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테라스에 침엽수 화분을 하나 들이자고 하자 남편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예쁜데?
늦가을과 겨울의 초입이던 그 즈음 우리 집에 있던 대부분의 식물들은 잎을 하나둘 떨구고 월동 채비에 들어갔다. 고무나무같이 아예 실내로 들여온 화분도 많았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아름다웠던 테라스가 조금 쓸쓸해 보이기 시작했다.
귀여운 아이들이 다 자라 성인이 되어 제 살 길 찾아 떠나면 부모님들은 빈둥지 증후군을 앓는다는데 마치 내가 그런 부모가 된 듯했다. 겨울 추위가 찾아드는 테라스를 보고 있자니 아쉬워 뭐라도 채우고 싶어졌다. 이사 오고 첫 겨울, 11월의 어느 주말에는 이런 마음 탓에 새벽까지 인터넷으로 침엽수에 대해 갖은 정보를 뒤적였다. 에메랄드 그린, 문그로우, 피렌체 사이프러스, 코니카 가문비, 구상나무, 엑셀런트 포인트 등. 낯선 이름들만 입 안에 굴려보다 결국 그 해에는 아무 것도 실행하지 못하고 텅 빈 테라스를 보고 지냈다.
곱은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면 길을 걷다 이웃 집 테라스에 침엽수가 푸릇푸릇하게 있는 걸 보면 그리 든든해 보이고 부러웠다. 싱싱한 초록, 그 생명력 넘치는 빛깔에 목마를 때에, 침엽수들은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텅 빈 테라스를 지켜내고 있었다.
그 다음 해 가을, 또다시 헛헛한 겨울을 보내지 않겠다 맘 먹고 구근식물을 사러 간 화원에서 슬그머니 침엽수도 하나 끼워 넣었다.
-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씁시다. 플라스틱 트리 사지 말고 이걸로 트리하면 되니까.
남편은 별 기대는 없이 그저 애들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 트리 장식을 안사도 된다는 말에 솔깃해서 토 달지 않고 값을 지불했다. 그렇게 모셔온 것이 갓난쟁이 키만한 은청가문비 나무다. 아이들은 나무를 테라스에 꺼내놓자마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고 분주했다. 빨간 구슬, 은색 스노우플레이크, 짙은 초록의 잎들이 어울려 그럴듯했다. 뾰족한 가시같은 잎에 찔리지 않게 조심조심 오너먼트를 걸어놓자 화장을 처음 한 시골 처녀같이 낯설고도 예뻤다.
이 모습 그대로 한 겨울을 그렇게 보냈다. 눈이 쌓였다 녹고, 뾰족한 잎들이 찬 바람을 맞아 흔들렸지만 정물화 속의 장면같이 은청이는 한결같았다. 하얀 눈이 응달진 언덕에 여전히 남아있고 겨울의 햇살은 조도를 낮춘 조명같이 아스라한데 조용하다 못해 공기가 몽땅 사라진듯한 곳에 자그마한 침엽수 한 그루가 표정없이 서있는 그림. 은청이는 아무 말도 없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식물다운 변화무쌍함도 없이 그대로였지만 텅 빈 테라스에 조금이라도 초록의 빛깔이 보이자 안도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아무런 변화없는 그 담담함이 든든했다.
너도나도 꽃을 피우며 한껏 매력을 뽐내는 5월의 신록은 어디를 쳐다봐도 아름답고 벅차오르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이 계절을 무던하게 버텨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겨우내 은청이를 바라볼 때마다 자그마한 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대함에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간 주변에서 봤던 수없이 많은 소나무와 전나무와 구상나무들 따위에서는 왜 이런 마음을 못 느꼈을까? 그냥 당연해보였던 일들이 내 정원에서 일어나자 마치 대단한 기적이라도 나타난 듯 내게 큰 의미가 되어있었다.
긴 겨울의 끝이 보인다 싶을 즈음 튤립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딸기의 새 잎이 돋아나왔지만 은청이는 여전히 우리 집에 오던 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 상록수라더니 늘 푸른 나무, 늘 한결같은 나무, 변하지 않는 나무.
그렇게 생각하며 겨우내 초록빛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봄을 맞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만이 변함없는 진실이라더니...나날이 쑥쑥 자라나며 꽃을 피우는 구근 식물들에 감탄하느라 관심을 덜 기울이던 사이 은청이의 가지 끝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겨울눈이었다.)얄팍한 갈색의 포장같은 게 벗겨지고 여리고 싱싱한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왔다. 그렇다! 그건 바늘처럼 뾰족뾰족하고 잎사귀의 도식에서 벗어난 생김이지만 새 잎이 분명했다. 한 방향으로 잘 빗어 넘긴 고운 머리칼을 잠시 쥐고 있다가 펼쳐내듯이 싱싱한 새 잎이 터져 나오는 모습은 너무나 신기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간 정물화 같다 여긴 마음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하루가 다르게 가지 끝마다 자리잡은 잎눈에서 새 잎이 돋아났고 짙은 초록의 묵은 잎을, 여리고 싱그러운 연둣빛이 덮어버렸다. 그렇게 봄 한 철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자 안 예쁘다고 타박하던 남편이 아침마다 문안 인사하러 나와 은청이를 보며 감탄한다.
- 침엽수는 이렇게 자라는 거구나.
출퇴근길에 보이는 수많은 침엽수들이 연둣빛 새 잎으로 뒤덮이는 모습이 남편 눈에 이제야 들어온다고 했다. 그 모습이 지금에서야 아름다워 보인다고. 은청이 덕분에 아름다운 세상을 하나 더 발견했다. 내 것이 되고서야 비로소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들.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감동하지 못했던 것들. 은청이는 여러모로 참 고마운 나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