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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Sep 10. 2024

싱글 모음집이 되어버린 일본의 정규 앨범들

정규 앨범. '너프' 당한 것이 아니라 '정상화' 된 것입니다.

지난 8월 21일에 발매된 Yonezu Kenshi (이하 요네즈 켄시)의 정규 앨범 [Lost Corner]의 트랙리스트를 살펴보면 어딘가 기묘하다. 20개에 달하는 트랙리스트 중에 정확히 절반, 10개의 트랙은 이미 기존에 싱글, OST의 형태로 선공개된 곡이기 때문이다. 켄시뿐만 아니다. 7월 24일에 발매된 Official髭男dism (이하 히게단)의 앨범 역시 전체 (Interlude 포함) 16 트랙 중에 8 트랙이 OST로 공개된 곡이었고, 이 외에도 ヨルシカ (요루시카), Vaundy, 椎名林檎 (이하 시이나 링고)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인기 가수들의 최근 정규 앨범을 살펴보면 트랙의 약 절반 가까이가 선공개 곡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선공개 싱글’은 비단 일본만의 것이 아니고, 최근만의 일인 것도 아니다. 일찌감치 미국, 영국과 같은 국가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예전부터 자주 해오던 관습이며, 대중들의 주목을 끌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유독 그런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도 하다. 이렇게 정규의 절반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을 선공개 곡으로 푼다는 것은 기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혹자는 “정규 앨범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곡들을 미리 공개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라고 묻겠지만, 요네즈 켄시의 경우 ‘死神’이나 ‘Pale Blue’와 같은 트랙이 21년에 공개됐다는 것을 안다면, “이 트랙들이 과연 정규 앨범을 위해 3년 전부터 쌓아 둔 포석이었냐” 하는 반문에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가 해외의 몇몇 아티스트들처럼 정말로 정규 앨범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아티스트’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즉, 딱 잘라 말해서 현재의 일본 메이저 음악시장에서 정규 앨범은 사실상 싱글 모음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정규 앨범에서는 앨범 단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운드적 내러티브라거나, 유기성이라거나, 앨범의 서사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이전부터 꾸준하게 명반을 뽑아온 시이나 링고만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일본은 어쩌다가 이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일까. 




1. 일본만의 독특한 CD 감상 문화


이를 위해서 일본의 음악 생태계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일단 현재 세계는 모두가 알다시피 스트리밍 중심의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상태이다. 2022년 국제 음반 산업 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1년 전체 음악 산업 매출액에서 70% 가까이가 약 스트리밍과 다운로드였고, CD 레코드는 불과 20%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며, 이렇게 전체 통계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유튜브 뮤직과 스포티파이의 성장세를 나날이 기사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살짝 다르다. 2021년에도 음악 감상의 59.1%가 물리적인 시간, 즉 CD 혹은 DVD를 통한 감상이었으며 스트리밍은 불과 40.9%에 불과하다. 또한 2014년 이후 스트리밍은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37.3%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일본에서는 10.1%의 성장률에 그친다는 보고도 있다. 물리적 시장이 불과 11%만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수치이며, 음악 산업이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큰 영국, 독일, 프랑스 역시도 비물리적 시장, 즉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유통 시장이 70%를 차지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일본은 음악 강국 중 아직까지도 CD 감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가 될 수도 있겠다. 


위에서부터 미국 - 일본 - 영국 - 독일 - 프랑스 순.


