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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냥이 Oct 19. 2023

인문학 강연은 앉아서 듣는 게 아니다

"인문학 강연을 많이 들으면 인생에 도움이 될까요?"


청중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강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대답이 갈릴 것이다. 강연을 듣는 일은 한 사람이 일생동안 쌓아 올린 지식과 지혜를 단시간에 흡수하는 일이다. 운 좋게 좋은 연사를 만나면 지식만 얻어가지 않는다. 실력이 좋은 연사는 청중이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이리저리 생각 몰이를 한다.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과 질문을 만나는 점은 인문학 강연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강연만으로는 부족한 무언가 있다.


자, 방금 강연이 끝났다. 소중한 시간을 넷플릭스가 아닌 강연에 투자했다는 사실에 당신은 뿌듯하다. 마음의 양식을 가득 얻은 기분이다. 하루가 지난다. 이틀, 삼일이 지난다. 당신의 머릿속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강연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강연을 본 이후 일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일생동안 극심한 고뇌와 고통을 겪으면서 얻었을 철학자의 심오한 통찰을, 의자에 편히 앉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강연을 들었으니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잠시 착각하는 것이다. 청중이 이해하기 쉽게 꼭꼭 씹어주는 강연일수록 더욱 그렇다. 쉽게 들어온 말은 쉽게 빠져나가는 법이다. 당장 이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아 그렇다.


예컨대 당신은 니체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친절히 설명하는 철학자 덕분에 니체의  Amor Fati 아모르파티를 알게 되었다. 운명을 사랑하라. 아름다운 말이군.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만약 현재 당신이 고통의 한가운데 있지 않다면, 운명을 사랑하라던 니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아모르파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집어삼키는 고통이 필요하다.


한번 상상해 보자. 며칠 후 당신은 거짓말처럼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암진단을 받았다. 전세 사기를 당해 당신이 모아둔 모든 돈을 잃었다. 당신은 어느새 고통의 한가운데 와있다. 오늘이라도 삶을 저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다. 당신은 결심한다. 강해지기로. 닥쳐온 고난들을 끌어안기로. 이때 니체가 소리 없이 다가와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우리는 강연을 들으면서 타인이 모아둔 지혜의 부스러기를 줍길 바란다. 하지만 그러려면 당신의 발이 필요하다. 당신의 발로 뚜벅뚜벅 걸을 때만이 지혜의 부스러기를 주울 수 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는 결코 한 조각도 주울 수가 없다. 당신의 우직한 발을 움직여 인생길을 걷기 시작할 때 비로소 지혜 조각 하나가 손안에 들어온다. 삶의 절망 끝에서 자신의 손으로 희망을 붙잡았던 바로 그때 니체의 아모르파티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삶의 끝자락에 선 당신은 이제야 이해한다. 인생에 어떤 비루함이 찾아와도 그것들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운명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이런 거로군. 지혜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손과 발로 이해하는 것. 영국의 음악가 마일스 킹턴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게 인문학 강연의 역할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강연에서는 당신이 부딪힌 인생 문제를 소위 현자라 불리는 이들은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니체는, 소크라테스는, 카뮈는, 톨스토이는 인생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들의 고민과 시선을 솜씨 좋게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당신이 할 일은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한 번쯤 떠올려보는 거다. 


니체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겠다고 했지. (나는 니체처럼은 안 되겠는데)

고흐는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오늘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는데. (그건 고흐고)

어느 강연에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랬는데. (나도 일상에서 소확행을 좀 찾아볼까)


인생과 한창 씨름하다 강연에서 들은 한 마디를 떠올린다면, 그 한마디에서 아주 조금의 힌트를 얻었다면, 그러나 어쩐지 이전보다 생각이 복잡해진 기분이 든다면, 그것으로 강연은 소임을 다했다. 인문학 강연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당신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강연장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당신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몇 번이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라고.


이것이 가 밤을 새워 다음 강연을 준비하는 이유다. 이번에는 대중에게 어떤 주제로 생각해보자고 할까. 어떻게 질문을 던져야 할까. 시간이 지나도 다시금 강연이 생각이 나려면 어떤 강연을 짜야 할까. 그러려면 누구를 섭외해야 할까,와 같은 질문을 붙잡고 씨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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