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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an 18. 2023

구멍 (다섯)





다섯...          




     석준은 스팸 메일들을 꼼꼼히 지워나갔다. ‘광고’라는 머리글조차 붙어있지 않은 스팸 메일들이 부지기수였고, [야, 왜 연락 안 해?] [내일 약속 잊지 않았지?]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요청하신 자료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식의 교활한 제목을 달고 있는 스팸 메일도 있어서 그것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가려내는 건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슬그머니 오기 시작한 스팸 메일은 이제 하루에도 열통 가까이에 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법 재미있게 읽다가, 나중에는 협박 반 부탁 반의 경고 메일도 보내 봤다가, 이제는 마치 자신의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덤덤히 지워나가고 있었다. 

     스팸 메일을 모두 지우고 나서도 그의 [받은메일함]에는 아직 374개의 메일이 남아 있었다. 근 10년 동안 가족, 친지, 친구, 직장 동료들로부터 받은 메일들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거나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단순히 대화할 누군가가 필요해서 보내진 것들이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시연에게서 받았던 메일 역시 150개 정도 저장되어 있었지만 이혼 절차를 마무리 하고 법원에서 돌아오던 날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소소하기 그지없는 메일들을 지우지 않고 보관하는 대는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가끔씩 꺼내 읽어보며 이런저런 추억을 가늠해볼 만큼 감상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메일들을 삭제해 버리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받은 메일을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 결정하는 그의 태도가 마치 사건의 증거를 채집하는 형사나 희귀한 식물을 모으는 수집가와도 흡사할 만큼 신중했기 때문에 그저 지우는 게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자신에게 온 메일들을 수집하고 있는 걸까. 

     그에게는 받은 메일을 검사하고 분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는 건 더더욱 까다로운 일이었다. 안부를 묻는 메일은 물론이고 만날 장소를 알린다거나 사소한 자료를 요청하는 메일조차 간단치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쓴 메일의 내용을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보면서 말투 하나 토씨 하나까지 견주어 보느라 긴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건조한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혹시 의도와 다른 뜻으로 읽히지는 않을까 등등, 그것은 언제나, 결코, 간단치가 않았다.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친밀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당히 무심해 보이는 메일을 쓰기위해 그는 부단히 골몰하곤 했다. ‘적당함’ 이란 얼마나 난해한가. 정작 받는 사람은 그가 보낸 메일을 그저 건성으로 휙 읽어 넘길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석준은 쉼표하나도 흩뜨리게 찍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받은 메일들과 마찬가지로 보냈던 메일들 또한 대부분 보관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연에게 보냈던 메일들까지도 차마 지우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스팸 메일을 다 지우고 나자 더 이상 할일이 없어진 석준은 [받은메일함]의 [374]라는 숫자와 [새로 온 메일]의 [0]이라는 숫자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2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새로고침]을 눌렀다. 화면이 한번 깜박 하더니 숫자는 여전히 [374]와 [0]에 머물러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다. 374와 0. 다시. 374. 0. 사실 그는 아까부터 친구인 종훈에게서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석준은 낮에 자신이 종훈에게 보냈던 메일을 열어보았다.

     [오랜만이다. 별 일 없지? 뭐, 여전히 주희 재롱 보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겠지. 저번에 만났을 때 네 팔불출 노릇을 생각하면 다시 만나기가 겁난다만, 그래도 내가 참아줘야지 어쩌겠냐. 조만간 술이나 한잔 하자. 아, 그리고 저번 주 일요일 날 시연이 결혼식은 잘 끝났지? 깜박 잊고 있다가 오늘 생각이 났네. 어쨌건 조만간 만나서 한잔 하자.]

     메일수신확인 서비스에는 종훈이 벌써 두 시간 전에 메일을 확인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종훈이 곧 답장을 보내리라고 벌써 40분이 넘도록 컴퓨터 앞에서 조바심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석준은 대학교 축제 때 동아리 활동으로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종훈을 알 게 되었다. 그때 행사장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종훈과 전시회 장소 문제로 티격태격 했던 게 인연이 되었다.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종훈은 석준이 가장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친구였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쨌거나 석준은 종훈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종훈의 아내인 정은은 시연의 팔촌 언니뻘이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이혼 전까지만 해도 석준과 종훈은 인척관계였던 셈이었다. 

     석준은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다. 374와 0. 다시 눌렀다. 374. 0. 다시. 374. 0. 이제 종훈이 그의 메일을 확인한 지 5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석준은 이제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친구이자 친척으로서 시연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텐데 왜 종훈은 묵묵부답인 걸까. 

     [아, 그리고 저번 주 일요일 날 시연이 결혼식은 잘 끝났지? 깜박 잊고 있다가 오늘 생각이 났네.] 

