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대(迎日臺)해수욕장 둘레길을 휴일이나 주말에걷다 보면 두무치 공용주차장 길목에서 꽃을 파는 노점(露店)과 종종마주치게 된다. 두무치, 혹은 설머리로 불리는 이 일대(一帶)는, 환호공원 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해수욕장까지 줄곧 이어진 곳을 이르는데, 길가로는 많은 횟집과 근사한 커피숍이 늘어서 있어 입소문을 듣고 몰려든 외지 사람들로 늘 붐비고있다. 집을 나서 이곳까지 이르려면재바르게걸어도 족히사십여분은걸리는데, 그때쯤이면 모자 쓴 이마엔 살짝 땀이 맺히고,이런저런 생각으로정신도 약간 혼미(昏迷)스러워진다. '맞아!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갈 때까지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늘 이 길을 지나쳐 가곤 했었어.'느닷없이 머릿속을 파고든 생각이었다.
지난 주말에도이 길앞을 정신없이걷고 있다가 꽃을 든 네댓 살 어린애와 그만 부딪힐뻔했다.보라색이었는지하얀색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안개꽃처럼 꽃망울이 작은 꽃을 다발로묶은것이었는데, 고사리 손으로치켜든꽃다발은그리 커 보이진 않았지만 마스크 쓴 아이의작은 얼굴을 거의가리고 있었다.가던 발걸음을 가까스로피해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이는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꽃을 흔들어 보인다. 아마 눈앞 예쁜 꽃을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었으리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노점 주변을 둘러보니, 막 셈을 치른 듯한 할머니가 아이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얼굴로는 박꽃 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이의 할머니가분명하지만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이, 귀밑 머리만 조금 흴 뿐 웃음 띈 얼굴에는 잔주름 하나 없어 보였다. 슬쩍 아이의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가얼굴을 드는데 그만 눈이서로 마주치고 말았다. 가벼운 웃음으로 먼저 목례(目禮)를 하니, 웃음의 의미를금세 알아차린 듯바로되돌려 웃어주는 곱게 휜 눈매가 아이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刹那) 같은순간이었긴 해도, 잠깐 있다가 그 자리를 벗어나고부터는 그만 생각이 길어지고말았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무심하게 지나쳤던여러 광경들이 계절과 장소를 달리하며 머릿속으로 펼쳐지는데, 꽃을 사는 사람들 속에는 어린 학생이 있었고, 젊은 연인들이 있었으며, 나이 지긋한 부부와 심지어는 군인도 있었다. 꽃을 든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환했으며 그런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자내 마음도슬그머니밝아졌다. 그리고는, '꽃을 사는 사람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인지이들의 속마음이 갑자기 궁금해졌다.물론, 꽃을 사는 사람들은 꽃을 품 안에안을 사람들이 기쁨을 듬뿍누릴 수 있도록기꺼운마음으로 꽃을 샀을 것이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좀 전,노점꽃바구니마다 한 움큼씩 꽂혀 있는 형형색색(形形色色) 꽃들의기색(氣色)은, 곧 품 안에 안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저마다 기쁨으로 충만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꽃을 사는 사람들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모으려 할 때드는 위화감(違和感)은, 지나간 일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기쁜 마음으로 꽃을 산 기억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아서인 듯하다. 아니, 지난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있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와 같이 의례적으로 꽃을 사들고 가야 할 순간도 있었을 테니. 그런 점에서따지자면, 내가 마음이 내켜서 꽃을 사고자 했을 때먼저 떠오르는 감정은기쁨보다는 슬픔이다.
지난 추석을 맞아, 하루 미리 아버지를 찾았을 때공원묘지 앞 노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밝고 화려한 색깔의 조화(造花)들이 슈퍼 앞 가판대(街販臺)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공원 앞 마지막 꽃집'이란 푯말이마음을 이끈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번에 꽃을 산 슈퍼 앞이 주차할 공간이 넓어 이곳에다시 차를 세웠다.공원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목에 노점이 하나 더 있었던 기억이주책없이 떠올랐지만, 어머니의 성화를 이겨낼 순 없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이곳에서영원한안식(安息)을 찾은 후,이내 이노점은어머니의 단골이 되었던 것이다.
