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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13. 2024

샤우나 샤피로를 좋아하세요

마음챙김, 샤우나 샤피로 

여러분 마음챙김 하시나요? 많은 분들이 마음챙김을 종교적이라거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과학적이지 않다거나, 지나치게 영성적이라는 등의 내용으로 심리적인 거리를 둡니다. 저는 이게 조금 안타까워요.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역시 처음엔 명상에 대해 비현실적이라며 거부감을 느꼈지만, 나중에 해보고 나서 이거야말로 현실적이라고 했습니다. 



옥스퍼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친한 친구가 딱 1년만 위빠사나 명상 수업을 들어보라고 집요하게 권유했다. 처음에는 무슨 뉴에이지풍 미신인 줄 알았다. 신화 이야기 따위는 너무 지겨워서 완강히 거절했다. 하지만 무려 1년 동안 계속 설득하는 바람에 결국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열흘간의 피정에서 경험한 감각 관찰이 그동안 살면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떤 이야기나 이론, 신화를 받아들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 것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괴로움의 깊은 원인은 내 마음의 패턴에 있다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마음은 괴로움을 만들어내며 반응한다. 괴로움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인 상태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반응이다.



  그렇게 2000년에 처음 위빠사나 명상을 접한 후 매일 2시간 동안 수련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한두 달 동안 장기 피정도 간다. 현실 도피가 아니다. 현실과 이어지려는 것이다. 적어도 매일 하루 2시간씩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비록 나머지 22시간은 이메일과 트위터, 귀여운 고양이 영상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더라도 말이다. 명상 수련이 가져다준 집중력과 명료함이 아니었다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팀페리스 지음, 박선령,정지현 옮김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사실은 그 문제가 우리가 여기고 있는 만큼 크고 거대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문제 이면에 있는 감정에 압도되어서 자꾸만 문제를 키우는 데 있습니다. 매일 생각하고 고통받는 거죠.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정입니다. 즉, 마음과 감정을 정복하면 생각보다 두려워할 게 많이 없습니다. 



스무 살 친구들이 처음 대학교에 와서 사회를 경험할 때 힘들어하는 이유가 뭘까요? 대학교가 그만큼 힘든 곳이어서? 인간관계가 도통 어려운 게 아니라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건 어려운 일이라서?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압도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를 모르는 겁니다. 어른들 역시 마음과 감정을 통제하고 바라볼 줄 모르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그동안 숱한 마음고생으로 자신만의 '방어책'을 알게 되어서 쓰고 있을 뿐이죠. 우리, 마음공부합시다. 






여러분은 얼마나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고 계신가요? 더 완벽해지기 위해, 목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 부족한 점을 고치고, 강점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가요? 이렇게 매일같이 애쓰는데도 목표는 멀어져만 가는 듯하고, 삶은 더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지는 않으신지요. 



저는 그랬습니다. 행복은 언제나 술과 유튜브가 전부고, 언제나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삶. 참으로 질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끔은 '왜 굳이 불행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짧은 인생 즐기기도 바쁜데, 왜 나는 굳이 힘들어하고 있지? 왜 불행해하고 있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니야, 넌 열심히 살아야 행복할 수 있어'라는 생각에 다시 불행한 삶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참 애석하죠. 



이런 저와 다를 바 하나 없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매일 명상을 하고 자기계발에 힘썼죠. 그녀는 처음 명상을 배우고 나서 겪여보지 못한 차분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계속 명상을 시도해 봐도 그때의 침착함은 경험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조급해지기만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치료사에게 물었다. 


"나는 왜 전혀 나아지지 못하는 걸까요?" 


치료사는 말했습니다. 


"샤우나, 인생은 자기계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답니다. 귀엽지 않나요. 여하튼 그녀는 놀라 자빠질 만큼 대단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온통 자기계발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나를 닦달"해왔습니다. 심지어 매일같이 하는 마음챙김 수행도 자신이 부족한 사람임을 느끼기 위해 해왔음을 인정하고야 말았습니다. 



