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나잇 벤자민

사랑하는 이가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by Rosary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8>를 처음 봤을 때 데이비드 핀처 답지 않은 말랑말랑한 감성에 적응이 안 되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있지만,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1922』을 원작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인공이 점점 어려진다는 설정 외에는 앤드루 숀 그리어의 『막스 티볼리의 고백. 2004』과 더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동화적인 분위기로 20세기를 반추하는 느낌의 잘 만든 드라마라는 인상을 받았다.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두 주인공에 감정 이입이 되어 아주 잠깐 같은 나이대에 만나 사랑을 나눈 후 벤자민은 점점 어려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 엇갈리는 연인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부모님이 연로해서 세상을 떠나신 후 이 영화를 보니 영화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원작자나 제작진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아기가 어른이 되는 과정과 노인이 세상을 떠나는 과정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게 아닌가 싶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부서질 듯 조그맣고 약한 아기가 몸을 가누지 못해 어머니가 젖을 먹이고 업어 키우면서 살이 붙고, 기어 다니다가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손에 쥐는 것은 모든지 입에 넣고 보는 성장 과정이 사람이 노쇠해지면 정확히 역순으로 진행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너무나 슬퍼서 도저히 다시 볼 수 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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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함께 병원에 가줄 수 있냐고 부탁하면서 눈치를 살피다가 언제 갈지 날짜를 여쭤보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같이 가줄래?” 하면서 기뻐했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보고 당연히 같이 가는 걸 왜 저렇게 좋아하실까 싶었는데 아버지는 자식 시간을 뺏는 게 미안하면서도 함께 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키가 크고 건장한 분이었지만 병원 가는 길에 내 팔짱을 끼고 의지해서 걷는데 야윈 팔과 아버지의 쇠약함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머니는 기억력이 점점 사라지고 가끔 섬망 증상을 겪기도 하셨는데 아침에 본 똑같은 뉴스를 저녁에 볼 때 처음 보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물어본 걸 또 물어보면 똑같이 대답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내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서 항상 자식 옆에서 꼭 붙어있으려고 해서 잠시도 외출할 수 없게 되었고,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 스스로 곡기를 끊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서 미음을 입에 넣어드려도 소용없었다. 2~3일 전에는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위해 몸 안의 모든 것을 비워내는 부모님의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몇 주 동안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조금씩 조금씩 생명이 꺼져가는 과정을 밤낮없이 지켜보는 일은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마지막 시간을 내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


만약 싱가포르에서 계속 살면서 갑작스레 부모님과 이별하게 되었다면 가슴의 응어리가 크게 남았을 것이다. 마지막을 함께 보냈기에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여서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소중한 시간이었고 부모님을 여읜 슬픔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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