     흥미 없다는 식의 석준의 말투가 너무 감쪽같았던 걸까. 아니면 반대로 그의 꿍꿍이가 너무 뻔해 보여서 종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혹시 후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석준은 낯이 뜨거워졌다. [새로고침] 374. 0. 그는 메일을 보냈던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름 신중하게 써서 보냈다고 믿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충동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석준은 허리를 펴고 의자에 부자연스럽게 팔을 기대었다. 그리고 미간을 좁힌 채 다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석준이 시연에게 미련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종훈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연의 결혼 날짜를 깜빡했다는 석준의 말을 종훈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종훈의 담백한 성격으로 볼 때 친구가 보낸 짧은 메일을 요리조리 뜯어 볼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역시 종훈은 그의 메일을 그저 휙 읽어 치우고 만 것일까. 석준은 자신의 결론에 안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대개 전아내의 결혼식에 대해 전남편에게 짐짓 몇 마디라도 내비치고 싶은 게 주변 사람들의 심리일 텐데, 종훈의 담백함은 담백하다 못해 맹물처럼 싱거워서 석준을 질리게 만들었다. 아마 이제까지 석준이 종훈에게 보냈던 메일들 모두 - 이혼할 당시 울적한 마음에 진지하게 썼던 메일들까지도 - 대충 읽혀진 뒤 곧바로 삭제되었을 것이다. 석준은 종훈에게 받았던 메일들 중에서 가장 최근 것을 열어 보았다. 

     [잘 지내지? 나는 요새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다. 우리 공주 돌보기도 만만치 않고... 마누라도 애 하나 낳더니 목소리만 커지고 말이야. 내가 두 여자 떠받들고 사느라 힘들어 죽겠다. 그런데 넌 아직 만나는 여자 없어? 그러다가 세월 다 보내지 말고 주위에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봐. 언제까지나 혼자 살수는 없잖아. 저번에 내가 말했던 그 여자는 진짜 별로야? 너하고 잘 통할 것 같던데. 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 줘. 하여간 언제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 내가 날 잡아서 연락할 테니까. 그럼 나중에 보자.]

     날짜를 따져보니 정은이 그에게 전화하기 이틀 전쯤에 보내진 것이었다. 종훈이 왜 갑자기 여자 타령인가 의아했었는데 시연의 결혼 소식을 듣고 메일을 보냈던 게 분명했다. 만약 그 때 종훈이 직접 시연의 결혼 소식을 알려줬더라면 석준이 정은의 전화를 그렇게 얼빠지게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정은이 전화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친구로서 마음은 쓰여도 그런 골치 아픈 역할까지 떠맡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얘기만 전하고 싹 모른 척 할 수 있는 종류의 일도 아니니 번거롭고 거북살스러웠을 것이다. 종훈과 정은은 누가 이 소식을 석준에게 전할 것인가를 놓고 티격태격 했을 게 분명하다. 

     석준은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다. 374. 0. 다시. 374. 0. 다시. 374. 0. 374. 0. 374. 0. 석준은 덜컥 불안해졌다. 석준이 종훈을 너무 얕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종훈은 조금 둔하기는 해도 어수룩한 사람은 아니었다. 시연의 결혼식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사흘이나 지난 오늘 갑자기 생각났다는 걸 종훈이 믿어 줄까? 아니, 그보다 종훈 자신은 시연의 결혼식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거기 참석한다는 얘기는 더더욱 비치지 않았는데, 석준 쪽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연의 결혼식에 대해 언급하는 게 찜찜하지 않았을까? 혹시 종훈이야말로 대체 석준에게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하나 이 시간까지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은에게 석준의 메일을 보여주며 혀라도 차고 있지 않을까? 

     석준은 다시 마우스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새로고침. 374. 0. 다시 한 번. 374. 0. 또 한 번. 374. 0. 그는 불현듯 자신의 방을 두리번거리고는 머쓱하게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새로고침. 374. 0. 새로고침. 374. 0. 새로고침. 374. 0. 374. 0. 374. 0 374 0 374 0 374 0 374 037403740374……. 석준은 별안간 374개의 메일을 깡그리 삭제해 버렸다. [받은메일함] 0, [새로 온 메일] 0. 

     그는 메일을 닫고 어슬렁어슬렁 여러 사이트들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영화 관련 사이트, 홈쇼핑 사이트, 유머 사이트, 엽기 사이트... 그는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특별히 뭘 찾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돌아다니는 걸 멈출 수 없을 뿐이었다. 인터넷은 눈 뜬 몽유병환자들이 헤매고 다니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어느 막다른 골목으로 가던지 간에 거기에는 언제나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되는대로 무책임하게 떠내려가다 보면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석준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채팅 사이트였다. 

