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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Dec 28. 2022

구멍 (둘)





...          



     석준이 405호 강의실 문을 열자 몇 명씩 무리 지어 떠들던 학생들이 동시에 흩어지면서 더러는 재빨리, 더러는 느릿느릿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요란스럽게 의자 끄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사이를 두고 한발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강의실 안에 가득 찬 짭짤한 과자 냄새와 커피 냄새, 겨울 코트 먼지가 뒤섞인 미지근한 열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어와 석준은 짤막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것이 경고처럼 들렸는지 학생들은 서둘러 가방에서 참고서와 공책을 꺼내는가 하면 책상위에 벌려놓았던 과자 봉지를 책상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남은 빵을 계속 뜯어 먹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석준은 강의실 앞에 우뚝 서서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마치 울긋불긋 색칠되어있는 세계지도처럼 보였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모여앉아 있었다. 모여 있는 학생들끼리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가까이에 붙어 앉아 있었다. 석준은 묵묵히 교단 앞으로 걸어가 [아이엘리트 학원 - 수학 - 이석준]이라고 적혀있는 파란색 표지의 출석부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러 장의 종이를 뒤적여 상단에 <고1 - D반>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찾아냈다. 종이에는 27명 학생들의 이름과 칸칸이 나누어진 네모난 표가 인쇄되어 있었다. 각각의 이름들 옆에는 직접 손으로 표시한 O, X 가 줄줄이 어지럽게 칸을 채우고 있었다. 

     “오늘 안 온 사람 있나?” 

     그는 출석부에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저기, 민주가 아직 안 왔는데요.” 

     학생들 중 뒤쪽에 앉아 있던 누군가 대답했다. “그래? 왜?” 석준은 출석부 표지에 꽂혀있던 볼펜을 빼내어 종이에서 ‘민주’라는 이름을 찾으며 건성으로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아마 요새 저희 학교에서 준비 하는…….” 

     민주.......민주....... 여기 있네. 최민주. 그는 최민주라는 글씨 옆줄을 죽 따라가 오늘 날짜에 해당하는 칸에 진하게 X표를 했다. 

     “.......지만요. 그래도 늦게라도 올 수 있으면 온다고 했어요.” 

     석준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 또 안온 사람?”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석준은 고개를 들어 강의실을 훑어보면서 학생들의 머릿수를 세었다. 정확히 26명이었다. 그는 출석부를 닫으며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지금에서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생들이라는 걸 눈치 챈 듯 돌연한 태도였다. 

     “야아, 벌써 봄이라도 된 것 같다. 오늘 엄청 따듯했지? 낮에는 기온이 10도 가까이까지 올라갔던데…….” 

     이쯤 되면, 지금껏 무언가를 먹거나 딴 짓을 하던 학생들도 슬그머니 먹던 것을 치우게 되고, 석준도 강의실 안의 냄새니 먼지니 하는 것들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마련이었다. 

     학년과 인원수 등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석준은 대략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는 5개 반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고1 - A반], [고1 - D반], [고2 - A반], [고2 - B반], [중3 - B반], 5개 반의 15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의 출석을 매일 확인하는 건 비단 석준 뿐만 아니라 다른 강사들에게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정식으로 하자면 매 수업 시간마다 한 학생씩 이름을 불러가며 이름과 얼굴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강사는 거의 없었다. 석준 역시 강의 첫날을 빼고는 결석한 학생들만 대충 표시할 뿐 출석 확인을 생략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몇 달이 지나도록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오늘 결석한 민주라는 학생만 해도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학원 복도에서라도 마주치면 농담을 건넬 정도로 낯익은 얼굴일 테지만 이름과 얼굴을 연결 짓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6개월의 수업 과정 중 두 달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그가 얼굴과 이름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학생은 고작 1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성까지 알고 있는 학생을 꼽아보면 5명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강사들 사정도 대충 마찬가지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형편이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학생들의 이름을 얼마나 외우고 있냐고 물어보기도 멋쩍은 일이었다. 설사 물어본들 그들이 솔직하게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얼마 전 24살의 새내기 생물 강사가 그 많은 학생들의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냐며 걱정스럽게 자신에게 물어왔을 때도 석준 역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열심히 하다보면 다 요령이 생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얼버무린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강의실 안에 ‘영수’가 앉아 있던 ‘경수’가 앉아 있던 석준에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반에는 언제나 25명에서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배당되기 마련이었고, 그 학생들에게 진도에 따라 똑같은 내용의 수학을 가르치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러니 ‘영수’와 ‘경수’의 차이는 고사하고 학생 한명과 학생 30명의 차이조차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석준이 강사로서의 소양이나 책임 의식이 부족하다고 단정한다면 그건 분명 섣부른 매도가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선생으로서의 애정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혹여 국민을 향한 정치인들의 애정만큼이나 추상적이고 자기애적인 형태일지라도 어쨌든 ‘학생’이라는 존재가 그의 가슴을 뚜렷이 채우고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강사가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모욕을 느끼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별히 그 점에 주목하는 학생도 없었고, 그것을 기대하는 학생도 없었다. 

