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디테일하지 않고 러프하게.
꼭 살을 빼야지. 영어 공부 해야지. 악기 하나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지. 담배 끊어야지.
다양한 목표들이 태어나고 자라지만 성체가 되는 목표는 많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마의 1월을 넘기지 못하는 것들이죠.
왜 이렇게 1년의 정기를 모아 미리 세운 계획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을 까요. 새해 목표마저 저출산이 되어 버리는 걸까요. 사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저의 주요 실패는 바로 다이어트였습니다.
다이어트의 목적지는 꽤나 멀리 있는 편이었습니다. 워낙 보유 중인 살이 많아 저는 20kg를 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루에 1kg씩 빼기도 어렵지만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해도 3주나 유지해야 가능한 목표였습니다. 거의 매년 목표였지만 항상 1월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조기종영했던 브이로그였습니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명확한 목적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등대 삼아 갈 수도 있는 이정표도 되고 연료도 될 수 있는 아주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목표가 있다고 해서 365일 켜져 있는 등대일 수 없고 유전이 터진 것처럼 계속해서 연료공급을 해주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처럼 저도 목표는 있었지만 달성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의 목표였던 20kg 감량은 너무 디테일한 목적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200g도 빼려면 노력을 해야 하는데 무려 20kg라는 매우 높고 명확한 수치였죠. 제 몸에서 6살 난 딸아이의 무게만큼 이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표와 수치는 정확했으나 너무나 고난도의 목표였습니다. 저 멀리서 등대가 빛나고는 있지만 가도 가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느껴질 정도의 수치였지요. 이럴 때 방해공작이 시작됩니다. 너무 멀고 힘드니 그냥 하지 말까 하는 유혹이 손짓합니다. 등대를 보고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세이랜의 노랫소리가 들려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목표가 뚜렷하고 너무나 어렵다 보니 방해공작이 그만큼 더 거셉니다. 결국 백기를 들고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목표가 디테일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달성이 어렵거나 장기간을 요하는 것이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목표를 위해 실행하는 부분이 지루해지거나 괴로운 순간 방해공작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달성이 쉽고 지속가능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하고 운동을 시작했을 때 저의 목표는 명확한 수치이거나 디테일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목표는 "건강 되찾기"였습니다. 물론 건강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되찾기라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엉망이 된 몸 상태를 디폴트 상태로 돌리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목표를 이렇게 잡으니 과정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매일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제 모습을 보고 다음날의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덜 힘들고, 어제보다 오늘 더 걸을 수 있고, 어제보다 오늘 더 빨리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체감이 되자 이것은 저의 목표인 "건강 되찾기"에 정확히 부합했고 거기서 얻는 성취감은 동기부여의 좋은 연료가 되어주었습니다. 오늘 운동하면 나는 오늘 한 만큼 건강해질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이제 일정한 강도를 유지하며 운동이 가능해졌습니다. 기존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목표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 왔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숫자를 내세우고 목표를 잡지 않았습니다. 괴로운 경험만 있었던 과거처럼 목표를 잡으면 또 실패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표를 디테일하게 잡지 않았습니다. 저의 목표는 이것이었습니다.
"건강한 뚱보가 되자"
그리고 그냥 운동을 했습니다. 식단조절도 가끔 했습니다. 배가 부를 때는 무리해서 먹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나면 그렇게 했습니다. 114kg이었던 제 몸무게는 99kg가 되었습니다.
3자리 몸무게에서 2자리 몸무게로 바뀌는 쾌거를 얻었습니다. 이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 저는 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씩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한다. 창문 밖을 봤을 때 날씨가 좋은 것 같으면 바로 옷 입고 나가서 공원을 4km 넘게 걸었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있어도 머리가 아니라 실제 내가 배가 부른 상태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배가 부르면 먹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양배추 샐러드를 먹어볼까 하면 바로 집 앞 마트에 가서 양배추를 사 와 채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디테일한 목표가 아님으로써 조금 더 융통성 있게 목표 달성을 위해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됩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해보는 겁니다. 그 대신 하겠다고 한 것은 반드시 해냅니다. 그렇게 쭈욱 그냥 하는 겁니다.
내가 지치지 않을 정도로 달성해 나가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열심히를 빼고 싶습니다. 나를 지치게 하지 않고 싶습니다.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면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무엇을 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집중한다면 이것 역시 내가 지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노력도 빼고 싶습니다.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가장 정통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해냈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할 수 있습니다.
하기만 하면 됩니다. 첫발을 내딛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