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1) 객관적인 시선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다는 얘기를 들은 엄마는 서있는 한 폭남짓한 땅덩어리 이외에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 작은 땅을 기반으로 조금씩 다시 세상을 세워 나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발달지연 (연령에 맞게 기대되는 능력에 도달하는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겪는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 잠시 또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자폐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타인의 조언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아이의 발달지연을 걱정하던 필자가 제일 많이 들은 육아 조언은 ‘기다리면 다 알아서 해’라는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걱정해서 유난 떨 필요 없다는 얘기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 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다른 아이 부모에게 ‘아이가 조금 다른 것 같으니 병원에 가봐’라고 불편한 말을 하느니 차라리 ‘조금 기다려주면 하지 않을까’ 같은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게 서로의 관계에도 더 좋다고 생각하며, 그 간단한 말이 양육자에게 얼마나 큰 혼란을 주는지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 빠른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은 거의 없다. 또 설사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정작 본인은 기분 나빠하며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이가 발달의 정체가 왔고 퇴행을 시작했음에도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이 원래 잘하던 아이인데...’벌써 언어치료를 다녀?’,’ 자폐 치료하다가 자폐가 온데’라는 카더라 통신의 말들을 많이 들었다. 사실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입장에서 모두가 기다려줘야 한다는 말을 하니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자폐 치료를 하다가 자폐가 되는 아이는 없다. 자폐는 신경계/ 뇌 발달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폐스펙트럼이나 아스퍼거 같은 문제가 없는 정상발달 아이들도 발달지연일 경우 발달센터에 다니는 것이 득이 되지 실이 되진 않는다. 정상 아이들이라면 몇 개월 후 바로 정상 범주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하며 보내는 시간에 일찍 전문가를 만나 개입을 해주는 게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발달지연을 보인다면 빠른 개입을 통해서 잡아주는 것이 정상아이나 자폐스펙트럼의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치료사들은 빠른 개입은 발달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고 말한다.
반대로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기관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고는 과도하게 치료에 몰입하는 엄마들도 있다. 감각통합, 놀이치료, 언어치료, 인지치료 등 현존하는 발달 센터에는 수십 가지의 치료법이 있는데 불안함 때문에 하루에도 치료 수업을 몇 개씩 도는 엄마들도 종종 보인다. 아이는 겨우 만 2~4 정도인데 어른도 못 견딜 치료 스케줄은 아이와의 정서교감을 놓치게 할 뿐이다. 나의 불안함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가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 힘들어하지 않는지 살펴주는 것도 바로 부모의 몫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말도 객관적으로 듣기 어려운데 하물며 병원에서 하는 말은 어떨까?
서로 다른 두 병원에서도 반대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모 병원의 소아정신과에서 ADOS(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 자폐증 진단 도구) 검사 결과가 1~2(1에서 10까지로 나눴을 때 10이 가장 자폐성향이 강함) 수준의 자폐스펙트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모병원의 재활의학과에서는 아이가 천천히지만 언어발달을 보이고 있고, 이전에 했던 발달검사가 정상범위이며 지금 시기에 하는 ADOS검사는 신뢰도가 낮아 의미가 없으니 언어치료를 더 늘리지 말고 놀이터에서 많이 놀게 해 주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5분 정도 아이를 살펴보고 말해주는 의사 선생님보다 매일매일 아이를 지켜보는 양육자가 서로 다른 두 의견을 객관적으로 듣고 판단해야 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나와 남편은 아이가 ‘정상이냐 자페 스펙트럼이냐’에만 얽매어 당연히 우리 아이는 정상이라는 말을 해주는 재활의학과의 의사 말만 믿으려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몇 개월을 흘려보내며 후회로 남았다. 중요한 건 아이가 ‘정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지금 아이의 발달 상황에 맞는 적절한 치료 개입을 어떤 식으로 할 건 가이다. 그리고 그 발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선배 엄마, 할머니들의 충고, 육아서적, 티브이 육아 프로그램도 모자라 요즘은 인터넷 방송이나 SNS로 양육에 대한 강의를 한다. 많은 정보는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설픈 전문가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기질과 성향 또는 성격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보면 맞는 것 같고 또 저기에 맞춰보면 저기에 맞기도 한다. 어설픈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객관적인 근거로 아이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나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직장에서 일할 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더 나은 결과를 요구하는 고객들 보다도 더 무서운 게 우리 두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육아는 어렵지만, 나의 조그만 노력에도 아이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면 충분히 동기부여가 된다.
아이가 천천히 자라든 빨리 자라든 사랑하는 우리 아이이다. 양육자의 태도가 조금 바뀌는 걸로 아이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 보다 많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보자.
*이 글은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주관적인 경험과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