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Jan 04. 2023

구멍 (셋)





...     



     마지막 수업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였다. 석준은 1층 강사실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던지고 길게 숨을 돌렸다. 수업이 끝나기 전만해도 1초라도 빨리 학원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막상 수업이 끝나자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그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책상 밑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복도에서는 학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둘러 내달리는 학생들의 발자국 소리가 마치 퇴각하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처럼 요란했다.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난 강사실 안도 부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조급한 강사들 몇 명은 아직 학생들이 꽉 차있는 복도로 서둘러 나서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사들은 15분에서 20분가량을 강사실 안에서 더 머물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학원의 권장사항이기도 했지만 강사들 스스로도 학생들과 뒤섞여 학원 문을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칫 불미스러운 일에 얽혀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석준 역시 7개월 전 쯤, 약속이 있어서 서둘러 퇴근하던 길에 학생에게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가 다른 곳에서 지갑을 잃어버렸거나 외부 사람에게 소매치기 당했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학생들이 붐비던 학원 복도에서 일이 벌어졌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의심에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학생에 의한 절도 사건은 학생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강사실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자리를 비울 때마다 책상이 잘 잠겼는지, 의자에 벗어놓은 웃옷 주머니 속에 지갑을 놓고 가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게 강사들의 일상적인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난 사건 정도는 별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카드나 큰 액수의 돈만 아니라면 기껏해야 조금 분하다가 말 일이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끔 강사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학생들이 꼭 어떤 강사에게 앙심을 품어야만 생기는 건 아니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나 눈짓만으로도 강사는 학생들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앞에서 총총히 걸어가는 강사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누군가 “평소 저 새끼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어.” “저 년 같잖게 너무 건방지지 않아?” 하고 장난처럼 한마디를 입 밖에 내기만 하면 의외로 일은 쉽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학생들 입장에서야 어린 날의 객기나 추억정도로 한바탕 웃고 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폭행을 당한 강사로서는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일을 당한 강사 10명 중에 7, 8명은 결국 학원을 떠나기 마련이었다. 

     드물긴 해도 학생이 강사를 유혹하는 일도 때로는 벌어지곤 했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두고 ‘보너스’라고 농담 삼아 부르곤 했지만 꽤나 경계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일단 들통이 나면 쌍방 합의하에 했다느니 학생 쪽이 먼저 유혹했다느니 따위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잘못되면 직장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아 고소당하지 않더라도 사정은 크게 나아질 게 없었다. 그런 소문은 빠르게 돌기 마련이어서 그 지역에서는 더 이상 강사로 일할 수 없었다. 총각 강사들은 이런 처우가 꽤나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성숙한 여자의 몸으로 당당하게 유혹해오는 18살짜리와의 잠자리는 충분히 정상참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일단 이 같은 일이 불거지면 학원으로서도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래서 새내기 강사들은 - 특히 남자 강사들은 - 처음 입사한 날 원장에게 이에 대한 은유적이기는 하나 부담스러운 주의를 들어야 했다. 물론 때론 강사와 학생이 말 그대로 ‘진지하고 건전하게’ 교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그 사실이 학원에 알려지면 ‘보너스’  경우와 비슷한 취급을 받고 해고되기 마련이었다. 학원으로서는 ‘건전’과 ‘불건전’을 따지고 조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미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때 석준과 친분이 있었던 국어 강사도 5년 전 17살짜리 여학생과 만남을 갖다가  - ‘진지’하기는 했으나 ‘건전’하지는 못했던 - 여학생이 임신하게 된 바람에 학원에서 해고당했던 일이 있었다. 그는 지방으로 쫓겨 가는 처지가 되었고, 그 후 지방의 한 학원에서 한문 강사로 일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석준과는 연락이 끊겼었다. 그러다가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첫아이 돌잔치까지 했다는 걸 석준은 최근에 소문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여학생은 어찌 됐는지, 임신했던 아이는 또 어찌 됐는지 더 이상 알 길이 없었다. 