스트리밍이 막 떠오르던 당시,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한 시대였지만 저작권법의식이 강한 일본 특성상 여전히 불법 스트리밍보다 CD 감상을 선호하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져 왔다는 부분이나, 오타쿠 문화를 잇는 推し (오시. ‘남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라는 뜻) 문화의 특징 역시 CD와 같은 굿즈들을 구매해 감상하고 공유한다는 점 역시도 CD 감상 문화가 자리 잡게 된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아무래도 일본의 대형 기획사 ‘쟈니스 사무소’ (이하 쟈니스) 역시도 큰 책임을 피할 수 없다. 1980년부터 일본 음악시장을 주름잡아온 쟈니스는 21년에도 CD, 싱글 판매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스트리밍, 유튜브 시장에는 2019년 되어서야 소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5년이 지난 지금도 쟈니스의 모든 곡이 풀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부터 일본의 음악팬들은 쟈니스의 음악을 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CD를 구매해야만 했고, 스트리밍 문화가 시작된 2000년대 이후에도 그 점은 여전하다 보니 관습적으로 CD 감상의 비중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2. 차트의 고착화


이러한 CD 감상 문화는 결국 여러 부작용을 낳게 된다. 스포티파이 기준 68개 국가에서 연간 상위 200위에 오른 총 노래 개수를 살펴본다면, 일본은 밑에서 2위인 622곡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1위를 기록한 독일이 약 1,600곡이라는 점이나, 대체적으로 유럽과 미국, 한국 같은 음악 시장이 큰 나라들일수록 노래가 많은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시 역시 압도적으로 낮은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노래가 한번 히트하면 그 어떤 나라보다 오랫동안 차트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고착화 역시 심각하다. 마찬가지로 스포티파이 기준 연간 200위 안에 든 아티스트 수를 비교해 보면, 전 세계 평균은 627팀, 1위 독일은 1036팀, 미국과 영국은 각각 639팀과 634팀을 기록한 반면 역시 일본은 245팀으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Y축 : 상위 200위에 들어본 아티스트의 수 / X축 : 상위 200위에 들어본 곡의 개수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분명히 CD 문화에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CD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며 스트리밍을 잘 사용하지 않다 보니, 듣는 음악만 계속 듣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2020년 일본의 대형 음악 플랫폼 ‘라인뮤직’의 COO 다카하시 아키히코 (Akihiko Takahashi)는, “일본에서 음악을 듣는 트렌드 중 하나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서비스 통계를 보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마이 페이지’이며, ‘검색’ 기능의 사용률은 낮다. 반면 해외의 경우에는 ‘검색’과 ‘발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일본 사람들은 노래가 아니라 사람을 고집한다”, “미국 등에서 유행했던 '라디오식'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본에서 유행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항상 새로운 노래를 듣고 싶지 않아 한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스트리밍 문화는 명과 암이 극명하다지만 차트나 플레이리스트 등을 통해 쉽게 새로운 곡을 접할 수 있는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인데, 오래전부터 CD를 통해 듣는 음악만 듣는 것이 익숙해진 일본에서는 이 순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듣던 음악만 듣게 되니, 자연스럽게 수록곡이 아닌 타이틀에 집중하게 된다. 알고리즘을 통한 발견, 검색 문화가 발전했다면 어떤 곡이 뜨게 될지 모르기에 수록곡의 퀄리티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차트가 고착화되면 차트에 오를 만한 몇몇 노래에만 힘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3. 일본의 OST 사랑


여기에 하나 더, 일본은 OST에 유달리 진심인 편이다. 작년 7월 고멘트에서는 한국 OST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며, 그 이유를 분석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OTT 시장이 커지다 보니 TV 드라마의 트래픽이 분산되고, 그렇게 자연스레 OST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파이가 작아지고 대형 가수들의 참여가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의 유명한 드라마 각본가 노기 아키코나 감독 미나모토 다카시가 지적했듯이, 일본은 아직 OTT보다는 TV에서의 시장이 활발하다. 때문에 OST의 파급력이 여전히 강한 편이다. 일본 영상 콘텐츠 수출의 89%를 차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도 없다. TV와 OTT 할 것 없이 파이가 큰 시장이기에 OST에 여전히 탑 티어 가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네즈 켄시의 ‘Kickback’, YOASOBI의 ‘IDOL’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의 압도적인 애니메이션 시장.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한국의 OST 시장은 예로부터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음악 감독, OST 작가들이 주는 노래를 ‘가창’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일본의 OST 시장은 아티스트들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 탑 티어 가수들 대부분 소위 벅차오르는 감성, 오타쿠스러운 감성으로 대변되는 ‘JPOP 감성’에 기반한 아티스트들이다 보니, 탑 티어 가수들이 OST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인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이렇게 일본은 그 어떤 플랫폼보다 가장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OST 시장 역시 신인 아티스트가 아닌, 탑 티어 가수들이 나눠 먹게 되는 시장이 형성되며, 더해서 본인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할 만큼 공들여 만든 노래들이기에 정규 앨범에서 제외하기도 애매해지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조합해 보자. 


