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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Feb 24. 2024

종갓집의 천안 유교걸, 와플국 드러머를 만나다.

어떻게 천안여자는 와플국, 벨기에까지 오게 되었나 EP.1


나는 한국 토박이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천안으로 이사 가서 초, 중, 고, 대학까지 천안에서 다녔으니 천안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천안호두과자

 21세기에 조선시대 멘탈을 가지신 종갓집 장남인 아버지의 덕택으로 남의 집에서 한번 자본적이 없었다. 대학 때도 통금시간은 오후 8시,  같은 과 친구들과 엠티는 한 번도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사셨을 듯한 조선시대, 풍속화첩_씨름,김홍도


아버지가 그렇게 원하시던 교육대학원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집을 떠나 서울로 올 수 있었다. 드디어 오후 8시 넘어 깜깜할 때 지인들과 약속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도 왔다!!


서울살이 1년 차, 어느 날 사촌동생과 대학로에서 술 한잔 하기로 약속하고 어느 주점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어느 외국인 무리가 우리 옆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외국인인가 보구나 하고 있는데, 사촌 남동생(이하 도른자로 명명/ 평소에도 똘끼 충만)이 갑자기 그 테이블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웨얼 알유 프롬을 시전 하였다.

 

이쿠나,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나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는건 딱 질색인데...도움을 요청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는 도른자 사촌동생...웨얼알유프롬 이후의 외국인들의 설명은 내가 도른자 씨의 전용 통역사가 되어 설명을 해야 했다.


어학연수는 조선멘탈 아버님 덕에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천안의 모 회화학원에서 갈고닦은  실력 덕에 영어는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 모인 현대무용단이었고, 대학로의 극장에서 인터내셔널 아트 페스티발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들은 다음날 공연에 우리를 초대했다. 와플씨는 공연에서 타악기를 담당하고 있었고 드러머라고 했다.  


도른자 씨는 그 공연에 가고 싶어 했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 가기 귀찮은 쪽에 속했다. 도른자 씨가 계속 졸라대며 나중엔 화까지 냈기에 나는 그다음 날 약속을 하고 공연에 갔다. 가기 싫었던 내 게으름이 미안해 지는 너무 재미있었고 즐거운 공연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조선멘탈 아버님의 딸이 아니겠는가. 뭔가를 받았으면 감사의 표시는 해야 한다 생각해 공연장 직원분에게 핸드폰 번호를 남겼다. 적어도 감사표시는 말로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여 와플씨와 연락이 닿았다. 와플씨는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나는 와플씨의 저녁식사를 나와 도른자 씨 모두를 초대 한 저녁으로 생각하고 도른자 씨와 함께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것이 우리의 첫 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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