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타임, 이제는 잠시 멈춤_6
가벼운 차림으로
가뿐하게 산책을 나가요.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걸으면
여러 가지 작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절마다 피는 꽃들의 향기,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밤하늘에 뜬 달, 산책하는 시간은 마음을 쉬는 시간.
터벅터벅, 건들건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즐겁고 편안한 시간입니다.
- 스즈키 도모코의《Smile days》중에서 –
혼자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자유롭기보다는 외롭거나 힘들다는 말에 더 무게가 있는 것 같지 않아. 아마도 사람은 혼자 지낼 수 없어서 이성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걸까? 그리고 가족을 이루고 말이야. 성경에도 서로에게 알맞은 베필을 만나서 결혼을 했다고 하잖아.
“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우리말 성경 창세기 2:18)
세상에서 자기만 혼자라는 생각만큼 무섭고 겁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 20대에 그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둘이 되는 것만큼 좋았던 시절은 없는 것 같지 않아. 아마도 당신과 나도 20대에 홀로 있는 것을 포기하고 한 집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가 된 것처럼 말이야. 그러는 사이에 벌써 20년이란 시간이 참 빠르게도 지나갔네.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화고도 몇 년이 지났네
아마도 40대 중반부터는 같이 있는 느낌도 좋지만 때로는 혼자 있다는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더라고.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지. 어느새 가급적으로 당신과 둘이서 같이 있으려 하기도 하고, 우리 네 가족이 어떻게 하면 같이 모여서 밥 한 끼라도 먹으려고 시간을 내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네. 그러는 와중에서 때로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요즘처럼 ‘혼자’라는 말이 많이 쓰였던 적은 없는 것 같아. 혼밥, 혼술, 혼영 등과 같이 ‘혼’ 자가 들어가서 만들어진 말은 너무나도 많이 듣는 것 같아. 나는 여기에 혼킹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고 싶어. 혼킹이 뭐냐고? ‘혼자’라는 말에 걷는 ‘워킹’이란 글자를 덧붙여서 혼자 걷는 것을 의미하지.
몇 년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중 어느 날은 오전에 짝꿍도 없이 혼자 걷던 날이 있었어. 같이 걸어가는 짝꿍이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기 위해 앞뒤로 걷느라 나와 같이 보조를 맞출 수가 없어서 나 혼자 걸었지. 말 그대로 혼킹을 했던 거야.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니 혼자 걷는 것만큼 그것처럼 좋은 게 없더라고. 나 혼자 끝없이 이어진 길을 혼자 걸으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게 걷는 길이 아주 좋았던 것 같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하게 시간을 자신에게 주는 것 같아.
대학생일 때나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무언가 혼자 결정하고 혼자 행동에 옮길 때 항상 두려운 마음이 마음속에 있던 기억이 있어. 하지만 다른 동기들이나 친구들과 같이 하면 의지도 되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서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았어. 어쩌다 혼자 하는 경우는 내가 선택한 것이 제대로 맞는지 아니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
이제는 그런 친구들도 각자 자기 삶을 살고 있고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지. 무언가 생각하고 결정할 때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이 들어서 가장 느끼는 외로움이나 허전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을 40년 이상 살면서 혼자 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묻는다고 하면 뭐라고 딱히 할 말은 없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쉽지만은 않네. 물론 당신이 늘 내 곁에 있지만은 말이야.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당신과 아들 둘, 우리 가족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면 무엇이든 신중해지고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야.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서산대사가 하신 말이 있어.
“ 눈 덮인 산길에 발자국을 어지럽히지 말라. 나중에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말은 먼저 가는 사람들이 제대로 가라는 말의 뜻도 있지만 40대인 나에게는 내 인생길을 가는데 나에게 어떻게 가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길을 나 혼자 가야 하기 때문에 서산대사가 하신 말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 내가 걷는 길이 누군가에 도움이 되었으면 더욱 좋고 특히 우리 두 아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말이야. 나의 인생길을 가다가 당신을 만나서 같이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길을 걷는 중에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따로 있고 역할도 있기에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 당신은 어때? 당신은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 걸어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리고 그 길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
순례길을 걷다가 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친구들이나 가족, 또는 부부끼리 걷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만 그중 절반은 혼자서 걷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그 길을 걷다가 보면 휴게소나 그늘에 앉아서 쉬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지나치지. 어떤 때는 유럽 사람이기도 하고 가끔은 동양인을 만나기도 하는데 어쩌다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정말로 반가움을 이루 말할 수 없지. 단지 말이 통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말이야. 저 사람도 이 힘든 길을 혼자 걷고 있구나. 얼마나 말이 통하는 사람이 그리웠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여보. 혼자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이 나더라고. 물론 후회도 있지, 그리고 하지 못한 일, 당신이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일도 스쳐가지. 그러다 보면 그 길이 회개하는 기도 시간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런 시간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 그런데 평소에는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귀중한 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혼자 걷다 보면 내가 못 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무엇보다도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거지.
우리가 같이 모여서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고 먹고 마시지만 혼자서, 특히 혼자 걷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고. 앞으로는 모든 것을 되짚어보고 미리 다방면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혼자서 걸어보려고 해. 그래서 가끔씩 휴일에 집 근처에 있는 산을 걷고 내려오는 것도 아마도 그 시간이 좋기 때문이야. 걷는 동안 내 안에 있는 생각의 포자들이 하나씩 터져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고 더 좋은 시간들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이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을 ‘절대 고독’의 시간이라고들 하는데 이런 시간을 잘 거치는 것이 우리 나이 때인 것 같지 않아? 내 기억으로는 내가 대학생 때 아버지가 사업 문제로 밤잠을 못 주무시고 고민하던 모습이 아직도 내게는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않아. 아마도 그때 사업이 한번 망해서 다시 재기를 하려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고 있어. 왜 일까? 그때의 기억이 ‘아 저 모습이 가장의 모습인가?’ 하는 것으로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어. 어느덧 내가 그 나이가 되어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아.
그래서 난 혼자만이 시간을 가만히 있기보다는 그 시간을 걸으면서 보내려고 해. 걷다가 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들이 하나씩 머릿속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잊힌 기억도 하나씩 되살아 나게 되지. 혼자 걷는다는 것은 다시 생각하는 것과 같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멋있는 시간인 것 같아.
40대에 혼자서 걷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아마도 인생에 있어 많은 지혜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특히 이런 시간을 집 주변이나 도시를 걷기보다는 공기 좋고 조용한 곳을 걸어보면 어떨까 해서 이제는 걷기 좋은 장소를 골라 보려고 해. 그런 장소를 가고 싶었던 길이나 가보지 못한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볼까 해. 그리고 시간이 되면 제주도 올레길이나 부산에서 출발해서 동해로 북상하는 해파랑길도 걸어보면 어떨까? 아마도 국내에서 걷기 좋은 길이 많을 것 같아. 지인이 추천한 섬진강 길도 괜찮을 것 같아. 출발은 같이해도 일정 시간은 혼자 걷는 시간을 갖는 거지.
거기서 우리가 내적으로 성장하고 고독해지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말이야. 벌써부터 혼자서 걷는 길을 준비하고 있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최근에 우리가 저녁마다 집 주위를 한 시간 정도 걷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이런 시간들을 각자가 마련해서 잘 걸어보자. 우리가 때로는 같이, 때로는 혼자 걸을 수 있는 ‘혼 킹’의 시간을 서로에게 배려하자.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가 서로에게 혼자 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