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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냥이 Oct 19. 2023

밤의 시간

헤세와 故황현산의 밤

밤을 앞둔 해질녘은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한낮은 흘려보냈지만 아직 내게는 긴 밤이 남아있다. 이제 겨우 한나절이 지났을 뿐이다. 유독 실망스러운 낮을 보낸 날에는 긴긴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더없는 위로를 받는다. 오늘 밤에는 맥주나 마시고 좋아하는 영화를 봐야지. 무드등도 켜놓고 말이야. 참, 들어가는 길에 맥주 안주도 사야겠어. 밤을 맞을 준비에 금세 마음이 분주해진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자신의 총알이 떨어진 것을 보고 안도하는 악당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해질녘의 하늘은 한낮이 실망스러웠던 내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 한 밤 남았다."   




지금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기다리던 밤의 시간. 나는 낮동안 움켜쥔 생각들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두서없는 생각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오늘은 정말 정신없었어. 대체 최실장은 오늘 왜 그런 거야. 그나저나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참 내일 미팅은 좀 미룰까? 아, 생각할 게 너무 많아. 이 밤이 좀 더 길었으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생각에 조금씩 짧아지는 밤이 아쉽기만 하다.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에는 영혼이 우두커니 관망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밤이 오고서야 영혼은 속박의 굴레를 벗고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관망이 지겨워진 영혼이 제 모습을 드러내느라 밤마다 이토록 많은 생각이 부유하는 걸까.


헤세는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았다. 불면의 고통을 견디는 것은 헤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그는 음울히 중얼거렸다. 아, 너무나 느리게 가는 긴긴밤이여.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쓴 성찰의 거인 아니던가. 헤세는 곧 불면의 밤을 축복하는 법을 배웠다. 느리게 가는 긴긴밤 동안 내면의 고요한 목소리를 길어 올리는 방식으로. 이를테면 이런 목소리.


내 삶은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달리 보일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풍족하고 즐거웠던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찰나의 섬광이 어둠의 세월을 지우고 정당화할 수 있게 가끔 번개라도 쳐야 겨우 견딜 수 있는 어둡고 슬픈 밤과 같다.  14p 『밤의 사색』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그는 아직 알지 못한다. P.126  『밤의 사색』


헤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외로운 밤을 보내본 사람만이 영혼의 바탕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적 속에서 홀로 밤을 보낸 사람만이, 베일에 가려진 삶의 마지막 진실에 경외심을 갖고 인내심을 발휘하게 된다고. 그래서일까. 모두가 잠든 밤 써 내려간 헤세의 문장에는 삶의 마지막 진실을 베는 처연함이 묻어있다. 예를 들면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기쁨을 알지 못하는 이를 안타까워하는 처연함 같은 것.


헤세에게 밤이 베일에 가려진 삶의 진실을 들추어낸 시간이었다면 故황현산 문학평론가에게 밤은 선생이었다. 황현산 선생님은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펴내며 이렇게 말했다. "천년 전에도, 수만 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어두운 밤에 꾸었을 꿈이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황현산 선생님의 글은 문학을 삶으로 살아내는 이의 목소리가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진실에 대한 추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 속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고, 그로써 자신의 생각을 다시 성찰하고 그 깊이와 폭을 넓혀, 한 주관성이 다른 주관성과 만날 수 있는 전망을 내다보고, 인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이라도 사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수줍은 목소리.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 가에 의해 가름된다.
『밤이 선생이다』 204쪽
 


이런 문장을 만나면 나는 얕디 얕은 생각의 폭이 한순간에 쭈욱 늘어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책장에 묵혀문학 작품을 꺼내 들게 된다. 이런 글을 쓰게 한 문학은 대체 어떤 녀석일까 궁금해하면서.


황송하게도 나는 강연에서 황현산 선생님을 모신 호사를 누린 적이 있다. 선생님과 말을 나눠본 이들은 알 것이다. 소리 없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인품을. 당시 새파란 신입이었던 나를 선생님은 예를 다해 대해 주셨다. 어리숙해서 신입 티가 팍팍 나던 나를 선생님이라 칭하시면서. 강연에서 말과 글이 일치하는 연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글은 좋은데 말이 비어 있거나 말은 어수룩하지만 글이 좋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황현산 선생님은 당신의 글이 가진 울림이 말에도 똑같은 깊이로 담겨 있었다. 더하거나 부족함 없는 똑같은 깊이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는 밤이 당신에게는 선생이었다 말하는 故황현산 선생님의 밤은 누구보다 깊고 아득할 것 같다. 그분의 밤을 가늠하며 빌어본다. 감히 나의 밤도 그러하기를. 조금씩 깊어지는 밤이 되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그분의 밤과 맞닿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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