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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Aug 24. 2024

나의 수많은 달

여름철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즐길 것이 많다. 해수욕장 해안길을 따라 맛집과 커피숍이 줄을 지어 이어져 있고, 해양 스포츠 아카데미에서는 윈드 서핑과 딩기 요트(sailing  dinghy)를 강습(講習) 받을 수도 있다. 불빛 축제와 샌드 페스티벌이 해를 거르지 않고 열리고 있으며, 해변 마라톤이나 해변 가요제처럼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도 잇따르고 있다.


영일대 해수욕장 둘레길을 따라 다 보면, 마을 생김새가 사람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해서 얼마 전까지 '두무치'로 불리었다는 동네가 나온다. 마을 뒷동산의 스페이스 워크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이 예술적 구조물(構造物) 역시 영일대 해수욕장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하나이다. 그런데, 화장(化粧)만 잘하면 눈에 띄지 않는 곰삭은 상처처럼, 영일대 해수욕장에도 은근히 신경을 긁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성인 용품점이다.  


일반 음식점을 양쪽에 두고 'I'm PLACTIC' 간판이 걸린 지는 거의 5년쯤 다. 단골 주점(酒店)을 대신해서 들어선 가게였고, 상점 이름치고는 무척 생뚱맞았다. 평소, 둘레길을 걸을 때 가게가 있는 건너편을 택하지 않은 것은, 삐끼의 호객(呼客)이 성가신 탓도 있었지만 인도(人道) 폭이 너무 좁아 마주치는 사람 교행(交行)하기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I'm PLACTIC' 아래 작은 글씨로 뭔가 적혀 있었지만, 길 건너편까지 이를 만큼 시력이 좋진 않았다. 그저, 장신구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일 거짐작만 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어느 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분홍의 형광빛이 새어 나오기도 했는데, 밤거리 야화(野花)들의 청춘이 저당(抵當) 잡힌 곳에서 꺼질 듯 일렁이 촛불과도 같은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의 내밀(內密)한 속살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PLACTIC'이 바로 그 플라스틱을 가리키는 것임을 그제야 눈치채게 되었다. 아직도 난, 23년 전의 삿된 허물에 매몰(埋沒)되어 있는 한낱 애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연수가 시작된 지 3주 차로 접어드니 6교시의 정규 일과보다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 시작되는 '방과 후 활동'오히려 더 활발해졌다. 대학가의 선술집 순방이나 Morgantown 중심가원행(遠行)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옆에서 참견하거나 타박할 사람이 없으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마실 나가는 일이 이보다 수는 없었다. 게다가 3주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안면이 트자, 여자 선생님들도 기꺼이 밤마실의 동반자(同伴者)가 되어 주었다.


대학가 선술집은 우선 술값부터 쌌다. 1,000cc 생맥주 피처가 보통 1달러에서 1.5달러 정도인데, 감자 칩이나 멕시칸 윙, 치즈나 새우를 토핑(topping)해서 양념으로 버무린 샐러드를 안줏거리함께 주문하곤 했다. 메뉴판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다른 음식도 있었으나, 그중 입맛에 맞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르다 보니 대충  정도였다. 술값보다는 술자리를 파한 후 테이블 위에 남겨둘 팁(tip)의 액수 때문에 종종 설전(舌戰) 벌어지곤 했는데, 팁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첫나들이우리들끼리 어울렸으나, 한두 번의 망설임 끝에 주위 학생들과 말문을 틀 수도 있었다. 보통 이런 일은 S 선생님이 도맡아 했는데, 함께 온 사람물론이고 합석한 학생들마저 S 선생님의 화술(話術)에 녹아들어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和氣靄靄)했다. 그런데, 어떨 땐 말의 고리가 비틀려 서로의 말이 심하게 어긋날 때도 있었다. 이를테면, 남과 북 사이의 대치(對峙) 상태나 DMZ로 시작한 상투적(常套的)인 이야기가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논하는 자리로 비화(飛火)되어, 이를 두고 격론(激論)벌이게 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로 서로를 할퀴고 있던 , 중국의 핵무장(核武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을 때였다. 핵전쟁에 대해 극심한 포비아(fobia, 병적 공포심)를 갖고 있는 백인 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상대방을 몰아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선빵 날리기라도 할 듯 맞은편 학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야말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면서 마음이 허무했는데,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체할 수 없는 희열감에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다. '현장 연수의 묘미(妙味)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며  해외 연수의 당위성(當爲性)대해 침을 튀긴 것이 바로 조금 전까지의 일이었다. 연수가 시작되면서 먼저 귀가 조금씩 트였고, 바깥나들이가 잦아지면서는 말문도 열렸다. 그런데, 무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눈앞의 이 두 젊은 놈이 핏대를 높이고 쌈박질할 동안 귀 씻으며 들으려 해도 귀에 걸리는 말이 없었다. 그랬었구나! 일과 시간, 귀에 쏙쏙 박히던 담당 교수의 강의나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며 깔깔거렸던 모든 말들이 전부 우리들 편의(便宜)를 위해 쉽게 전달해 주는 말에 지나지 않은 거였구나! 가까스로 현실을 직시(直視)할 수 있게 되자, 목덜미로 취기(醉氣)후끈 올라왔다


