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May 05. 2024

좀 더 순진하게 (50)




     의사는 벌어진 내 다리를 진료 의자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휑하니 열린 내 가랑이 사이에 눈부시게 밝은 조명을 비추었다.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사의 시점에서는 참으로 대단한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커다란 마스크에 가려져 있는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섹스를 할 때도 저런 표정일까. 여자의 성기가 너무 뻔하디 뻔해서 오히려 깜깜하게 불을 끄지 않으면 발기가 되지 않는 게 아닐까. 그건 여자의 성기를 보지 않기 위함일까 아니면 자신의 시큰둥한 표정을 감추기 위함일까.

    그는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이리저리 자세히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초음파 기계의 긴 막대기 부분에 무언가 질척한 것을 바르고는 내 질 속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전희 없이 들어온 차가운 플라스틱의 이질감이 너무나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온몸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의사는 괜찮다며 (수천 번은 말했을 법한 친절한 말투로) 나를 달랬지만, 딜도 사용에 익숙한 나마저도 이 기괴한 행위에 몸서리쳤다. 정말 이상한 세상이 아닌가. 극단의 미개함과 극단의 최첨단의 당연하고도 무도한 혼종. 마침내 막대기가 딜도나 남자의 성기가 들어올 수 없는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게 느껴졌다.  

     “자, 좋습니다. 이제 여기 화면을 보세요. 보이시죠?”

     나는 의사의 지시대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화면에는 흑백의 얼룩무늬만 잔뜩 퍼져 있어서 정확히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 있네요. 네, 임신이 맞습니다. 저기 하얗게 생기고, 머리, 조그맣게, 여기 팔, 다리도 보이네요.”

     의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어주었지만 나는 검은 무늬와 하얀 무늬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람의 형상을 찾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의사는 턱을 으쓱해 보였다.

     “괜찮습니다. 다음 달 쯤에는 확실하게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디, 어디. 예, 좋습니다. 자아, 아기는 별 이상 없어 보이네요.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어요. 한 9주 정도 되었고요, 배아기에서 태아기로 넘어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 주나 다다음 주쯤에는 꼬리도 없어질 거고, 점차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거죠. 아주 중요한 시기니까 굉장히 조심하셔야 됩니다. 이제 내장도 자리를 잡을 거고, 기형 여부도 지금쯤에 영향이 있을 수 있어요. 엄마가 먹는 건 다 아기가 먹는 거니까 먹는 거 조심하시고, 담배는 물론이고 술도 하지 마시고요. 감기약 같은 것도 함부로 드시면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 있으면 곧바로 병원에 내원해 주세요. 예, 좋아요. 다 괜찮습니다. 이만 검사를 마치죠. 수고하셨어요.”

    의사는 막대기를 내 질 속에서 빼내고는 뒤처리를 해주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내 다리를 의자에서 풀어주었다. 

    “이제부터는 최소한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오시는 게 좋습니다. 무슨 일이든 무리하지 마시고요. 무거운 걸 들거나 높은 데 올라가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의사는 손을 씻으며 코를 훌쩍였다.

    “네. 그런데, 저기, 그러니까, 여자인가요, 남자인가요?”

    “아, 지금 상태에서는 아직 생식기가 형성이 안 됐기 때문에 성별을 알 수가 없어요. 14주는 넘어야 성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사실을 나가려다가 의사에게 물었다.

    “저기, 아직 움직이지는 않겠죠?”

    “움직이지 않긴요. 한참 신나게 헤엄치며 돌아다닐 땐데요.” 

    의사는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검사비를 치른 뒤 병원을 빠져나왔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이 굵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다. 거리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끼니를 때우러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찡그린 얼굴들로 가득했다. 나는 길을 따라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금세 목과 겨드랑이에 땀이 차오르고 혀가 말라붙었다. 손바닥을 머리 위로 펼쳐서 햇빛을 가려보려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콘 하나를 사 먹었다. 바닐라아이스크림의 차갑고 달짝한 맛에 잠깐 기운이 솟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을 때쯤에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게 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이고, 내가 이런 일에 전혀 대책이 없으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사는 이미 그것이 내 뱃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고 했다. 다음 주쯤에는 꼬리가 사라지고, 10주나 11주에는 내장도 완성될 터였다. 14주가 되면 성별도 생기게 된단다. 완전히 한 명의 인간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꼴과 인간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나는 인간꼴을 하고 있었다던 그 암세포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인간 꼴은 어떻게 인간이 되는 걸까. 병원에서 보았던 흑백의 창백하고 모호한 얼룩이 자꾸만 눈앞을 아른거렸다. 나는 가로수를 붙잡고 서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희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까마득히 먼 어딘가에서 희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희진이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전화를 받은 것처럼 막막한 기분에 휩싸였다. 희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희진이의 이름조차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민주야.”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감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어떤 존재도 결코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너무 무거워서 온 세상이 존재들 위로 둥둥 떠다닐 정도다. 단지 우리는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수면을 손가락으로 희롱하면서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다며 짐짓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희진아. 우리 바다에 갈까?”