난 원래 색상이화려한 꽃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 영전(靈前)에 올릴 꽃은 화려한 것을 고르고 싶었다. 제단(祭壇)양쪽의 화병(花甁)에 꽂을 꽃으로 붉고 노란 장미를 골라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니 썩 만족스러워하셨다. 아버지를 모셔 둔 평장(平葬)묘에 이르니, 가지런히 구획(區劃)해 놓은 묘지사이로 주인 잃은 꽃다발이 이곳저곳에 나뒹굴고 있어, 처음엔 성묘객(省墓客)들이 꽃을 교환하고 나서 아무렇게나 버린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난번 태풍이 닥쳤을 때 계곡 속으로 휘몰아친 바람을 못 이겨 제단의 화병 속에서 빠져나온 꽃들이었다. 대충, 꽃이 나뒹굴고 있는 자리를 가늠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원래 있던 자리를 짐작해 화병 속에다 다시꽂아두고는 가벼운 목례로서 망자(亡者)를 위로했다.
성묘 후, 잠시 자리를 물러나서 살펴보니 수수한 색상보다는 화려한 색깔의 조화를 골라 온 게 썩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 국화는제철이어서 보기에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이미 이전에 꽃아 둔 국화가모진비바람으로 때가 타 몹시 지저분했지만, 화려한 색깔의 조화는 염색술(染色術)이 뛰어나서인지 철이 여러 번 바뀌어도 탈색(脫色)되지 않고 여전히 화사한 색상 그대로였다. 오래된 조화 대신 새꽃으로 다시 치장을 하고 나니 다시 묘지 주변이 환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쓸쓸함이 깃들면서말 못 할 미안스러움이솟구쳤다.큰 여동생 생각이 불현듯머릿속으로떠오른 때문이었다.
동생은 멀리 창원 공원묘원에서안식에 들었는데, 기일(忌日)이 추석 바로 이틀 전이다. 말하자면, 어제저녁이 동생의 기일이었던 것이다. 큰 여동생은 내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꽃처럼 예쁜 아이였다. 묘지석(墓地石)의 비문(碑文)을, '늘 우리 가족에게 천사였던 어머니, 당신은 항상 마음속 꽃이었습니다. 영원토록 함께 하소서'라고 새겨두어 늘 우리들마음속 꽃으로 남아있는데, 안타깝게도명절을 눈앞에 두고 유명(幽明)을 달리 한 이후론 추석이가족들을 한 자리로불러들이는 즐거운 시간이면서도 동생의 빈자리가 못내 허전한 그런시간이되어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바람에 살포시흔들리는 꽃을바라보자니 꽃같이 예쁜동생얼굴이 다시 생각났고,아버지 살아생전에 어머니와 함께 동생이 잠든 곳을 찾아 동생의 환한 웃음을화병속으로 나눠담던 일이 떠올라그만 마음속깊이 억눌러 두었던 울음보가터지고 말았던것이다. 나날이 희미해져 가는당신의기억 속에서도, 살아생전 큰 여동생을 그토록 그리워하고 예뻐했던 아버지가 잠드신 바로 이 자리에서말이다.
이처럼,내가 꽃을 사면서 드는 마음이슬픔으로 치우칠때는아버지와 동생에게 헌화(獻花)할 꽃을 살 때이다.망자에게 바치는 꽃. 생전에 한 번도이들에게 꽃을 안긴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매번꽃을 올릴때마다마음속으로짙은 아쉬움과 깊은 슬픔이덧칠될 수밖에 없다.요란스러운 웃음소리에 놀라 엉겁결에주변을 살피니 어느새 사람들이 봄비는 영일대 앞이었다. 나도 모르게빠져 들었던 상념(想念)에서 벗어나자 오가는 길이 덩달아다시 환해졌다.
영일대 앞 광장에는, 지난봄 경북도민체전을 기념해서 세운 조형물(造形物)이 여전히 꽃단장을 한 채 고운 자태(姿態)로 서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장미화원(薔薇花園)을 끼고옆길로 돌아서영일대 해상 누각에 오르니, 젊은 여자 몇 명이 누각의 모퉁이에 서서포스코를 배경으로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싱그러운웃음을머금고 있다.꽃다발을 한 아름안고 있는 여자를 중심으로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셀카를 찍고 있는데, 얼굴 만면에 띤생기발랄한표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금세 마음이 밝아졌다. 꽃 같은 젊음이 한아름의꽃다발과 함께 저마다 예쁜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누군가를 위해 꽃을 샀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까지도 전해지고, 잠시 우울했던 마음으로부터 나를벗어나게끔 했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무심코 길을 걷다가, 아니면 누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불같은 마음으로 달려 나가 누군가의 가슴속을 행복으로 따뜻하게달궈줄 마음이 생겨나면 좋겠다. 이들처럼, 기쁜 마음으로 꽃을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모로 무심하기 짝이 없던 한 남자의 푸념에, 지는 노을은 꽃처럼 붉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