먹먹했던 머릿속으로도 온기가 돌았다. 잠시 멈추었던 취기가 정수리까지 올라온 것이다. 연수를 떠나기 전, 현지에서 생활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지 않을까 하여 미국 드라마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들의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영어교사로서의 자격지심(自激之心), 그리고 그때 느꼈던 절망스러운 좌절감이 오늘 되살아난 것이다. 모두들 말을 었다. 학생들이 자리를   한참 되었지만, 테이블 위로 마시다 만 술잔만 만지작 거릴 뿐 더 이상 술을 입에 대는 사람은 없었다. 우두커니 바라본 하늘엔 지금껏 본 적 없는 크고 둥근 보름달이 까만 어둠을 묵묵히 밝혀고 있었다. 갑자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떠나온 둘째가 생각났다. 아이가 태어난 지 겨우 스무날도 되지 않을 때였다.


연수를 와서 2주 차까지는 길을 오가다 성인 용품점을 발견하고도 애써 호기심을 억눌렀다. 하굣길 동네 어귀에서 본 성인 용품점은, 바깥 창 테두리를 따라 형형색색의 전구가 깜박거리며 돌고 있었고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진열대 위 크기와 색상서로 다른 자위(自慰) 기구와 성인 용품(sex toy)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란제리를 입은 마네킹과 섹스 (sex doll)촛불처럼 일렁이는 불빛을 등지고 서 있었는데 마치 달아오른 열기를 스스로 식히고 있는 듯 보였다.


