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2023년 5월쯤이었다.
회사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병원 간호사라고 했다. 최근 건강검진 결과에서 우울 지표가 ‘주의 단계’로 나왔다며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잠깐 멍해졌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일을 해야했다. 직장인 중에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그냥 다시 버티고 다녔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나면 거의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주말만 기다리며 버티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말이 와도 즐겁지 않았다. 토요일이 시작되자마자 월요일 출근이 걱정됐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직장 생활이 다 그런 거라고 믿었다. 내 의지대로 살지 못한 채 사회라는 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넣고 살고 있었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잘 지내는 척 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신규 프로젝트 팀으로 옮겨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팀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이 모였고, 회사에서 성장해 온 과정이 서로 달라 자연스럽게 시각 차이도 생겼다. 그러다 동료와 가벼운 마찰이 있기도 했다. 상대는 그 조직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고 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상대는 박힌 돌, 나는 굴러온 돌. 상사에게 차별받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적응은 늘 쉽지 않았다.
내가 맡은 사업이 안 좋아질 때마다 조직은 사라졌고 나는 남겨진 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순간 ‘굴러다니는 돌’이 되어 있었다. 사원, 대리 시절에는 열심히 일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굴러온 돌이 된 뒤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쉽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다음 진급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2년마다 반복되는 이동은 조금씩 나를 닳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은 점점 지쳤고 의욕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 앞에 섰다. 가방을 메고 신발도 신었다. 문 손잡이도 잡았다. 손잡이만 돌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회사 가기 죽도록 싫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이 싫은 날쯤은 있다. 하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도저히 문을 열 수 없었다. 마치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드디어 뭔가 터진 건가. 몸은 멀쩡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예정에 없던 연차를 썼다.
“몸이 안 좋아서 오늘 하루 연차 쓰겠습니다.”
부서장에게 짧은 문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한참 바라봤다. 답장은 곧 왔다.
“알겠습니다.”
그 한 문장은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오게 했다.
이미 옷은 다 입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갔다. 아침이라도 먹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근처 서브웨이에 들어가 창가 좌석에 앉았다. 샌드위치를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출근길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날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시작이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