     강사와 학생 사이의 염문은 윤리적인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그 강사가 몸담고 있는 학원과 동료 강사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학원 강사들 사이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얘깃거리이기도 했다. 보통 그런 일들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학원에서도 나서서 쉬쉬하기 마련인데도 금세 먼 학원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더구나 그 소문이란 것이 놀랍도록 구체적이어서 강사 이름이나 전공과목, 상대 학생의 머리 스타일까지 자세히 거론되기 일쑤였다. 한번 그런 소문이 퍼지면 강사들은 한동안 그 얘기로 수군거렸는데, 모두들 진지하기 보다는 조금쯤 우스개를 섞어 은밀하게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몇몇 남자 강사들은 [학과목뿐만 아니라 인생도 가르쳐 주는 진정한 선생님 아니냐.]며 키득거렸고,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석준까지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10시 20분이 되자 마침내 석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강사들의 3분의 2정도가 자리를 떠난 뒤였고 남은 사람들도 속속히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도 퇴근하기 위해 책상위에 널린 종이며 쓰레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는데 그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그는 미처 발신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재빨리 핸드폰을 받았다. 

     “예, 이석준입니다.” “여보세요.” “예, 말씀하세요.” “석준씨, 저, 주희 엄마에요.” “예? 아, 예. 정은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잘 계셨죠?” “네, 저야 별 일 없죠. 주희도 잘 있죠? 이제 3살 됐나?” “네 달만 있으면 3살이에요.” “아, 그래요?” “학원 일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늘 그렇죠, 뭐.” “네에.” “요즘 바빠서 종훈이한테 연락을 못했네요. 종훈이도 잘 있죠? 별일 없구요?” “주희 아빠는 잘 있어요. 안 그래도 요즘 석준씨 얘기 자주 하는 데 회사일이 바빠서 만날 짬을 내기가 힘든가 봐요.” “바쁜 게 좋은 거죠. 그런데 무슨 일로 저한테 다 전화를 하셨어요?” “저, 다름이 아니라, 딴사람한테 듣기 전에 제가 직접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뭔데요?” “저기, 시연이가요, 다음 달 말에 결혼해요.” “예? 아아, 그래요? 몰랐네요.” “예, 저,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나봐요.” “예, 잘 됐네요. 잘 됐어요.” “네. 저기, 그럼, 조만간 한 번 집에 놀러 오세요. 저녁 같이 먹어요.” “예, 그럴게요.” “그럼 이만 끊을게요. 다음에 봐요.” 

     석준은 전화를 끊은 후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잠시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특별히 놀란 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예기치 못한 일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유감스럽거나 언짢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조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혼한 전 아내의 재혼이라는 건 깔끔하게 간추려 지기에는 꽤나 묘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이혼한지 3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우선 이혼 후에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해보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2년 3개월 만에 끝장난 자신과의 결혼생활 때문에 그녀가 이제 결혼이라면 넌더리를 낼 거라고 생각했던 은근한 장담이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녀가 넌더리를 냈던 건 석준과의 결혼이지 결혼 자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석준은 시연을 대학교 때 만났다.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한 후에 한참 취미삼아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때였다. 당시 그는 ‘광해'라는 흑백사진 동아리의 일원이었는데, 3년 정도 했던 그것이 그가 가장 오랫동안 몸담았던 취미 활동 - 텔레비전 시청을 제외한 -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도 의외일 정도로 사진 작업에 열심이었고, 그런 그가 같은 교양 수업을 듣던 시연에게 그쪽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을 건넸던 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녀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다거나 흥미를 느꼈던 건 아니었다. 그녀는 당시 석준이 여기저기서 찍어대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일 뿐이었고 그녀를 찍으면서도 딱히 주목할 점을 찾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이다. 