     “자, 내가 어제 방정식 숙제 내준 건 다 해왔지? 안 해온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 없어? 야, 웬일이냐. 그럼 백퍼센트 숙제해온 기념으로 그중에서 다섯 문제만 뽑아서 쪽지시험 볼 테니까 모두 책하고 노트 집어넣어. 뭐가 그런 법이 어딨어요야? 우리 사이에 무슨 쪽지 시험을 예고하고 보냐? 숙제한데서 고대로 나오는 건데 무슨 말들이 많아. 그래, 미워하던지 저주하던지 마음대로 하고. 뭐? 당연히 숫자는 바꿨지. 내가 바보냐? 답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다 써야 된다. 과정은 틀렸는데 답이 맞는 기적을 행하는 놈들은 대학이 아니라 종교에 귀의시킬 테니까 알아서들 해. 자, 문제지 다 받았지? 시간은 20분이다. 그럼 시작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은 그의 입에서 시작하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책상 위로 머리를 숙이고 문제를 풀어나갔다. 서걱거리는 샤프심 소리와 지우개질에 삐걱대는 책상 소리, 경직된 공기를 일부러 좀 흩트려 보겠다는 듯 드문드문 튀어나오는 몇 번의 기침 소리를 빼고는 강의실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까마득한 어른인 척 점잔을 빼고 있는 석준이었지만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른다는 게 가끔은 그저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자신을 향한 학생들의 뿌리 깊은 믿음과 존중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그것이 석준 자신에게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저 이 학원에 고용된 한명의 고용인일 뿐이었고 그 어떤 실질적인 약속도 스스로 학생들에게 한 적이 없었다. 설사 석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서있을지라도 이들은 똑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주어진 수학 문제를 풀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순종의 무게를 자신이 감당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석준은 학생들을 둘러보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강의실 뒤편으로 걸어갔다. 강의실 뒷벽은 커다란 유리 3개가 이어져 있는 창문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게 고정되어있었고 유리창 전체에 희고 불투명한 시트지를 발라놓아서 흰 페인트칠이 돼있는 나머지 벽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낮에는 창문 바깥쪽에 붙어있는 학원 이름과 전화번호가 햇빛에 비쳐 보이기도 했지만 저녁 8시가 넘은 지금은 실내 형광등빛이 반사되어 더욱 창백하고 답답해 보일 뿐이었다. 

     밖이 보이지 않으니 창밖의 풍경은 고사하고 이 강의실이 4층에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석준은 고개를 들어 하얀 시트지로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창문 위쪽의 가느다란 틈을 올려다보았다.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이 유리에 반사되어 창문 바로 옆에 빨갛고 파란 얼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끔씩 번쩍이는 하얀 빛은 앞 건물의 대형 전광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동차 광고 불빛이 분명했다. 만약 이 강의실에서 창밖을 내다볼 수 있다면 진주색 자동차 위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흔들면서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카우보이 아가씨를 아주 좋은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풍성하게 부풀어 올라 번쩍이는 금발 머리나 커다란 박차가 달린 매끈한 가죽 부츠도 볼만했지만 역시 그녀의 벌어진 조끼 사이로 보이는 깊은 가슴골이라든지 핫팬츠 아래에 들어난 하얀 허벅지가 제일가는 눈요깃거리였다. 그는 언젠가는 꼭 한번 창틀에 기어 올라가 카우보이 아가씨를 제대로 감상해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석준은 몸을 돌려 창틀에 등을 기댔다. 창 틈새마다 방음처리가 되어있었지만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길 건너편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틀어놓은 디스코 음악이었다. 그 요란한 음악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박동처럼 창틀을 통해 그의 몸으로 전해져왔다. 번쩍거리는 빛과 파동으로 가득 차있는 세계. 그런 등 뒤의 세상과는 달리 강의실 안은 지나치게 적막하고 또 청결하기만 했다. 쏟아지는 새하얀 형광등 불빛, 4개의 하얀 벽, 반듯한 책상과 의자, 추상적인 숫자에 골몰해 있는 학생들의 반들반들한 뒷모습. 모든 게 이대로 완벽하게 진공 포장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아마 유통기한이 1000년쯤으로 되어있는 깡통을 보는 기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석준은 차가운 유리 표면에 뒷머리를 바짝 기대고서 하얀색 합판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벌컥 문 열리는 소리에 석준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학생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어 강의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남색 교복을 입은 긴 머리의 키가 큰 여학생 하나가 문을 닫으면서 석준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제법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시험 보는 중인걸 알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자습하고 있어.” 

     석준의 말에 여학생은 가방에서 참고서와 노트를 꺼내 펼쳐들었다. 석준은 이 학생이 바로 민주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학생이라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서구적인 체형에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수업 시간 중에도 종종 눈에 띄곤 했다. 이 학생을 흑백 사진으로 찍는다면 꽤나 미인으로 나올 거라고 점쳐 본적도 있었다. 석준은 허벅지까지 바짝 올라간 민주의 남색 치마로 눈길을 돌렸다. 사실 그는 민주가 강의실에 들어설 때부터 그녀의 짧은 치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어야 하는 여학생들에게 치마 길이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치마 아래로 들어나는 다리는 여학생들이 교복 안에서 ‘합법적’으로 성적 매력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였다. 무릎 위 1센치와 무릎 아래 1센치의 치마 길이 차이는 단순히 2센치의 차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만들어가는 두 여자의 차이를 상징한다고 말한다면 허튼 소리가 될까? 여학생들은 자신을 치마 속으로 숨기면서도 보여주는 방법을 재빨리 터득했고, 석준을 포함한 남자들은 그들을 무심한 척 유심히 훔쳐보는 방법을 습득해왔다. 

     그때 갑자기 민주가 자신을 돌아보는 바람에 석준은 황급히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반응이라 어색해 보였을 게 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뻔뻔하게 그녀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편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면서 석준은 손에 들고 있던 시험지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지금쯤 학생들이 풀고 있을 마지막 문제를 마음속으로 읽어 내려갔다. 

     [같은 자동차 경주 코스를 두 자동차 A, B가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다. 자동차 A, B 의 속력은 각각 분속 a km/분과 b km/분이고, 경주 코스 한 바퀴의 길이는 c km 이다. 3a - 3b = 2c 가 성립한다고 할 때, 다음 중 옳은 보기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2번, 3분마다 A가 B보다 두 바퀴 더 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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