'부족한 사람임을 느끼기 위해'!! 그래요, 우리는 왜 굳이 불행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굳이 부족한 사람임을 느끼기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죠.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느끼기 위해 산다니. 근데 사실입니다. 왤까요? 왜냐하면 목표를 정해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린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이 아닌 미래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완벽해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삶은 더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집니다. 한 영적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단 그대가 목표에, 목적에, 운명에, 의미에 못박히게 되면, 일단 그대가 어딘가에 도달하겠다는 그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때 문제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패배할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그대의 패배는 존재 자체의 본성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다." - osho



말이나 단어는 어렵지만, 어렴풋이 공감되지 않나요? 우린 항상 어딘가에 도달하겠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계발을 합니다. 노오력을 하죠. 자기계발은 언제나 부족함을 전제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틀림없이 패배합니다. 심지어 목표를 이뤄도 잠깐만 행복했다가 깊은 허무함에 빠집니다. 목표를 이뤄도, 이루지 못해도 패배합니다. 삶은 원래 그런 걸까요? 아니면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목표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본성을 타고났는데, 커가면서 목표가 뭐니, 인생의 목적은 뭐니, 이 일은 어떤 의미가 있니 하면서 자꾸만 나를 어딘가에 묶어놓습니다. 자기 스스로 짐을 지어놓고 문제가 생기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하고 있는 꼴이죠. 웃기지 않나요? 



정말로 자유롭고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면 마음가짐을 바꿔야 합니다.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해방으로. 



위 일화의 주인공은 '샤우나 샤피로', <마음챙김>의 저자이자 산타클라라 대학교의 상담심리학 교수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마음챙김 전문가입니다.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해방의 길을 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자기해방이란 고쳐야 할 게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저는 언제 한 번 저 스스로 하루동안 얼마나 '고쳐야 할 게 있다는 생각'을 하는지 세어보았습니다.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 모든 감정, 생각, 행위 곳곳에 죄책감이 녹아 있었습니다. 쉬고 있으면 '이러면 안 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고 있었고, 막상 뭔가를 하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쉬고 싶다는 생각에도 죄책감이 있었죠. 심지어는 배고프다는 느끼면서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쳐야 할 게 있다는 생각,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착각은 이 순간에 존재하지 못하게 합니다'고쳐야 할 게 있다'는 생각이 이미 완전한 나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 존재 자체로 행복하고 완전했습니다.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행불행을 재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크면서 자라난 또 다른 '에고'라는 마음이 우리가 부족한 게 있다는 믿음을 심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아니 잠시만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때문에 고통스럽고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우린 부족함이 없는 상태, 곧 완벽함이 되는 건 아닐까요? 그럼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올까요? 감정에서 나옵니다. 부족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부처, 레스터 레븐슨, 데이비드 호킨스를 비롯한 스승들은 모두 감정의 압력이 쌓여 생각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괴로움의 근원은 그런 감정과 생각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부족하다는 감정은 당연히 우리의 진정한 '나'가 아닌 '에고'라는 친구가 유발하는 감정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이 일으키는 감정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면서 우리는 불행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한 가지 믿음을 전제합니다. 나에게 고쳐야 할 게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반대로 우리는 이미 완벽 그 자체라는 말이잖아요. 완벽을 보지 못하게 막는 건 뭐죠? 에고입니다. 에고 때문에 우린 고쳐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냥 나는 완전하다고 말하면 불행할 게 없어요. 참 간단하지 않나요? 



샤우나 샤피로는 말합니다.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그냥 묵묵히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 완벽함은 가능하지 않지만, 변화는 가능하다." 이미 결승선에 도착한 레이서는 결승선에 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을 즐길 뿐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수행은, 단순히 우리의 완벽성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에고의 힘을 놓아주는 일입니다. 



노력하고 노력하다 결국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자기계발을 아무리 해도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 것만 같다면, 노력을 놓아버리고 자기해방을 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그녀가 소개하는 선불교 속담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당신은 현재 모습 그대로 완벽하지만, 개선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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