    “바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바다에 가자. 동해 바다.”

    “언제? 지금?”

    “너 오늘 쉬는 날이잖아. 내일은 딴 사람하고 시간 바꾸면 안 돼?”

    “밑도 끝도 없이 바다는 왜?”

    “그냥, 좀 답답하기도 하고. 단둘이 어디 가본 지도 오래됐잖아?”

    핸드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막역한 침묵 속에서 나는 한결 차분해졌다. 도대체 내가 왜 바다를 가려고 하는지 나에게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희진이가 순순히 알았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두 시간쯤 뒤 희진이는 차를 몰고 종로로 왔다. 우리는 서울을 빠져나가 춘천고속도로를 달렸다. 차 안은 조용했고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다. 희진이와 나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희진이도 무언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밤 10시가 넘어서 우리는 천진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변 바로 앞에 차를 세웠지만 달도 없는 밤이라 온통 깜깜했다. 날카롭게 찌르는 가로등 불빛들이 모래 위로 흩어지는 거품만을 간신히 비출 뿐 바다는 까마득한 어둠 뒤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해변 모래밭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을 마시거나 애정행각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나마의 풍취마저 망쳐지고 있었다.

    맥이 빠진 우리는 비릿한 물미역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해변을 30분가량 서성이다가 근처에서 숙소를 찾았다. 하지만 성수기인 데다가 늦은 밤이라 네 번째로 방문한 여관에서 겨우 방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그것은 여관이라기보다는 가정집을 개조한 여인숙으로 여름에만 문을 여는 곳이었다.  

     안내받은 2층 방은 널찍했지만 가구는 낡았고 노란 방바닥은 기름때로 반질거렸다. 우리는 전망을 보기 위해 창문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창유리는 새까만 거울처럼 우리의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나는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희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희진이의 그림자와 눈이 마주쳤다.

    “내일 아침에는 보이겠지.”

    희진이의 중얼거리는 음성이 바로 내 귓가에서 들렸다. 그녀는 내 어깨를 가볍게 잡더니 침대로 가자고 속삭였다. 우리는 불을 끄고 옷을 모두 벗은 뒤 침대에 마주 보고 앉았다. 열어 놓은 창문 밖에서 나른한 파도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방은 유난히도 어두웠고 희진이의 하얀 이마만이 가늘고 희미하게 빛났다. 우리는 어떤 의식이라도 치르듯 어쩐지 진지해져 있었다. 욕망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무감도 아니었다. 짐작 이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종의 한 쌍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엑스트라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희진이를 침대에 눕히고 희진이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녀에게 깊숙이 파고들어 그녀를 온몸으로 부둥켜안았다. 그녀의 몸에 맞닿아 있는 내 몸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는 건 동시에 내 몸을 만지는 것이다. 희진이가 미끄러지듯 허리를 틀더니 한쪽 다리를 벌려 내 허리에 감았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생각보다 멀리서, 그러나 또렷이 들려왔다. 나는 그대로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희진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꿈틀거리며 조여 오는 뜨겁고 미끄러운 내부가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신음 소리를 짜냈다. 낮에 내 몸속으로 들어왔던 길고 차가운 막대기가 다시 그곳을 휘젓고 있는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 나는 성교육 비디오에서 아이를 낳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붉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꿈틀거리며 피와 양수로 뒤범벅이 된 채 신음하던 여자는 꼭 한 마리의 커다란 짐승같이 보였다. 성기와 고통뿐인 짐승.    






(계속)


                

이전 19화 좀 더 순진하게 (4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