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은 걸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는 이 열대지방에는 점심부터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다. 가수 김윤아의 노래 '도쿄 블루스'를 듣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서 써보고 싶어 졌다.
도쿄에서 한 번이라도 살아본 적이 있는 이방인이라면, 마천루와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가 얼마나 외로운 동네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 안의 어떤 곳도, 돈을 내지 않고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도, 외국인으로서 현지인을 만나기에 자신의 기호나 성향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은 없어 보였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무언의 장벽 속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해질 때, 흔히 사람들은 자신을 기쁘게 혹은 중독시켜 줄 것들을 찾아갈 터. 내게는 그것이 술이었다. 일본에서의 첫 어학연수 때 3개월 간 나의 저녁은 맥주와 편의점 안주였다. 주변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있어도, 그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마시면 살랑살랑 기분이 떠오르는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왜 굳이 휴학을 하며 어학연수를 왔어야만 했는지를 곱씹었었다.
'너무 많이 마신 걸까 너무 많이 들킨 걸까 너무 많이 웃어버린 나를 어이해야 하는 걸까 누구라도 나를 사랑해줘요 비 오는 도쿄의 밤은 외로워...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리 내일은 새로운 외로움의 품에 안겨서'라는 여인의 절규와 탱고 리듬이 잘 얽힌 김윤아의 노래 '도쿄 블루스'.
이십 대에 어학연수로 시작한 그 유학 생활이 간헐적으로 이어지면서 도쿄에서 만나고 헤어진 그 남들을 생각해 볼 때, 지금 돌이켜 보면 생각보다 많은 유혹이 있었던 듯하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져서 더 많이 숨어버린 결과로, 아쉽게 끝난 연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나는 욕망이 들끓던 그 밤에 기꺼이 뛰어들어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탱고는 춤추는 두 사람이 만나 지지 않는 춤이기에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일본 문화의 정서도 비슷했다. 설레이 기는 하지만 종내에는 이어지지 않는 사랑이 덧없다며 더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문화라니. 그런 정서를 지칭하는 단어가 일본 문학에 존재한다니 어이없지만, 그것조차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버석거리게 외로울까. 욕정과 가면 위의 정숙함이 공존했던 그 도시. 덧없는 열정을 쫓으면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나름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그냥 맨 얼굴의 나를 받아들이고 주변에 있던 그들을 사랑하는 게 더 나았으리라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젊다는 치기도 지나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유희 같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그것. 인간과 인간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행하는 육체적 행위. 친밀감 없는 그 관계는 결국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점점 쪼그라들게 만들어 영혼 없는 육신만 남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든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본인의 몫이므로 그것도 사랑이었다고 말한다면,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에 돌아보는 그 밤의 유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