     [셀프(SELF)]라는 이 채팅 사이트는 채팅이 한창 유행하던 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석준은 가끔씩 심심풀이 삼아 이곳을 방문하곤 했다. 그렇다고 무슨 별다른 재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남자구요] [30대 중반입니다]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혼자는 아니고…….] 여기 까지 얘기하고 나면 더 이상 얘깃거리가 없었다. 곧이어 시사 문제나 정치 문제에 대한 시시한 토론이 오갔고, 그나마 토론 중에 싸움이라도 벌어지지 않으면 시들시들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인연에서 운명으로]나 [아름다운 동행] 따위의 제목을 걸어놓고는 남녀가 짝을 지어 시시덕거리는 방은 그로서는 사양이었다. 입으로는 3류 순정만화 대사나 시시콜콜한 개똥철학을 읊어대면서, 뒤로는 서로의 욕망의 크기를 재어보는 그들에서는 기름에 절은 튀김 냄새가 풍겼다. 

     늘 이용하던 직장인 방을 찾기 위해 카테고리를 훑어보던 그는 [직장인] 카테고리로부터 두 칸 아래쪽에 떡 하니 있는 [동성애] 칸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몇 주 전만해도 없던 카테고리였다. 근래 들어 동성애를 주제로 TV 토론회다 뭐다 떠들썩하더니 동성애자들의 권익이 신장되긴 한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 석준은 동성애자의 자유와 인권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동의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동의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때때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리타분한 주변 사람들이 지겨워질 때면, 그는 친구들 중 한 명쯤은 동성애자여도 좋겠다고 내심 바랬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가 아는 한 동성애자는 단 한명도 없었고 심지어 텔레비전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실제로는 본적조차 없었다. 때문에 석준에게 ‘동성애’란 어느 먼 지방의 특이한 풍습 정도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었다. 

     동성애 카테고리에는 무려 311개의 채팅방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대부분 비어있었다. 그 중 6명이 모여 있는 [패륜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방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석준은 이 방에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거창하게 ‘마음먹다’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도 아니니 적당히 추임새나 넣으며 얘기를 엿듣다가 여차하면 빠져 나오면 그만이었다. 그는 무슨 닉네임을 쓸까 잠시 고민했다. 평소 직장인 방에서는 ‘덧셈’ 이나 ‘곱셈’ 같은 닉네임을 사용했었지만 오늘은 뭔가 색다른 닉네임을 쓰고 싶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책상 위에는 필기도구들과 수학 참고서들, 어젯밤에 먹었던 컵라면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는 컵라면 뚜껑에서 글귀 하나를 발견했다.

     [MSG 무첨가]      


                 

Exit / 망사스타킹 막대사탕 죽은게이의사회 지금만나자팬티속궁금


*** [MSG]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막대사탕▶ 하이

MSG▶ 안녕하세요

지금만나자▶ 엠에스쥐님자기소개요~~*^^*

MSG▶ ... 서울 살구요

망사스타킹▶ 아함졸리다님들 저는 이만 자러 가요~~

막대사탕▶ 잘가요

지금만나자▶ 빠이     


*** [망사스타킹]님 접속종료 하셨습니다.     


지금만나자▶ MSG계속 하세요^^

MSG▶ 나이는 25, 대학생입니다.^^

죽은게이의사회▶ 동갑이시네저도 대학생 ㅋㅋ

MSG▶ ㅎㅎ 반갑습니다.

팬티속궁금▶ MSG님 그거 커? @_@

죽은게이의사회▶ 저 사람 또 시작이네...-_-;;

팬티속궁금▶ 몇센치?

MSG▶ 하하 ^^;

지금만나자▶ 나도 서울인데~~~ MSG님 지금 만날까

MSG▶ ^^;;;;

지금만나자▶ 에이만나자서비스 짤해줄게.ㅋㅋ

지금만나자▶ 지금 종로쪽으로 나올래?

MSG▶ 아니오;;

팬티속궁금▶ 몇센치냐니까?

죽은게이의사회▶ 나는 20센치다!!! 그것도 발기하기 전에가 ㅋㅋㅋ

막대사탕▶ ㅎㅎㅎㅎ

MSG▶ 하하하

MSG▶ 딴분들은 나이가?

막대사탕▶ 21

팬티속궁금▶ 나하고 딱 10살 차이네나는 서른하나     


*** [지금만나자]님 접속종료 하셨습니다.     


죽은게이의사회▶ MSG우리 동갑인데 말 놓을까요?

MSG▶ 그럼.... 그러죠.^^

죽은게이의사회▶ 넌 무슨 과?

MSG▶ 수학

죽은게이의사회▶ 난 지질학과^^

막대사탕▶ 저랑우리집에서홀랑벗고즐기실분 귓속말해주세요 

MSG▶ 홀랑....^^;;

MSG▶ 그런데 이그짓님은 한마디도 안하시네?

