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이예지 양
닿소리·홀소리를 외우고, 붙여서 글자를 만들고, 글자로 단어를 만들던 게 아빠 어렸을 적 한글 학습법이다. 너는 단어, 글자, 닿소리·홀소리 순으로 배운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엄마는 종종 그림과 단어가 앞뒤로 짝인 카드를 보여주며 네 학습을 거들었다. 그림으로는 사과, 바나나, 파인애플을 곧잘 대답하던 너는 글자만 보여주면 다른 곳을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빠가 보기에는 이상한 교육법이었지만 세상 일은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엄마가 내민 카드는 바나나였다. 아빠 쪽에서 그림이 보이니 네 쪽에서는 보이는 것은 당연히 글자다. 속으로 바나나를 거듭 외치면서 너를 응원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너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더니 그 작은 손으로 재빠르게 엄마 손을 툭 치더구나. 바닥에 떨어진 카드는 그림을 드러냈다.
"바나나."
매서운 손동작과 달리 대답은 차분했다. 그제야 엄마와 아빠는 함께 사는 아이가 제법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아빠, 어제 며칠이에요?"
"어제? 오늘 말고?"
"네, 어제요"
"22일."
"아, 오늘은 23일이구나."
그러니까 네가 제법 자존심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