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될 수밖에 없는 문제
외벌이 아빠는 오늘도 남(男)들처럼 출근했고, 퇴근했다.
20시 전에는 퇴근해야 그나마 아이들이 자기 전에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남(男)들과는 다른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이와 아내와의 소중한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첫째가 만 4세가 되고, 둘째가 8개월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남(男)다르지 못한
아빠이자 남편이다.
하고 싶었다. 아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항상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았다.
그 결론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선택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우리 부부는 유아기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부 중에 한 사람이 육아에 전념하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전담하고 누가 일할 것인가였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 일하는 것.
그렇게 나는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아내는 전업 육아를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힘겨워하는 아내를 보며 육아휴직을 생각했다.
하지만 평범한 외벌이 가장에게는 낭만파 그림보더 더 낭만적인 이야기였다.
현실은 낭만주의가 아니라 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은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 홈페이지에서 계산한 육아휴직급여 모의 계산의 결과다.
나의 통상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상한이 150만 원, 그나마도 75%만 지급되기에 한 달에 지급되는 돈은 110만 원 남짓이 된다.
청약 당첨으로 최근 입주한 아파트 이자만 월 120만 원이 고정으로 나가 맞벌이를 해도 부족한 마당에 육아휴직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인 것이다.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아내에게 육아휴직이라는 도움이 아닌 무거운 짐을 더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의 양육에 대한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결국 아빠의 외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원망하거나 탓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지금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우리의 선택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이 상황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 단지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