소비 결심이었다.
본격적인 오토바이 쇼핑이 시작됐다. 문제는... 고르는 일이었다. 검색만 하다 하루가 갔고, 다음 날이면 마음이 또 바뀌었다. '모닝 사러 갔다가 벤츠 뽑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눈은 높아지는데 예산은 점점 무너졌고, 쇼핑은 진흙탕에 빠졌다.
“이러다 할리 데이비슨 타고 배달하는 거 아니야?”
웃으며 말했지만, 진짜 그럴 뻔했다.
싸다고 좋아했다가 배송비에 놀라고, 배송비 맞추자고 저렴한 모델로 바꾸면 빠진 옵션에 허탈해졌다. 중고는 절대 안 된다는 다짐 아래. 오토바이 커뮤니티와 비교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다. 신차는 선택지도 적고, 등록비에 탁송비까지 이것저것 빠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내 통장은 '맑음 → 흐림 → 마이너스’를 매우 빠르게 오갔다.
그리고 드디어, 5년을 미뤄온 오토바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배송지는 아빠의 세탁소.
하지만 도착 2시간 전까지도 말을 못 꺼냈다. ‘당장 취소해라’, ‘중고가 훨씬 실속 있다’ 아빠의 짠내 철학이 쏟아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도착 1시간 전, 겨우 입을 열었다.
“아빠, 저 고물 언제 버릴 거야?”
“왜 버려. 아직 10년은 더 탈 수 있어.”
“뉴스 오토바이 사고를 보고도 그래? 버리고 하나 사.”
“멀쩡한 걸 왜 버려~”
“몰라. 이미 샀어. 1시간 뒤에 도착해.”
예상대로 잔소리가 쏟아졌지만, 골목 끝에서 탁송 트럭이 보이자 아빠는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오토바이가 트럭에서 내려오는 동안, 아빠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오토바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설명서를 껴안다시피 들고, 조작법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모습. 그 순간, 나는 아빠의 청춘을 마주한 것 같았다.
40년 세탁소 인생, 생애 처음으로 새 오토바이를 갖게 된 날. 아빠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빠는 20대로 돌아가면 뭐 하고 싶어?”
“음... 돈 많이 벌고 싶지.”
“돈 많이 벌면 뭐 하려고?”
“우리 딸들 주려고.”
아빠는 평생 돈을 벌었고, 그 돈은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러닝셔츠, 기워 입은 옷과 양말. 그 모든 절약의 흔적 속에서도 늘 꿋꿋했던 사람. 절약왕 아빠에게 새 오토바이는 65년 인생 첫 보너스 같은 선물이었다.
누구에겐 그저 오토바이 한 대일지 몰라도 나에겐 명품백보다, 외제차보다 더 찬란한 소비였다. 빌라 주차장 한켠, 아빠의 새 오토바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절약도 좋지만, 사랑은 가끔 비싸고 묵직해야 한다고.
그 후 아빠는 '무한 자랑' 모드, 나는 ‘초절약 모드'에 돌입했다. 카페 대신 카누, 옷은 무한 로테이션, 식사는 냉장고 털이, 넷플릭스는 과감히 해지.
비록 내 통장은 텅장이 됐지만,
번쩍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누비는 아빠를 떠올리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