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2025
한강 작가의 산문집이 나왔다. 문학과지성사의 에크리 시리즈로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에크리’는 프랑스어로 ‘쓰다’, ‘글’이라는 뜻으로 “경계 없는 글쓰기”라는 컨셉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의 산문 시리즈이다. 식물에 작은 빛을 비추는 모습의 표지에 사용한 흑백사진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지 한강 작가가 촬영한 사진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완독해 본 적이 없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 중간에 책을 덮고 말았다. 하지만 언젠가 다 읽겠다는 마음에 여전히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는 한강의 소설들. 소설을 읽으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지만, 산문은 작가의 삶과 만나게 된다. 다 읽지 못한 소설에 대한 나의 읽기 체력에 대한 부족함과 함께 한강 작가와 작품 세계에 대한 궁금함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한강 작가는 어린 시절 공책으로 만든 작은 책에 쓴 시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뒤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로 글을 시작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랑, ‘금’과 ‘실’. 책 속에는 노벨상 수상 강연문과 작가의 소설을 창작하면서 작가 스스로 질문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글이 담겨 있다. 작가는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살았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소설 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1부라면, 2부는 작가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강 작가는 40세가 넘어 처음으로 마당이 있는 자신의 집을 마련하고 직접 식물을 심고 가꾸기 시작한다. 책 표지의 식물과 손바닥만한 빛이 무엇인지 책 중반을 넘어가면 알 수 있게 된다. 마당에 빛이 잘 들지 않아 식물을 키우려면 빛이 필요한데, 필요한 빛을 식물에게 주기 위해 거울을 마당에 설치해 식물에게 빛을 비춘 것이다. 마당에 화단을 만드는 과정과 하루하루 커가는 식물을 바라보는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그대로 보여준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어쩐지 시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작가의 생각과 시선이 느껴져 천천히 읽게 되었다.
빛이 없는 척박한 환경이지만 거울의 빛에 기대 성장하는 식물들. 작고 가냘픈 어린 단풍나무를 보며 “십 년쯤 지나면 처마에 닿을 만큼 커지고 굵어질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씨앗에서부터 지닌 나무. 죽지 않는다면, 살아남는다면. 마침내 울창해진다”라는 문장에서 한강 작가의 삶과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