1. 가장 쉽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일본 OST 시장은 (한국과 달리) 파이가 큰 만큼 되려 신인 가수가 아닌 기존 히트 가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동시에 공들여 만든 OST인 만큼 정규가 아닌 싱글로만 소모하기에는 아티스트 본인들에게도 어딘가 아쉬울 것인데,


2. 결정적으로 일본은 아직까지도 CD로 음악을 듣는 문화가 활발하며, 일본의 대중들은 새로운 곡을 찾기보다 듣던 곡만 계속 듣는 경향이 강하다.


3. 때문에, 정규 앨범에 OST로 익숙한 곡들을 빼고 새로운 노래들로만 트랙을 구성하면 CD로 그 앨범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CD 하나에 최대한 본인들이 가장 공을 들였음과 동시에 가장 히트한 곡들을 앨범에 최대한 수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앨범 단위의 완성도를 신경 쓰기보다는 CD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히트한 노래를 최대한 많이 넣어줘야 더욱더 잘 팔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OST 시장이 주목도가 적고 한국처럼 대충 가창만 하는 구조였다면, 혹은 CD 문화가 정착하지 않아 싱글 단위로 내도 대중들이 스트리밍으로 들어주는 구조였다면, 이러한 문화는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즉, 일본의 이러한 ‘정규 앨범의 싱글 컴필레이션화’ 현상은 일본만의 독특한 음악 시장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 아티스트라고 해도 메이저 씬에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결정한 차선책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규 앨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음악적 내러티브가 없이 싱글의 완성도만을 조합한다면은 장기적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이 탄생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메이저 씬에서 활동하는 잔나비, 선우정아, 아이유 등의 아티스트들도 정규 앨범만큼은 싱글 단위가 아닌 앨범 단위의 ‘명반’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싱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서사, 유기성, 감동을 선사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 일본은 히트곡은 많지만 메이저 씬에서 ‘명반’이라고 불릴만한 최근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참으로 애매하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The Beatles (이하 비틀즈)의 [Rubber Soul]이 등장하기 전의 서양권 음악시장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Bob Dylan 같은 예외는 있었지만) 당시 미국과 영국의 팝 시장은 ‘명반’이라는 개념이 없이 그냥 히트한 싱글들과 필러 트랙 몇 개를 모아 발매하는 것이 정규 앨범이었다. Elvis Presley도, Ray Charles도, Chuck Berry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와중에 비틀즈는 최초로 ‘싱글로 발표하지 않은 곡들로 [Rubber Soul]을 발매해 대 성공을 거뒀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에 자극을 받게 되며 영국과 미국은 대 명반 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비틀즈는 정말 전설이다


싱글 위주의 아티스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지금 시장에서 싱글 발매를 하지 않고 정규만 내라는 요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요구인지도 잘 알고 있다. 당장 미국도 정규 발매 전에 3~4곡 정도는 싱글로 발매하는 것이 관례이니까 말이다. (물론 OST는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명반’을 내줘야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밸런스이다. 싱글과 명반 두 요소가 골고루 자리 잡아야 음악 시장의 생태계는 더욱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일본의 21세기 비틀즈가 될 것인가. 이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것이다. 



자료 및 인포그래픽, 인터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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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田宗千佳のRandomTracking】日本の音楽サブスク現状、ブレイクへの秘策はあるのか。LINE MUSIC高橋COOに聞く - AV Watch (impress.co.jp)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2184550i




By 베실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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