오늘 바깥나들이의 목적은 애초부터 성인문화 체험이었다. 성인 용품점(sex shop)은 어른 문화에 생소한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유교적 예법에 익숙한 우리로선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웃을 뿐이었다. 두어 차례의 헛기침을 뒤로하고, H 선생님이 성인 용품점의 문을 열더니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미혼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연수 첫날부터 당돌한 말투와 똑 부러지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토록 담대(膽大)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얼떨결에 몇몇 선생님이 뒤를 따랐지만 대부분 여자 선생님이었다. 남자 선생님은 peep show(벽면의 구멍으로 수위 높은 포르노를 보여주는 행위)를 보러 갔는데, 25센트, 50센트, 1달러의 코인별로 시청하는 시간이 달랐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수위(水位)의 일반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 도색영화)것으로 기억이 다. 하지만 당시로는 그 정도만 하더라도 수위가 높은 이었다. 사실 이날은, 낮에 있었던 토론수업의 연장(延長)으로 미국인의 성문화를 문화적 관점에서 체험해 보려고 시내로 나온 것이다. 그중 하나인 adult only bar(성인전용 바)는 우리가 이전부터 눈여겨보아 두었던 곳이었다. 검은색 정장(正裝)을 갖춰 입은 건장한 사내가 security guard(경비원) 출입구 앞에 버티고 었다. 입장료를 지불하안으로 들어가니, 바 내부는 조도(照度)가 낮은 조명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이었고, 주문한 술을 스툴(stool,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마시는 스탠드 바와 반라(半裸)의 무희(舞姬)가 폴 댄스(pole dance)를 추는 무대 주변의 관람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툴에 앉아 바텐더에게 주문을 하려고 메뉴를 살펴보니, 익숙지 않은 맥주 이름만큼이나 가격도 만만찮았다. 생맥주 피처 한잔 가격이 기본 10달러부터 시작되었는데, 10달러짜리로 주문을 하니 때맞춰 붉은색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다가와 턱 하니 옆자리에 앉았다. 눈치로 보아 매상(賣上)을 올려달라는 표정이어서 메뉴판을 슬쩍 밀었더니 15달러 피처로 냉큼 주문을 한다. 술잔을 앞에 두고 몇 마디 말이 오간 뒤 잔을 슬쩍 바꾸면서 마셔보라 권하는데, 빨간색 루주가 선명한 스트로(straw, 빨대)가 눈에 거슬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에이즈(HIV 감염증)에 대해서 무지(無知)할 때여서 속으로는 무척 겁이 났다. 말로만 듣던 스트리트 걸(street girl 혹은 prostitute, 창녀)이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맥주잔을 들고는 얼른 관람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대 아래의 어둠에 익숙해지자 관람석에 앉은 사람들 얼굴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는데, 대부분 노인이었다. 1달러짜리 지폐(buck)를 손에 움켜쥐고 있다가 무희가 춤을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비키니 끈을 들추고 그 속으로 1달러씩 끼워 주곤 했다. 무희의 교태(嬌態)스러운 몸짓과, 무표정하게 지폐를 끼워 넣는 노인들의 기계적인 손놀림이 어둠 속에서 묘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들 노인들삶이 여유로운 은퇴자(the retired)여서 인지는 몰라도, 무희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서 그 어떤 성적인 욕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료(無聊)한 시간을 그저 재미로 소일(消日)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거의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갈 무렵, 우리를 포함해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하나 둘 가게벗어났다. 밖으로 나와보니, 까만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공해가 없는 청정구역(淸淨區域) 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뚜렷하게 경계를 이룬 지평선 너머로 황금빛 달무리가 보였는데, 일그러짐이 전혀 없는 만월(滿月)의 보름달이었다.


미국에 온 후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태어난 지 스무날도 안되어 생이별을 한 둘째였다. 애처로움에서 오는 그리운 마음 안타까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20달러가 충전(充電)된 전화 카드를 샀지만, 산후조리 중인 아내의 안부를 묻다 보면 금세 시간이 바닥나 아기에 대해선 세세히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어떨 땐 그런 내가 서글퍼져 서러운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연수를 마저 마칠 때까진 여전히 2주 가까이 남았지만, 날이 밝으면 주말을 이용해 뉴욕으로 여행 갈 일정이 잡혀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뒤꽁무니를 쫓아 달무리가 더욱 짙어졌지만, 그러든 말든 얼른 날이 밝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만 잠을 설치고 말았다.


해 질 녘 서쪽 하늘의 늦깎이 해는 안간힘을 다해 하루의 마지막을 소진(消盡)하고 있다. 맞은편 영일만 위로 물빛 회색달이 불끈 솟구치더니 까만 밤바다 위에서 황금빛 달무리로 영글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밤 영일대 달무리도 일그러짐이 전혀 없는 만월의 그 보름달이다.

  

해수욕장의 여름 젊음의 욕망이 넘쳐난다. 'I'm PLACTIC'은 내밀한 뜨거움으로 여전히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아직도 난 가게의 문턱을 넘어선 적이 없다. 교사로서의 유교 예법 때문 아니란 것은, 지난 세월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 자명(自明) 일이다. 교사의 삶에 드리워진 영욕(榮辱) 순간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 때문일 것이다.


나의 수많은 달이 마음 이편에서 떠오르나 싶더니 속절없이 편으로 스러지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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