죽은게이의사회▶ 누구?

MSG▶ 저기 exit

죽은게이의사회▶ ... 저 사람 여기서 맨날 죽치고 있는데 말하는 건 한번도 못봤다

MSG▶ 눈팅 전문인가?

죽은게이의사회▶ 그런가봐눈팅은 변태로 가는 지름길이라는데...

죽은게이의사회▶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라는 소문도 있어ㅎㅎ

죽은게이의사회▶ 근데 넌 왜 이 야밤에 잠 안자고 채팅하러 왔냐?

MSG▶ 그냥 심심해서

MSG▶ 너는     


*** [빗속의오랄]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죽은게이의사회▶ ㅋㅋㅋ 저 분 닉네임 죽이네나는 이 맛에 채팅하러 왔지ㅋㅋ

죽은게이의사회▶ 비맞으면서 오랄하면 진짜 작살이겠다.

MSG▶ 하하 잘못하면 익사할라

MSG▶ ㅋ 코로는 빗물이 들어가고

죽은게이의사회▶ 입으로는 딴 게 들어가고....??

MSG▶ ㅎㅎㅎㅎ      


*** [막대사탕]님이 퇴실하셨습니다.  

   

*** [팬티속궁금]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죽은게이의사회▶ 저 두사람 귓속말로 눈맞았나 보네ㅋㅋ

죽은게이의사회▶ 지금 만나러 가나보다...

죽은게이의사회▶ 넌 번개 많이 해봤냐?

MSG▶ 너는?

죽은게이의사회▶ 한 2,3번 정도

MSG▶ 어땠어?

죽은게이의사회▶ 다 꽝이더구만

죽은게이의사회▶ 한번은 50이 다된 아저씨가 나왔고

죽은게이의사회▶ 한번은 머리에 피도 안마른 고등학생;;;; 

죽은게이의사회▶ 아저씨는 너무 밝혀서 싫었고고등학생은 돈 뜯어낼라고 끼부리는게 싫었고...

MSG▶ 인생이 다 그런거지입에 딱 맞는게 있나

죽은게이의사회▶ 그러게 말이다.. 대충 허기만 채웠지.

MSG▶ 아무거나 먹다가 탈난다 ㅋㅋ

죽은게이의사회▶ 경험에서 나온 얘기 같다?ㅎㅎ

MSG▶ ㅎㅎㅎ     


*** [빗속의오랄]님 퇴실하셨습니다.     


죽은게이의사회▶ 화끈한 닉네임으로 들어와서는 싱겁게 나가네...

MSG▶ 그러게...ㅎㅎ 뭔가 제대로 보여줄줄 알았는데

죽은게이의사회▶ 근데 너는 탑이냐 바텀이냐?

MSG▶ 글쎄

죽은게이의사회▶ 글쎄그럼 올?

MSG▶ 그렇다고 봐야지.... 너는?

죽은게이의사회▶ 나는 탑

죽은게이의사회▶ 어디 얼굴 되고 몸매 되는 바텀놈 없나ㅋㅋ

MSG▶ 성격은 안보나 보지?ㅎㅎ

죽은게이의사회▶ 그건 뭐하러??? ㅎㅎ

MSG▶ 벌써 새벽 4시가 넘었네 

MSG▶ 나 내일 일찍 수업 있어서 그만 자야겠다

죽은게이의사회▶ 그럴래

죽은게이의사회▶ ....우리 내일 여기서 또 볼까?

MSG▶ 그러지

죽은게이의사회▶ ㅋㅋ 그럼 내일 보자^^ 안녕~

MSG▶ 잘자라     


***[죽은게이의사회]님이 퇴실하셨습니다.     


***[MSG]님이 퇴실하셨습니다.          



     석준은 채팅방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곧바로 인터넷으로 탑, 바텀, 올의 뜻을 찾아보았다.    

  

(Top): 성관계시 남성의 역할을 하는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

바텀(Bottom): 성관계시 여성의 역할을 하는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

(All): 탑과 바텀의 역할을 모두 하는 남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     


     다행이 큰 실수 없이 넘긴 듯 했다. 얼떨결에 자신을 '올'이라고 한 것도 그럭저럭 다행이었다. 만약 자신을 바텀이라고 했었다면 조금쯤 괴로운 기분이 됐을 것이다. 석준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어깨에 찌뿌둥한 통증을 느끼며 팔 다리를 앞으로 죽 폈다. 무려 6시간이나 꼼짝 않고 앉아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5시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지금부터 서너 시간이라도 자두지 않으면 하루 종일 괴로울 게 뻔했다. 그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죽은게이의사회'와 나누었던 대화들이 머리 위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석준은 ‘죽은게이의사회’ 라는 남자의 얼굴을 어른어른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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