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가졌을 때 출산휴가를 명목으로 10여년 간 해오던 일을 처음으로 쉬었다. 아이 덕분에 남들 일할 때 쉰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낳기 전에는 철없이 그저 출근 안하는 게 좋았다. 부른 배를 내밀고 아침마다 동네 산책 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는데 어느날 하천 길을 따라 옆 마을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아침 해가 일찍 뜨기 시작하던 때라 제법 걸었는데도 학생들의 등교시간 즈음이었다. 등굣길이라고 하면 흔히 아파트 단지 사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이 떠올랐는데 이 동네는 아이들이 학교 갈 때도 하천 길을 따라 가네?! 실개천 같은 하천 길 양 옆으로 갖가지 꽃이 피어있고 차는 당연히 하천 길로 다니지 않았고 삼삼오오 모여 학교 가는 아이들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 우리 아이도 학교 갈만큼 크면 이렇게 하천 길 꽃구경 하면서 등교하면 좋겠다.
막연하던 생각이 돌아 돌아 우여곡절 끝에 현실이 되었고 꽃구경하며 등교시키고 싶던 마음을 담아 테라스를 정원으로 가꾸었다. 길 하나 건너 옆 동네였지만 예전보다 더 자연과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집은 산 자락에 있었고 바로 앞, 2차선 도로는 동네 주민만 오갔다. 조용한 밤 시간 테라스에 나가면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풀벌레소리, 개구리 소리가 선명한 곳이었다. 꿈꾸던 게 이루어졌으니 참 좋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사온 지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눈꼽이 붙어 몽롱한 눈에 시커먼 알갱이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 이게 뭐지?
알갱이의 정체를 알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개미 떼!
개미 거둥을 따라 가보니 사람 키보다 큰 책장 뒤 어딘가에서 시작되어 물기가 있는 화장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책장이 등을 대고 있는 벽은 바로 테라스 벽이었다. 어딘가에 있는 틈새로 바깥의 개미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거다. 냄새를 맡고 서로 길을 알려주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딴 데로 새는 놈이 없어 쉽사리 처치(?)할 수 있었지만 뒷 일이 문제였다. 어느 틈으로 들어오는 건지, 테라스에 개미집이 있는 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개미 퇴치에 좋다는 갖은 방법을 시도했다. 새 집에 우리 가족 말고 개미까지 이사와서 같이 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설탕물에 붕산을 녹여서 개미가 오가는 길목에 뒀다가 독살시켜라, 썪은 나무에 서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근거지를 찾아 뜨거운 물을 부어 몰살하라 등의 원시적이고도 잔혹한 민간요법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분한 마음을 담아 설탕물과 붕산을 조제하여 책장 근처에 놔뒀다. 개미들이 지나간 길을 식초로 닦아 페로몬 흔적을 없앤 덕분인지 며칠은 녀석들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슬금슬금 다시 찾아온 개미 선발대 한 두 마리가 설탕물 근처를 얼쩡거렸다.
-오호라, 들어와라, 들어와. 마음껏 마시고 가려무나.
손깍지 끼고 멀리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으나, 개미들이 뭔가 낌새를 챘는지 주변만 멤돌뿐 설탕물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안돼!!!
설탕물을 들고 테라스에 나가 책장이 있는 쪽 벽면을 살폈다. 틈이 있을 법한 곳에 설탕물을 놔두었지만 역시나 모여드는 개미는 없었다. 또 그런 식으로 집 안에 개미가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하며 불안에 밤을 지새우길 며칠. 희한하게 더 이상 개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개미가 붕산이 든 설탕물을 마시고 간 것도 아닌데,(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감쪽같이 개미들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더 좋은 먹잇감이 있는 동네를 찾아 이사를 간 것인지 영리하기 그지없어 이 집은 이제 틀렸다고 버리고 간 것인지. 여튼 개미와 집을 공유하지 않게 되어 나야 무척 속 시원해졌다.
이야기를 하고 보니 ‘이웃집 토토로’에 나온 장면이 오버랩 된다. 주인공 사츠키와 메이 자매가 이사오게 된 시골집은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던 낡은 곳이었다. 빈 집에 숨어 산다는 숯 검댕이들이 아이들을 보고 우르르르 외진 곳으로 도망쳐 다니다가 그날 밤 하늘 높이 멀리멀리 이사 가던 장면. 주인공 소녀들은 정체모를 숯 검댕이들을 다시 볼까봐 무서워하다 씩씩하게 큰 소리로 노래하며 이제 이 집은 우리가 사는 곳이라며 도장을 쾅쾅 찍었다. 내게는 검댕이 대신 개미들이, 씩씩한 노래 대신 설탕물이 있었을 뿐. 다행히 큰 분쟁(?)없이 개미들이 떠나주어 재미난 에피소드로 남았지만 그 아침 몇 미터에 달하는 개미 거둥을 봤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가하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아침 방송이나 9시 뉴스 끝자락에 일기예보를 듣고 있노라면 주로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기온이 어떤지 정도만 귀 기울였다. 우산의 유무와 옷차림에만 관심을 가지면 되는, 나는 그런 도시여자로 컸으니까. 이사오고 역시나 오래지 않아 ‘바람’이 재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 강풍이 예상되오니 각종 시설물 관리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 그간 관리할 시설물이 내게는 없었는데 이제는 생겨버렸다. 햇빛이 좋아 이불을 테라스에 널었는데 금방 강풍이 불어 닥치면 여지없이 빨랫대가 쓰러지거나 작은 화분이 넘어가 흙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한 번은 기온이 많이 내려가 식물들이 추울까봐 비닐하우스를 하나 마련해 딸기 화분을 덮었다. 철제 뼈대에 튼튼한 비닐을 덮어두는 구조였는데 이케아 가구가 벽고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철제 구조를 바닥에 반드시 고정해야 하는 상품이었다. 남편이 나름대로 고정을 시켜놨는데 헐거웠는지 그 날의 순간 풍속이 대단했던 건지 무튼 바람만의 탓은 아니리라. 거실에서 내다보니 비닐이 많이 펄럭거리고 있어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날아가기야 하겠어 하는 순간! 그 큰 비닐 하우스가 정말 열기구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붕 떠서 뒤집어지며 울타리를 넘어가버렸다. 몇 초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층 테라스로 추락. 만약 그 때 누구라도 거기에 있었으면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아찔하다. 나는 차마 부끄럽고 죄송해 가보지도 못하고 남편이 아래층에 내려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테라스 투 테라스로 비닐하우스를 올려 받았다. 그날 이후 일기예보를 확인할 때 비장해진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딱 맞아떨어질 리가 없다. 그리도 꿈꾸던 마당 있는 집에 최대한 근접한 집에 살고 있지만 벌레나 강풍 피해, 폭우로 인한 침수 등은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이다. 자연에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것은 동시에 재난과도 가까운 삶이었다. 신경써야 할 문제들, 걱정거리들, 대처해야 할 것들이 더욱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의 삶을 크게 긍정하는 건 도심 속 아파트에 살 때는 몰랐을 정원의 아름다움, 생생한 자연의 변화, 노력형 그린핑거의 성장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