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3.0 생태계 입성기
20대 후반을 참 고리타분하게 살았다. 위계질서가 강한 언론사에서 4년 동안 근무하며 "야야"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반말을 쓰다 보니 막말이 오갈 때도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내부 회식과 취재원 저녁 자리에 끌려갔고, 맥주 잔과 탬버린을 흔드느라 손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회사 선배들은 회사 일에만 집중할 것을 은연중 세뇌했고, 그렇게 살면 내 인생이 보장되는 줄 알았다.
모두가 알겠다시피 2020년대 들어 나처럼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전 회사가 언론사 중에서도 조직 문화가 가장 수직적인 곳이었고, 지인 중 대부분은 (어느 정도는 조직문화가 개선된)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이 술자리 강요 없는 회사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즐기고 있었다.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나만 회사에 온 시간을 바쳐야 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퇴사했다.
이후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직무는 예전과 동일하지만 조직 문화가 완전히 달랐다. 상사는 중간중간 조직 문화 개선에 필요한 피드백을 받았으며, 조직원이 돌아가며 조직 문화 개선점, 젠더 이슈 등에 대해 발표했다. "야야" 대신 "00 씨"라는 호칭이 부여됐으며, 모든 의사소통이 존댓말로 이뤄졌다. 인원이 적은 편이라 서로의 사생활을 대강 알고 있었고, 선후배 상관없이 연애 상담까지 해주는 정도였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 상하 막론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다 보니 다소 곤란한 지점도 있었다. 그러던 중 퇴근 시간 즈음에 후배에게 업무 지시를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후배는 나와 편한 관계라고 생각했는지 불만부터 표출했다. 나도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지시를 내리는 게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바빠서 후배 외에는 그 업무를 맡을 사람이 없었다. 결국 한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상했다. 오해야 풀었다지만 이후 다소 어색한 사이가 됐다. 내 처신이 미흡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차라리 사적인 얘기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게 DAO(Decentralized Organization; 탈중앙화 자율조직)라는 개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두가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문화를 갖췄기 때문이다. DAO는 특정 주체가 대표를 맡고, 그 대표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법인과 다르다. 여러 명이 조직을 구성하고 자신이 기여한 만큼 보상을 '암호화폐'로 받는 점이 특징이다. 알고리즘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DAO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이해해야 한다.
부동산 계약을 하든, 실손 보험료를 청구하든 그 과정에서 중개인이 존재한다. 계약 당사자들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조건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블록체인 위에서 발생한 거래에서는 이를 스마트 계약이 해결한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문제가 생기는 직군에 종사하고 있어 블록체인 기반 날씨 보험을 들었다고 치자. 손실을 입은 경우 해당 보험은 기상청 데이터를 수집해 이날 비가 왔는지를 확인한다. 실제로 비가 내렸다면 블록체인을 통해 그에 대한 보상을 지급한다. 조건을 충족한 주체에게 대가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DAO에서 스마트 계약은 조직에 기여한 만큼 그 보수를 주는 형태로 적용된다. 직군별로 어떤 암호화폐를 얼마나 줄 것인지 처음부터 공개하는 DAO도 있다. DAO의 보상은 스톡옵션과 유사하다.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를 지급하고, 그 조직이 성장할수록 암호화폐 가치가 상승한다. 조직원이 열심히 일할 수록 더 많은 대가를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한다. 다만, 이익을 추구하는 DAO가 아닌 경우에는 이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가 매겨진 다른 암호화폐를 주기도 한다.
DAO의 장점은 1)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 2) 본인의 이름과 얼굴 등 사적인 정보를 노출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여기까지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래와 같은 질문거리를 떠올릴 것이다.
조직원 소속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계와 유사해 보이는데 누군가 횡령을 하면?
법적으로 DAO를 정의할 수는 있나?
앞으로 이런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대체불가능토큰(NFT), 웹 3.0 등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들이 많다. 다음 글에서는 NFT, 웹 3.0, DeFi 등 DAO와 관련된 용어를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