     정작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현상된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난 뒤였다. 마치 덜 삶아진 고기가 이빨 사이에서 질겅거리듯, 사진 속에서 완전히 압착되지 않은 그녀의 눈빛은 보통 피사체에게서 나타나는 아첨이나 반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빤히 올려다보는 무심한 시선은 카메라 렌즈 자체와 닮아있었다. 그녀의 사진 앞에서 석준은 되려 자신이 사진기 앞에 선 것처럼 몸 둘 바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가차 없이 사진기 앞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도망가고 싶어 쭈뼛거리면서도 결국은 온통 자신을 맡겨버리게 되는 무력감. 

     그 후 석준은 그녀의 사진을 책상 머리맡에 붙여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선보이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같은 수업을 듣지 않는 그녀를 보기 위해 학교 주변을 어정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면 멀찍이서 몰래 뒤를 밟기도 했다. 얼기설기 얽혀있는 전깃줄 그림자 사이로 그녀의 뒤를 따라가던 초여름 밤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그때만큼 자신을 남자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혹시 그녀가 갑자기 뒤돌아 볼까봐 마음을 졸이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그녀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과 반대로 자신이 그녀의 가장 큰 위험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어지럽게 피어오르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별 볼일 없는 일상도 어떤 진지한 비밀과 사명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 해 늦가을, 마침내 그는 시연에게 고백했다. 

    "우리 한 번 만나보면 어때요?” 

     그녀는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고 그렇게 그들은 데이트를 시작했다. 실제의 시연은 사진 속 그녀와 일치했을까? 그런 건 이미 까맣게 잊어버려서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 석준과 시연은 3년에 걸쳐 연애를 했다. 가끔 싸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원만하게 흘러갔다. 무엇보다 대화와 섹스를 할 수 있는 일정한 상대가 있다는 게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와 사귀는 3년 동안 석준은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 아니 결혼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 본적이 없었다. 주위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그렇죠.] [그럼요.] [그래야죠.] 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어쩌면 그는 결혼뿐만 아니라 시연과 자신의 관계조차 근본적으로 헤아려 본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평소 명쾌하지 못한 생활 태도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연과의 관계만은 거의 방관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학원에 취직했을 때, 시연 쪽에서 먼저 결혼 의사를 밝히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모든 걸 헷갈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왜’ 따위의 구체적인 질문들에는 단번에 맥이 풀려버렸다. 몇 번쯤 기운을 내보던 석준도 마침내는 흐지부지 좋은 쪽으로 생각해 버렸다. 사실 당시에는 결혼이란 게 정말 좋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장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그들의 결혼은 2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이혼한지 3년도 되지 않아서 재혼을 한다는 건 너무 빠르지 않나.]

     그는 3년 전 이혼 수속을 모두 마치고 그를 쳐다보던 그녀의 마지막 표정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카메라 렌즈를 닮아 있지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거울을 들여다 볼 때와 흡사한 눈으로 석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선생, 집에 안가요?”

     복도를 지나가던 원장이 문틈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말했다.

     “예? 아 예, 가야죠.” 

     둘러보니 강사실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석준 뿐이었다.

     “오늘 좀 피곤했나봐? 어서 들어가요.” 

    “예, 들어가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석준은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책상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가방을 둘러메고 문을 나섰다. 학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쩌렁거리는 음악이 쌀쌀한 바람보다 먼저 그의 귀를 때렸다. 그는 어깨를 떨며 옷깃을 귀 위로 바싹 끌어 올렸다. 벼린 찬 공기가 콧구멍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는 가래 섞인 잔기침을 뱉어내고는 대형 화면 속의 카우보이 아가씨를 올려다보았다. 산처럼 거대한 그녀는 턱을 끄덕이면서 허공을 향해 웃음 짓고 있었고, 그녀의 벌어진 가랑이 밑에 있는 단란주점 입구로는 막 한 무리의 남자들이 뒤엉켜 들어가고 있었다. 석준은 시연과 결혼하게 될, 누군지도 모르는 그 남자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러자 자기 자신이 지독히도 부끄러워졌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